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錄조조] 소설 연재 안내
본 소설은 현 정세의 사건들을 조조, 손권 등의 인물과 탁류파, 청류파 등의 가상 정치 세력으로 치환하여 재구성한 팩션(Faction)물입니다.
서라, 짐짓 '대의를 앞세우나' 실은 사사로운 이익과 권력을 좇는 자들을 탁류파(濁流派)라 칭하고, 그 반대편에서 '청명한 정치를 부르짖으나' 실은 권문세족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을 청류파(淸流派)라 부르노라. 현재 탁류파는 여당인 주민당, 청류파는 야당인 민국의힘이니라. 조조(曹操)는 탁류파의 우두머리이자 대선을 통하여 대권을 잡은 당대 제일의 웅걸 명재이 대통령이다. 조조의 대적이자 청류파가 밀던 인물은 곧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권(孫權, 열석윤 전 대통령)이었다.
낙양의 동궁, 아니 용산의 집무실 창가에 선 조조는 차갑게 식은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오늘이 그의 용산 집무실 마지막날이다. 12월 29일부터는 청와대 궁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에는 탁류파(민주당)가 단독으로 처리해 올린 한 권의 죽간, 이른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놓여 있었다.
난세의 간웅이라 불리던 조조는 환생한 이 땅에서도 여전히 법과 질서라는 이름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비방과 헛소문을 잠재울 강력한 방책이 필요했다. 과거 그가 허위 유언비어를 퍼뜨린 양수를 처단하고, 사사건건 직언을 일삼던 공융을 제거했던 것처럼 말이다.
"허허, 세상 사람들이 나를 배신할지언정, 내가 먼저 세상을 배신하지는 않겠노라 말하던 시절이 있었지."
조조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내가 먼저 세상을 속이는 자들의 혀를 묶어야 할 때다.
그가 손에 쥔 법안의 핵심은 명확했다. 고의로 허위 정보를 유포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자에게 실제 손해액의 최대 5배에 달하는 배상을 물리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5000만 원이라는 무거운 벌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과거 조조가 군심을 어지럽히는 자들에게 내렸던 가혹한 군법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청류파(국민의힘)의 문사들이 궁궐 밖에서 곡소리를 내며 외쳤다.
"승상! 이 법은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국민의 눈을 가리는 악법이옵니다! 과거 전기통신기본법의 공익 침해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았던 미네르바 사건을 잊으셨나이까!."
조조는 코웃음을 쳤다.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 모호하다고? 내가 정하는 것이 곧 공익이고, 내가 다스리는 이 땅의 평화가 곧 공익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따위가 나의 대업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그는 여당인 탁류파의 수장들에게 지시했다.
"딥페이크나 합성 기술로 남을 기만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나를 비방할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는 자들도 엄히 다스려야 한다. 사실을 말해도 나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그것 또한 죄가 됨을 분명히 하라."
조조는 문득 과거의 양수를 떠올렸다. 계륵(鷄肋)이라는 군호 하나로 자신의 속마음을 읽어냈던 그 천재적인 사내. 현대의 양수들은 SNS와 유튜브라는 창구에서 조조의 다음 수를 읽으려 들었다. 조조는 그들에게 경고하듯 펜을 들었다.
"재주가 넘쳐서 주군의 마음을 함부로 읽는 자는 살려둘 수 없다. 이 법안은 그런 자들에게 내리는 나의 마지막 경고다. 내가 실수했을지라도 인정은 하되 결코 사과하지는 않는 것이 통치자의 도리가 아니더냐."
한편, 강동의 지배자이자 청류파의 은밀한 지지를 받는 손권(열석윤 전 대통령)은 멀리 감옥에 있지만 조조의 행보를 지켜보며 칼을 갈고 있었다. 청류파는 조조에게 즉각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촉구하며, 이것이 좌파 독재로 가는 길이라 소리 높였다.
하지만 조조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졌다.
"거부권이라니. 내가 만든 법을 내가 거부할 이유가 무엇인가. 국회의 입법 과정을 존중한다는 명분 아래, 나는 이 땅의 모든 혀를 통제하는 거대한 그물을 완성할 것이다."
조조는 집무실을 나서며 혼잣말을 남겼다.
"세상이 나를 오판할지라도 나는 나 자신으로 남을 것이다. 가장 위대한 배신자는 언제나 가장 정직한 사람처럼 보이는 법이니까."
보고서에 담긴 5배의 징벌적 배상과 10억 원의 과징금은 이제 조조가 휘두르는 청룡언월도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되어 디지털 공론장을 휩쓸 준비를 마쳤다. 그의 금언 정치는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조조가 곧 서명할 법안 위로 겨울바람이 차갑게 지나갔다. 마치 과거 미네르바의 예언을 비웃던 그날의 바람처럼 말이다. 대지에 숨 쉴 공간이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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