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박동선 기자] 2025년 대한민국 K-컬처 산업은 지난 10년의 '거품'을 걷어내고, 실질적인 '산업(Industry)'으로 진화하는 변곡점을 맞이했다.
시작은 K팝 시장의 '강제된 다이어트'였다. 10년간 이어진 '초동(발매 첫 주 판매량) 신기록' 경쟁이 멈추고 앨범 판매량이 19.4%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팬들의 지갑이 '소유(앨범)'에서 '경험(공연·팝업)'으로 이동하며 산업의 체질이 건강해졌고, 이 문화적 에너지가 소비재 수출로 이어지는 이른바 '동반 수출 구조'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콘텐츠가 길을 닦고 라면과 화장품 등 K-라이프스타일이 그 뒤를 따라 침투했던 2025년, 그 화려한 성적표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명과 암을 진단했다.
◇ K팝의 체질 개선 : '앨범 깡' 끝내고 '추억'을 팔다
올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확인한 가장 큰 수확은 '숫자의 함정'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중국발 공동구매 감소와 라이트 팬덤의 이탈로 앨범 시장은 조정기를 겪었지만, 그 빈자리는 더 부가가치가 높은 '경험 소비'가 채웠다.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스트레이 키즈와 세븐틴은 앨범 판매가 줄어든 것 이상을 월드투어 티켓 수익으로 벌어들이며, 엔터사의 돈 버는 방식을 '물건 파는 제조업'에서 '즐거움 파는 서비스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시켰다.
팬들은 앨범 수십 장을 창고에 쌓아두는 대신, 콘서트장과 팝업스토어를 찾아 지갑을 열었다. 이러한 '체험형 팬덤'의 형성은 단순한 음악 청취자를 넘어,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소비하는 충성 고객층을 만드는 토대가 됐다.
◇ 낙수효과의 승리 : 콘텐츠가 문 열고, 푸드·뷰티가 들어갔다
이렇게 다져진 K-컬처의 저변은 즉각적인 산업적 효과로 이어졌다. 올해 시장의 승리 공식은 "드라마가 뜨면 라면이 팔린다"는 명제로 요약된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이른바 'K-스토리 양대 산맥'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글로벌 OTT에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대주는 원천 소스가 됐다. 나스닥에 입성한 네이버웹툰과 일본 만화 시장을 장악한 카카오(픽코마)가 쌍끌이하며 K-콘텐츠의 판을 키웠고, 이는 곧장 K-푸드와 뷰티의 수출 대박으로 연결됐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미국 월마트 매대를 장악하고, 조선미녀·마녀공장 등 중소 뷰티 브랜드가 '탈중국'에 성공하며 글로벌 비중을 높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화면 속 한국 문화를 동경하는 글로벌 팬덤이 실질적인 구매자로 변한 결과다.
구조적 그늘 : IP는 '주인'인데 가게는 '남의 집'
하지만 화려한 '동반 수출'의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 숙제가 남아 있다.
첫째는 '유통 주권'의 부재다. 웹툰과 드라마 등 K-콘텐츠의 IP(지식재산권)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이를 내다 파는 채널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거대 플랫폼에 종속된 상태다. '재주는 한국(제작사)이 부리고 돈은 플랫폼이 버는' 하청 기지화 우려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둘째는 '공급망 리스크'다. K-푸드와 뷰티의 폭발적 성장에 비해 현지 물류 창고나 원자재 수급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기후 변화로 인한 김 가격 폭등이나 물류 대란 등 외부 변수에 취약한 구조는 언제든 실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 2026년의 과제 : '유행'을 넘어 '시스템'으로
결국 2026년을 앞둔 K-컬처 산업은 우연한 '운 좋은 대박'에 기댈 것이 아니라, 흥행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산업적 뼈대'를 다져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0월 출범한 '대중문화교류위원회'의 역할은 고무적이다.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한류 생태계를 고민하고, 갈수록 높아지는 글로벌 무역 장벽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전략은 시의적절하다. 콘텐츠와 소비재를 잇는 인프라 지원을 약속한 것 역시, 개별 기업의 각자도생을 넘어 '시스템'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구체적인 실행력이다. 글로벌 플랫폼에 휘둘리지 않는 IP 협상력을 확보하고,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현지 물류 및 생산 기지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특정 국가나 아티스트에 편중된 의존도를 낮추는 위기 관리 능력 또한 필수적이다.
2026년은 K-컬처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거대한 글로벌 자본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단단한 산업으로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가늠하는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뉴스컬처 박동선 dspark@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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