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79)는 사업가 시절부터 '트럼프'라는 이름을 돈으로 바꾸는 데 천재적 감각을 보여왔다. 뉴욕 맨해튼의 중심부에 세운 트럼프 타워는 단순한 빌딩이 아니었다. 본인의 성을 브랜드화한 이 상징물은 이후 워싱턴 DC, 라스베이거스, 시카고, 스코틀랜드 골프장, 심지어 트럼프 와인과 트럼프 대학교까지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 위에 복제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트럼프’라는 이름이 붙은 시설은 100개가 넘는다. 한국에도 ‘여의도 대우트럼프월드 1차(또는 여의도 대우트럼프월드 I)’가 있다.
브랜드 전문 컨설팅 기업 인터브랜드의 전 CEO 톰 블랙햄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브랜드로서의 자기 자신을, 시장에서 파는 제품처럼 다뤘다. 그의 이름은 권위, 부, 성공의 기호로 재구성되었고, 이는 단순한 마케팅이 아닌 정체성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름 붙이기 전략은 백악관 입성 이후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된다. 트럼프는 자신의 브랜드 전략을 공적 공간으로까지 밀어붙였고, 여기서 발생한 갈등과 충돌은 미국 정치 문화의 한계선까지 밀고 나갔다.
트럼프는 1기 대통령직(2017년 1월 20일 ~ 2021년 1월 20일까지 4년 )에 오른후 ‘국가의 얼굴’이자 ‘리더’로서의 정체성과 기존의 기업가적 정체성을 분리하지 않았다. 2021년 오클라호마 주의회는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공식적으로 ‘도널드 J. 트럼프 고속도로’로 지정했다. 같은 해 플로리다에서는 마이애미 국제공항을 ‘트럼프 국제공항’으로 개명하자는 청원이 온라인상에서 수만 명의 서명을 받으며 주 정치권에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는 2016년당시 대선 전에도 워싱턴 DC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의 구 연방우체국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백악관과 불과 5분 거리였던 이 호텔은 임기 내내 외국 고위 관계자들의 숙박 장소로 이용되며 논란을 낳았다. 2022년 호텔 운영권은 매각됐지만, 트럼프가 워싱턴 DC의 중심부를 ‘트럼프화’하려는 상징적 프로젝트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럼프의 명명 집착'이 미국 경제와 민주주의에 던지는 청구서
트럼프(79)는 2기 대통령의 재임이 시작되자 전례 없는 '트럼프 제국주의' 이름을 곳곳에 붙이고 있다. 공공 자산과 국가 기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려는 그의 집착은 단순한 개인적 허영을 넘어 국가의 공적 정체성을 사적 브랜드로 대체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2억 5,700만 달러(약 3,392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케네디 센터의 명칭 변경, 3억 달러(약 3,960억 원)에 달하는 백악관 무도회장 건설, 그리고 100만 달러(약 13억 2,000만 원)에 달하는 골드카드 비자 사업 등을 통해 '트럼프 이름 붙이기'를 하고 있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현직에 있으면서 공공 기물에 자신의 이름을 이토록 광범위하게 새긴 사례는 없었다. 과거의 대통령들은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물이나 도서관 건립을 퇴임 후의 과제로 남겨두었으며, 그마저도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추대나 의회의 합의를 거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통치 자체를 거대한 브랜드 라이선싱 사업으로 치환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직을 국가를 위한 봉사의 직무가 아니라,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공고히 할 수 있는 궁극적인 플랫폼으로 취급한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워싱턴 DC의 문화적 자부심인 존 F. 케네디 공연예술 센터의 명칭 변경이다. 트럼프가 임명한 이사회는 센터의 이름을 도널드 J. 트럼프 및 존 F. 케네디 기념 공연예술 센터로 변경하기로 의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센터의 개보수를 위해 2억 5,700만 달러(약 3,392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백악관 대변인 카롤린 레빗(28)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이사회가 지난 1년 동안 건물을 구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기울인 믿기 힘든 노력을 인정해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만장일치라는 주장 뒤에는 강압적인 절차가 숨어 있었다.
