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불과 재'(원제 'Avatar: Fire and Ash')가 300만 누적 관객을 돌파하면서, 크리스마스 당일엔 하루 64만285명을 기록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손녀이자 배우 제럴딘 채플린의 딸인 우나 채플린(39)이 망콴족 리더 바랑(Varang) 역을 맡아 더 화제가 됐다.
특히 '아바타: 불과 재'에서 우나 채플린과 감독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71)의 만남은 그 시작부터 철저하게 생태학적 담론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2017년 우나 채플린이 아바타 시리즈의 빌런인 '바랑(Varang)' 역으로 캐스팅되기 직전, 두 사람이 나눈 화상 통화는 영화적 기술이나 출연 조건이 아닌 '지구'와 '토양'에 관한 40분간의 심도 있는 토론으로 채워져 화제가 됐었다.
우나 채플린이 제임스 카메론과 처음 연결되었을 때, 그녀는 쿠바의 정글 속 나무 위 집(treehouse)에서 살며 친구와 함께 퍼머컬처(Permaculture, 지속 가능한 농업 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현대 사회의 불의와 생태적 파괴에 대한 깊은 분노와 연결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으며, 이러한 그녀의 실제 삶의 궤적은 카메론이 구상하던 새로운 나비족(Na'vi)의 지도자상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우나 채플린과 제임스 카메룬이 대화한
퍼머컬처(지속 가능한 농업 설계) 내용
| 대화의 핵심 요소 | 상세 내용 | 생태학적/영화적 의의 |
| 알팔파(Alfalfa) | 토양의 질소 고정과 심층 미네랄 흡수를 위한 다년생 작물 |
재생 농업의 기초이자 자급자족적 시스템의 상징 |
| 토양 칼륨 | 식물의 수분 조절 및 효소 활성화를 돕는 핵심 미네랄 |
토양 건강의 화학적 기초에 대한 전문적 이해 반영 |
| 생명역동농업(Biodynamics) |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에 기반한 홀리스틱 농업 |
농장을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는 철학적 접근 |
| 나무 위 집 생활 | 정글에서의 실존적 경험과 자연과의 직접적 결합 |
캐릭터 '바랑'의 원초적 힘을 뒷받침하는 배경 |
우나 채플린이 언급한 알팔파와 칼륨, 그리고 생명역동농업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녀는 토양의 미량 원소들이 식물의 성장뿐만 아니라 그것을 섭취하는 인간의 건강과 정신적 균형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인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문적인 생태 지식은 제임스 카메론으로 하여금 그녀를 단순한 배우가 아닌, 아바타 영화속 판도라의 복잡한 생태계를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한다.
생명역동농업의 원리
생명역동농업(Biodynamic Agriculture)은 1924년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에 의해 창시된 현대 유기농 운동의 시초이다. 이는 농장을 외부 입력 없이 스스로 순환하는 '자립적 유기체'로 정의하며, 단순히 화학 비료를 배제하는 수준을 넘어 지구와 우주의 리듬을 농업 활동에 결합시킨다.
