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의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은 2025년 어느날, 고려의 심장부 용산성에는 유례없는 적막이 감돌았다. 12월의 그 광기 어린 비상재변이 실패로 돌아간 뒤, 황제 대윤은 스스로를 지하 밀실에 가두었다. 그의 곁에는 더 이상 정사를 논할 대신도, 기개를 떨치던 칼잡이 후배들도 없었다. 오직 독한 소주 냄새와 그를 비웃는 환청만이 옥좌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이 무렵 고려 사법의 정점인 헌재(憲裁) 앞에는 매일같이 수만 명의 백성이 모여 횃불을 들었다. 한때 거악을 척결하며 백성들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대윤은 이제 가장 비참한 피고인의 신세가 되어 심판대에 올랐다. 123일에 걸친 긴 탄핵 심판의 끝자락, 고려의 국운은 마침내 한 사내의 오만과 탐욕을 단죄하기 위한 마지막 종소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황제 대윤의 고립은 그가 가장 신뢰했던 충암파 무장들이 줄줄이 압송되면서 극에 달했다. 현용김 국방장관과 형인여 방첩사령관 등 학연으로 맺어진 그의 친위체제는 내란 모의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대윤은 술에 취해 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이냐! 입법 독재를 하는 저 반국가 세력을 정리하려 한 것이 내란이란 말이냐!"
하지만 그의 외침은 텅 빈 궁궐 벽을 타고 허망하게 되돌아왔다.
특히 최근 밝혀진 특검의 수사 결과는 대윤에게 지독한 모욕을 안겨주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그가 목숨처럼 아꼈던 황비 희건은 12월 3일의 비상재변 계획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권력의 공동운영자라 불리며 V0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그녀였으나, 정작 황제가 국가의 운명을 걸고 자폭 단추를 누르던 그 순간, 그녀는 소외되어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치졸한 스캔들을 덮기 위해 황비조차 믿지 못하고 오직 충암파 동문과 술잔만을 믿고 거사를 도모했던 것이다. 황비는 계엄 실패 후 대윤에게 극심한 분노를 쏟아냈고, 이는 두 사람의 맹목적인 애정이 사실은 각자의 권력욕과 생존 본능 위에 세워진 사필귀정의 모래성임을 증명했다.
황제 대윤과 훈동 대감의 관계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훈동 대감은 황제의 파면 가능성이 높아지자, 술잔을 든 채 횡설수설하는 황제를 향해 마지막 직언을 던졌다. 하지만 대윤은 2024년 7월과 10월, 군 수뇌부와의 만찬 자리에서 훈동 대감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부었다.
"훈동이는 빨갱이다. 당장 잡아오라! 총으로 쏴 죽여버리겠다!"라고 외치며 주광(酒狂)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으며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던 훈동 대감에게, 황제의 이러한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결별을 넘어 인간적 멸멸의 순간이었다.
황비 희건 또한 훈동 대감과의 묘한 애증 관계를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특검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신이 수수한 명품 가방과 장신구들이 모두 정치적 함정이었다고 주장하며 끝까지 사과를 거부했다. 그녀는 경복궁의 어좌에 앉아 선글라스를 낀 채 오만한 자세를 취하던 그 기억을 붙잡으며,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인 명성왕후와 동일시했다. 하지만 그녀의 친정 식구들은 이미 사법적 심판대에 올라 있었다. 모친은 요양급여 부정 수급과 노인 학대 혐의로 14억 냥의 환수 조치를 받았고, 친오빠는 개발 특혜 의혹으로 구속 위기에 처했다. 황후가 꿈꿨던 명성왕후의 재림은 결국 처가 식구들의 추악한 비리와 매관매직의 종말이라는 비참한 현실로 귀결되었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마침내 헌재 대법관 8인 전원은 만장일치로 선언했다.
"피청구인 황제 대윤을 파면한다."
이 선고문은 한 군주가 통치자의 24시간 대기 의무를 저버리고 술과 여인, 그리고 주술적 맹신에 빠져 헌정 질서를 파괴한 대가였다.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 관저에서 낮술에 취해 있던 대윤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손바닥에는 여전히 흐릿한 왕(王)자가 남아 있었으나, 그가 쥐려 했던 천하는 이미 백성들의 손으로 넘어간 뒤였다.
파면된 대윤은 전직 황제로서의 모든 예우를 박탈당한 채 차가운 유배지로 향하는 수레에 올랐다. 그는 수레 창밖으로 보이는 고려의 산천을 보며, 자신이 왜 그토록 많은 술을 마셔야 했는지, 왜 그 여인의 손을 놓지 못했는지 자문했으나 답은 없었다. 황비 희건은 이미 자신만의 도피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측근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를 버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가문을 말아먹을 여인이라는 대윤 모친의 예언은 결국 고려라는 국가의 기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역사적 실체로 완성되었다.
대윤의 1000일 천하는 그렇게 술 찌꺼기와 부서진 보석 파편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한때 정의의 검이라 불리던 사내가 주술의 노예가 되고, 술에 취해 나라를 뒤흔든 이 광령비사는 고려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치욕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백성들은 황궁 앞에서 춤을 추며 새로운 시대를 노래했고, 폐주가 된 대윤은 감옥의 창살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영원히 깨지 않을 것만 같던 술기운에서 비로소 깨어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은 참회가 아닌, 잃어버린 권력에 대한 비겁한 미련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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