[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강원도 정선의 산자락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 ‘선녀봉’은 한 가족의 비극과 헌신, 그리고 그 마음을 기억하려는 공동체의 서사가 겹겹이 쌓인 이야기다. 병든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절벽 끝까지 내몰린 남매의 선택,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누이의 죽음은 한국 전래 설화가 반복적으로 다뤄온 ‘효’와 ‘희생’이라는 주제를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야기는 조선 시대 강원도 정선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시작된다. 홀어머니와 남매는 가난하지만 부지런히 살아가며 서로를 의지하는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밭일과 품팔이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삶은 어머니가 급병에 걸리며 급격히 흔들린다.
마을 사람들이 알려준 산속 암자의 노승은 이 설화에서 중요한 매개자로 기능한다. 그는 치료를 제시하는 인물에 머물지 않고, 인간 세계와 자연, 신성의 영역을 잇는 존재로 등장한다. 36가지 희귀 약재라는 조건은 어머니의 생명이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경계에 놓여 있음을 상징한다.
남매가 약초를 찾아 산을 헤매는 장면은 한국 설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련의 여정 구조를 따른다. 대부분의 약초는 구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핵심 약재인 ‘신령지’는 절벽에서만 자라는 존재로 설정된다. 생과 사, 인간과 신의 경계가 절벽이라는 공간에 투영된 대목이다.
결국 남매는 절벽에서 추락한다. 설화는 이 장면에서 냉정하다. 어머니의 눈물이 닿아 남동생은 깨어나지만, 누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눈물은 생명을 되살리는 힘으로 묘사되지만, 그 힘에도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효심이 언제나 구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익숙한 권선징악 구조와 거리를 둔다.
마을 사람들이 누이를 위해 작은 무덤을 만들어주는 대목은 공동체적 애도의 방식이다. 개인의 죽음은 가족의 비극에 머무르지 않고, 마을 전체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전통 사회에서 개인의 삶과 죽음이 공동체 안에서 의미화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남동생이 끝내 신령지를 구해 어머니를 살리는 장면은 또 다른 아이러니를 남긴다. 치료는 성공하지만, 그 대가는 이미 치러졌다. 어머니의 병은 나았으나 딸을 잃은 상실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이 설화에서 회복과 행복은 같은 의미로 놓이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누이의 무덤 근처 절벽에서 선녀의 형상을 닮은 봉우리가 발견되며 이야기는 전설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자연 지형을 인간의 서사와 연결시키는 이 장치는 한국 설화의 대표적 특징이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품은 존재로 재해석된다.
남동생이 “누이가 천계에서 효심을 인정받아 선녀가 되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남겨진 자의 해석이자 위안이다. 이는 구원의 증거라기보다, 상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다. ‘선녀봉’이라는 이름 또한 인간이 자연에 부여한 의미의 결과다.
문화적으로 선녀는 한국 설화에서 순결과 희생, 초월을 상징하는 존재다. 이야기에서 선녀는 사랑의 주체가 아니라 효를 증명한 결과로 자리한다. 남녀 관계 중심의 선녀 설화와 다른 지점으로, 가족 윤리와 유교적 가치관이 강하게 반영된 지역 설화의 성격을 드러낸다.
강원도의 산악 지형이라는 지역성 역시 서사에 깊게 스며 있다. 약초와 심마니, 절벽이라는 요소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온 지역민들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자연은 생존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근원이었고, 동시에 신성의 영역이었다.
오늘날 ‘선녀봉’은 효를 강조하는 옛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 설화는 보상보다는 상실과 기억을 택한다. 누이는 살아 돌아오지 않고, 가족은 평생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잊히지 않기 위해 봉우리의 형상으로 남는다.
결국 ‘선녀봉’은 미담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치른 선택과 그 결과가 남긴 흔적을 보여준다. 절벽 끝에서의 희생과 그 여파는 지금도 산에 남아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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