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이라 하면 한라산의 이국적인 풍광이나 설악산의 우아함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무등산 오르는 탐방객들 / 연합뉴스
하지만 2025년 국립공원 탐방객 만족도 조사에서 뜻밖에도 무등산(無等山)이 전국 23개 국립공원 중 1위를 차지했다. 무등(無等),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니 등급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고귀하다는 의미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시무등등주(은비할 데 없는 주문)'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전해지는데, 이름에 걸맞게 이 산의 진정한 매력은 예상치 못한 '반전'에 있다.
특히무등산 정상은 1966년 군부대가 주둔한 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며 2011년 첫 개방행사를 시작으로 2023년까지 총 26회 개방해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무등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러운 능선을 가진 전형적인 흙산(土山)의 모습이다. 그러나 산의 깊은 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신의 기둥 같은 억센 바위들이 숲을 이루는 장관이 펼쳐진다. 해발 1187미터,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중심이자 호남의 진산(鎭山)으로서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담양, 화순에 걸쳐 웅장한 산세를 드리운다.
약 87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화산 활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오각형과 육각형 모양의 거대한 바윗돌들이 성채처럼 치솟아 있다. 이것이 바로 무등산의 상징인 주상절리다. 보통 주상절리는 제주도나 경주 바닷가처럼 해안가에서 주로 발견되지만, 무등산의 주상절리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산 지대에 위치해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나라의 산들은 저마다 지형적 개성이 뚜렷하다. 한라산이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순상화산으로서 부드러운 사면과 백록담이라는 신비로운 화구호를 품고 있다면, 북한산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지표로 솟아올라 형성된 골산(骨山)의 전형을 보여준다. 백색의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이 도심 속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북한산의 모습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장관이다.
강원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설악산국립공원 등산로 초입 / 연합뉴스
무등산은 이들의 특징을 묘하게 섞어놓은 듯하다. 겉은 한라산처럼 부드러운 육산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정상부에서는 북한산보다 더 기하학적이고 강렬한 바위 기둥들을 내보인다. 이는 한반도 지형이 겪어온 역동적인 지질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완만한 흙길을 걷다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거대한 돌기둥의 숲은 탐방객들에게 경이로움과 정서적 위안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번 만족도 조사에서 무등산이 1위에 오른 비결 역시 이러한 지형적 특징에서 기인한 접근성과 경관의 조화에 있다. 도심과 가까워 언제든 찾을 수 있으면서도, 산 정상에 오르면 8,700만 년 전 지구가 빚어낸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무등산은 코스가 다양해 본인의 체력에 맞춰 선택하기 좋다. 특히 주상절리대인 입석대와 서석대를 감상하고 싶다면 다음 코스들을 눈여겨보자.
초보자 및 가족 단위 추천: 원효사 코스 광주 시내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은 코스다.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등산 초보자나 아이와 함께 걷기에도 부담이 없다. 원효사에서 시작해 무등산의 핵심 경관인 서석대까지 왕복 약 3시간 정도 소요되며, 무등산의 부드러운 능선을 체감하기에 가장 좋은 길이다.
무등산 정상부 '인왕봉' / 연합뉴스
가장 빠른 최단 코스: 수만리 탐방지원센터 코스 시간이 부족하거나 짧고 굵게 정상을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하다. 화순 방면의 수만리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장불재를 거쳐 서석대까지 오르는 길이다. 왕복 약 5.8km 거리로 3시간 30분 내외면 충분하지만, 경사가 다소 급한 구간이 있어 무릎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무등산의 진면목을 보는 코스: 증심사~새인봉 코스 무등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들머리인 증심사에서 시작한다. 새인봉의 깎아지른 절벽과 주상절리대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중거리 코스다. 약 7km 길이에 4시간 정도 소요되며, '흙산 속의 돌산'이라는 무등산의 반전 매력을 가장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로다.
숙련자를 위한 종주 코스: 무등산 지오트레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가치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원효분소에서 시작해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규봉암)를 거쳐 꼬막재로 내려오는 약 14km의 일주 코스를 추천한다. 무등산의 3대 주상절리를 모두 눈에 담을 수 있는 장관이 펼쳐지지만, 6시간 이상의 긴 산행 시간이 소요되므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등산을 오를 계획이라면 광주 도심에서 출발하는 1187번 버스를 기억하자. 산의 높이를 이름으로 딴 이 버스는 등산객들을 무등산의 품으로 데려다주는 가장 친근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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