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 중이거나 항암 치료를 마친 암환우 입장에선 거울 보는 일이 엄청난 스트레스다. 탈모 상태가 계속되거나 머리카락이 나더라도 배냇머리처럼 가늘고 구불거리는 소위 '항암 곱슬'이 돋아난다. 또 부쩍 늘어난 흰머리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이럴 때 드는 궁금증 하나. 머리카락은 언제 다 나고, 염색이나 파마는 언제 할 수 있을까? 이 궁금증에 대해 의료 전문가들은 최소 6개월은 참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낭(털주머니)과 두피 장벽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과 영국암연구소(Cancer Research UK) 등 주요 보건 기관의 가이드라인은 "염색이나 파마와 같은 화학 시술은 항암치료 종료 후 최소 6개월 이후에 할 것"을 표준으로 제시한다. 항암제(특히 탁산 계열, 안트라사이클린 계열)는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를 공격하는 특성이 있다.
항암치료를 받았다면 모낭 세포와 두피의 각질 형성 세포도 공격받아 두피의 '피부 장벽'이 무너진 상태가 된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항암 직후의 두피는 외부 자극에 대한 방어력이 전무한 상태"라며 "이때 염색약의 파라페닐렌디아민(PPD)이나 파마약의 알칼리 성분이 닿으면 심각한 접촉성 피부염이나 화상에 가까운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독성이 빠지고 두피 면역계가 정상화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바로 6개월이다.
평생 생머리였던 사람도 항암치료 후에는 곱슬머리가 나는 경우가 많다. 의학적으로는 이를 '항암 유발성 모발 변화'라고 부른다.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항암제의 독성이 모발을 만들어내는 공장인 모낭의 형태를 일시적으로 변형시키기 때문에 발생한다.
모낭이 찌그러지거나 비대칭적으로 변하면서, 그 구멍을 통해 나오는 머리카락도 구불구불해지는 원리다. 또한 모발의 성장 주기가 불규칙해지면서 굵기가 얇아지는 현상도 동반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변화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약물 배출이 완료되고 신체 대사가 정상화되면 모낭도 본래 모양을 되찾는다. 보통 1년 정도가 지나면 본래의 머릿결로 돌아오는 경우가 90% 이상이다.
염색에 대한 오해가 있다. 적지 않은 암환우는 '천연 헤나'나 '허브 염색'이 안전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대한피부과학회 보고에 따르면, 천연 염색약이라 하더라도 발색을 돕기 위해 첨가된 화학 성분이 두피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면역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암 환자는 아주 미세한 화학 성분에도 전신 발진이나 호흡 곤란(아나필락시스) 같은 과민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따라서 6개월이 지났더라도, 시술 48시간 전에 귀 뒤쪽이나 팔 안쪽에 약을 발라보는 '패치 테스트'를 통해 안전성을 의학적으로 검증한 후 진행해야 한다.
항암치료 후 돋아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은 우리 몸이 독한 항암제를 이겨내고 다시 생명력을 틔워내고 있다는 치열한 증거다. 지금 당장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6개월은 내 몸의 가장 약한 피부인 두피가 다시 숨을 고르는 골든타임이다. 가발이나 모자 같은 패션 아이템을 활용하며 조금만 더 여유를 갖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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