생명역동농업의 핵심은 농장 내의 토양,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이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하나의 생명 시스템을 형성한다는 믿음이다. 이는 '아바타' 시리즈에서 묘사되는 판도라의 신경망 시스템인 '에이와(Eywa)'와 철학적 궤를 같이 한다. 생명역동 농부는 토양의 비옥도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들여오는 상업적 비료 대신, 농장 내부에서 생산된 퇴비와 가축의 분뇨를 활용하여 영양 순환을 완성한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토양의 활력과 식물의 영양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홉 가지 특수한 조제품을 고안했다. 이러한 조제품들은 미량 영양소를 제공하는 동시에 토양 내 미생물 네트워크를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개발한 9가지 조제품)
|
|||
|
주요 성분 | 제조 및 보관 방법 | 주요 목적 |
| 1 | 소똥(Horn Manure) | 암소의 뿔에 담아 겨울 동안 땅속에 매립 |
부식토 형성 촉진 및 뿌리 발달 강화 |
| 2 | 석영 분말 | 잘게 부순 수정을 소뿔에 담아 여름 동안 매립 |
광합성 효율 증대 및 식물의 직립성 강화 |
| 3 | 서양톱풀(Yarrow) | 수사슴의 방광에 넣어 발효 |
칼륨과 유황의 대사 조절 |
| 4 | 카모마일(Chamomile) | 소의 소장에 넣어 부식된 토양에서 발효 |
질소와 칼슘의 안정화 |
| 5 | 쐐기풀(Stinging Nettle) | 1년 동안 땅속에 그대로 매립 |
토양의 철분 함량 조절 및 활력 부여 |
| 6 | 참나무 껍질) | 가축의 두개골에 넣어 습한 곳에서 발효 |
칼슘 공급 및 식물 질병 예방 |
| 7 | 민들레(Dandelion) | 소의 장간막에 싸서 겨울 동안 매립 |
규산과 칼륨의 상호작용 촉진 |
| 8 | 쥐오줌풀(Valerian) | 꽃에서 추출한 즙 |
인 성분의 대사 유도 및 온기 부여 |
| 9 | 쇠뜨기(Horsetail) | 달인 물 또는 차 |
항균 및 곰팡이 질환 억제 |
이러한 조제품들은 물에 넣어 특정 방향으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다이너마이제이션(Dynamization)' 과정을 거쳐 살포된다.이는 단순한 화학적 반응을 넘어 물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생명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과정으로 간주된다.
알팔파와 칼륨의 과학적 중요성
우나 채플린이 강조한 알팔파(Alfalfa)와 칼륨(Potassium)은 생명역동농업과 재생 농업에서 실질적인 기능적 핵심을 담당한다.
알팔파의 역할: 알팔파는 '목초의 여왕'으로 불리며, 뿌리가 지하 10~30피트까지 깊게 내려가 지표면 근처에서는 얻을 수 없는 미네랄을 끌어올린다. 또한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을 통해 공기 중의 질소를 토양에 고정함으로써 화학 비료 없이도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칼륨의 기능: 칼륨(K)은 식물의 기공 개폐를 조절하여 가뭄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탄수화물 합성을 돕는 필수 원소이다. 생명역동농업에서는 수용성 칼륨 비료 대신 퇴비와 조제품을 통해 식물이 스스로 칼륨을 흡수하고 대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우나 채플린의 생태적 정체성과 활동가로서의 삶
우나 채플린은 단순한 배우를 넘어 15년 이상 전 세계 원주민 공동체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어온 활동가다. 그녀의 이러한 배경은 제임스 카메론이 추구하는 '다크 그린 영성(Dark Green Spirituality)'(자연을 신성시하고 생물권 전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는 시각)과 완벽하게 공명한다.
특히 우나 채플린은 칠레의 원주민 인권 변호사였던 할머니 힐다 발데라마(Hilda Valderrama)의 유산을 이어받아 마푸체(Mapuche) 부족의 정체성을 소중히 여긴다. 그녀는 아마존을 비롯한 전 세계 원주민 원로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지혜를 현대 생태 운동에 접목시키려 노력해왔다.
보아 재단(Boa Foundation): 우나 채플린은 브라질, 멕시코, 칠레의 원주민 공동체를 지원하고 그들의 전통 지식을 보존하는 보아 재단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촬영장의 의식: '아바타: 불과 재' 촬영 당시, 그녀는 아마존의 야와나와(Yawanawá) 부족 원로들을 스튜디오로 초대했다. 원래 15분으로 예정되었던 이들의 방문은 6시간 동안 이어진 노래와 의식으로 확장되었으며, 제임스 카메론은 이를 위해 촬영 일정을 중단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나 채플린은 자신의 연기 철학을 '몸 전체로 소통하는 것'으로 정의한다.그녀는 '바랑'이라는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퍼포먼스 캡처 기술을 넘어선 물리적 훈련을 감행했다. 특히 가슴 부위를 밴드로 압박하여 '심장을 닫은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트라우마로 인해 감정이 차단된 지도자의 신체성을 표현했다.또한 그녀의 움직임은 파충류와 유사한 구불구불한(serpentine) 형태를 띠며, 중심축을 골반으로 이동시켜 화산 지대의 마그마와 같은 에너지를 형상화했다.
이번 작품에서 우나 채플린이 연기하는 '바랑'과 그녀의 부족 '망콴(Mangkwan, 재의 부족)'은 기존 아바타 시리즈의 선악 구도를 뒤흔드는 복합적인 존재들이다. 이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평화로운 원주민이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탈피하여, 거대한 자연 재해로 인해 파괴되고 분노한 생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이와의 포기와 생존의 논리
망콴 부족은 화산 폭발로 인해 그들의 홈트리(Hometree)와 영적인 연결망을 상실한 이들이다. 이들은 판도라의 신성한 어머니인 에이와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믿으며, 그 결과 에이와의 신경망에서 스스로를 차단(unplugged)했다.
우나 채플린은 바랑의 철학을 "에이와는 엿이나 먹으라(f*ck Eywa)"는 문장으로 요약한다. 이는 생존을 위해 신앙을 포기하고 실용주의와 힘의 논리를 선택한 결과다. 이들은 나비족의 상징인 신경망 큐(neural queue)에 뼈를 박아 넣는 등의 극단적인 신체 변형을 통해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을 표시한다.
영화의 핵심적인 갈등 구조 중 하나는 바랑과 마일즈 쿼리치(Miles Quaritch) 대령의 만남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들을 "지옥에서 온 파워 커플"이라고 지칭한다. 바랑은 쿼리치가 가진 인간의 강력한 무기 체계를 이용해 자신의 부족을 다시 강하게 만들려 하고, 쿼리치는 바랑의 원초적인 분노와 힘을 이용해 제이크 설리에게 복수하려 한다. 이는 생태적 트라우마가 어떻게 파괴적인 군사주의와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알레고리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환경 철학: 영화 제작과 식단
제임스 카메론에게 '아바타'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그의 환경 운동을 확장하는 플랫폼이다. 그는 동물 농업이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온실가스 배출의 약 14.5% 차지)임을 강조하며, 영화 제작 현장에서도 엄격한 비건 식단을 적용했다.
비건 케이터링: '아바타: 물의 길'과 이번 '불과 재' 촬영 현장에서는 제작진 전체에게 비건 식사만이 제공되었다. 이는 육류 소비가 수자원 고갈과 탄소 배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천적인 조치이다.
지속 가능한 식품 체계: 카메론은 빌 게이츠와 같은 혁신가들과 협력하여 식물성 단백질 대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대형 식품 기업(Big Food)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유기농 및 건강한 농업 섹터의 재부팅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카메론의 행보는 우나 채플린이 추구하는 생명역동농업 및 퍼머컬처와 완벽하게 정렬된다. 두 사람 모두 지구를 단순히 자원의 원천이 아닌, 존중받아야 할 생명 유기체로 보며 그 회복을 위해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해법(알팔파 재배, 비건 식단, 미량 원소 관리 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나 채플린과 제임스 카메론을 하나로 묶은 것은 블록버스터의 화려함이 아닌, 흙과 생명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었다. 우나 채플린이 언급한 생명역동농업은 '아바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실천적 기반을 제공한다. 농장을 유기체로 보는 슈타이너의 사상은 판도라의 에이와 네트워크와 평행을 이루며, 알팔파와 칼륨에 대한 대화는 생태적 복원이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정밀한 과학적 실천임을 시사한다.
영화 '아바타: 불과 재'에서 바랑이라는 캐릭터는 환경적 붕괴와 영적 단절이 인간(혹은 나비족)의 정신을 어떻게 황폐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나 채플린은 자신의 원주민 활동 경험과 농업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 파괴적인 분노를 단순한 악역의 연기가 아닌 생태적 비극의 발현으로 그려냈다. 제임스 카메론은 그녀의 이러한 진정성을 알아보고,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에서 원주민의 의식을 존중하고 비건 식단을 실천함으로써 작품의 메시지와 제작 방식의 일치를 꾀했다.
결국, 이들의 협업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 생태적 소외에 대한 예술적 답변이다. 생명역동농업이 죽어가는 토양에 생명력을 불어넣듯, '아바타' 시리즈는 관객들에게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자연과의 신성한 연결고리를 상기시키려 한다. 우나 채플린이 정글 속 나무 위 집에서 제임스 카메론과 나눴던 40분간의 이야기는, 이제 판도라의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전 세계 관객들에게 지구와 공존하는 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고 있다.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