당연직 이사로서 회의에 참석했던 조이스 비티 하원의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내가 우려를 표명하고 질문을 하려 했으며 당연히 반대 의사를 밝히려 했으나, 내 마이크는 음소거 상태로 차단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내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시했다. "
비티 의원은 즉각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의 법률 대리인인 노름 아이젠은 의회가 1964년 법률로 케네디 센터라는 명칭을 확정한 만큼, 의회의 동의 없는 명칭 변경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조지타운 대학교의 데이비드 슈퍼 교수 역시 이 명칭이 법전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이사회의 투표만으로는 바꿀 수 없으며, 망치와 정을 든 사람을 고용해 간판을 깎아내는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국가 안보의 상징인 해군력 역시 트럼프의 심미적 취향을 반영하는 소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이른바 황금 함대 계획을 발표하며 차세대 전함을 트럼프급으로 명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 군함들이 역사상 가장 크고 치명적이며 가장 아름다운 배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군이 디자인을 주도하겠지만 나도 직접 관여할 것이라며, 왜냐하면 나는 매우 심미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러한 미학적 접근이 군사적 실효성과 국방 예산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트럼프급 전함의 첫 모델인 유에스에스 디파이언트호는 배수량이 3만 톤에서 4만 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존 구축함의 3~4배에 달하는 크기로, 척당 건조 비용은 100억 달러~150억 달러(약 13조 2,000억 원~19조 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항공모함 한 척의 가격과 맞먹는 수준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현대 해전의 흐름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소형 함정의 분산 화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오직 적에게 시각적 경외감을 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거대하고 값비싼 표적을 만들려 한다고 경고한다. 은퇴한 마크 몽고메리 해군 제독은 해군의 우선순위가 대통령이 보기에 멋진 배를 만드는 것으로 왜곡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 자산의 사유화와 브랜드 정치학의 경제적 청구서
트럼프 대통령의 명명 집착은 백악관 내부에서도 진행 중이다. 그는 역사적인 동관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9만 평방피트 규모의 대통령 도널드 J. 트럼프 무도회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약 3억 달러(약 3,960억 원)가 투입되며, 구글과 메타 같은 거대 기업들이 기부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무도회장이 완전히 민간 자금으로 충당된다고 주장하며, 건설 비용이 예상보다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백악관에 내 월급을 기부하는 등 수백만 달러를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잭키 케네디가 가꾼 로즈 가든이 파괴되고 영부인들의 집무실이 사라지는 등 국가적 유산이 훼손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이른바 골드카드라고 불리는 이민 정책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프로그램 명칭이 ‘트럼프 골드카드·플래티넘 카드’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재무부에 100만 달러(약 13억 2,000만 원)를 기부하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을 출시했다. 기업이 직원을 위해 신청할 경우 기부금은 200만 달러(약 26억 4,000만 원)로 올라간다. 여기에 1만 5,000달러(약 1,980만 원)의 수수료와 연간 1%의 유지비가 추가된다. 500만 달러(약 66억 원)를 내면 미국에 연간 270일 동안 체류하면서도 해외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 플래티넘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 정책은 미국의 이민 시스템을 숙련도나 기여도가 아닌 순수한 현금 결제 시스템으로 변질시켰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두고 미국이 국가의 자부심을 파는 벼룩시장으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상무부 장관 하워드 러트닉은 이 프로그램이 수십억 달러의 정부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공정한 기회라는 미국의 건국 이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예일대학교의 경제학자들은 부유한 외국인들이 돈으로 입국 자격을 사게 되면, 정작 기술을 가진 가난한 인재들이 배제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심리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명명 집착을 악성 나르시시즘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진단한다.
200명 이상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서명한 공개 서한에 따르면, 트럼프는 찬사에 대한 갈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이 비정상적으로 강하며, 타인을 자신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로부터 성공하지 못하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식의 조건부 사랑을 학습했으며, 이것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이름을 모든 곳에 각인시키려는 강박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트럼프는 과거 인터뷰에서 내가 만약 10달러(약 13,200원)의 가치밖에 없다면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르시시즘적 미학이 훼손한 공화주의적 전통과 법적 분쟁
트럼프 대통령의 미학은 이른바 황금 지상주의로 요약된다. 그는 백악관 오벌 오피스 주변에 황금 몰딩을 추가하고, 욕실 시설을 금색으로 교체하며, 심지어 공식 초상화에서도 성좌기를 치우고 자신을 어둠 속의 스타처럼 묘사하는 연극적 조명을 선택했다. 사진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각적 장치들이 지도자를 시민의 대리인이 아닌 고립된 절대 권력자로 묘사하려 한다고 분석한다. 그는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알링턴 국립묘지 인근에 웅비의 문이라는 거대 아치를 세우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기자가 이 아치가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주저 없이 "나를 위한 것(Me)"이라고 답했다.
그의 미적 취향 역시 이러한 자기애적 경향과 맞닿아 있다. 트럼프 타워의 로비는 1980년대에 설계됐지만, 금색 대리석, 유럽풍 로코코 장식, 대형 샹들리에 등 과잉의 미학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이 스타일은 이후 그의 호텔, 골프장, 심지어 트럼프 전용 항공기 내부에까지 확장되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나는 사람들이 들어오자마자 ‘이게 바로 성공이다’라고 느끼길 원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태에 대한 법적 저항도 만만치 않다.
케네디 센터 명칭 변경에 대한 소송에서 원고 측 변호인은 법정에 제출한 소장 내용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피고인 트럼프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이사회는 의회가 부여한 권한을 남용하여 국가적 기념물을 개인의 전유물로 전락시켰다. 이는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며 헌법이 정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파괴하는 행위다. "
반면 백악관 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무너져가는 공공 기관들을 자신의 수완으로 구해냈으며, 명칭 변경은 그에 따른 정당한 예우라고 맞서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도 우려와 지지가 엇갈린다. 일부 의원들은 트럼프의 이름을 지하철 시스템인 트럼프 트레인에 붙이거나 250달러(약 33만 원) 지폐에 그의 얼굴을 넣는 법안을 발의하며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플로리다의 그렉 스튜비 하원의원은 워싱턴 지하철의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연간 1억 5,000만 달러(약 1,980억 원)의 연방 지원금을 끊겠다는 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정당 정치가 개인 숭배의 장으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결국 트럼프의 명명 집착이 남기는 것은 화려한 금칠이 된 건물과 이름뿐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국가의 공공성이라는 기초는 서서히 부식되고 있다. 통치자가 국가를 자신의 브랜드 확장을 위한 자산으로 취급할 때, 국민은 주권자가 아닌 소비자 혹은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트럼프급 전함과 무도회장은 미국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이 개인의 나르시시즘에 의해 어떻게 침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비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비용은 세금과 기부금으로 충당되겠지만, 훼손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은 그 어떤 금전적 계산으로도 산출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이스 비티 의원이 소송을 제기하며 남긴 말은 이 시대의 본질을 꿰뚫는다.
"우리가 지금 멈추지 않는다면, 조만간 워싱턴의 모든 기념비에는 단 하나의 이름(트럼프)만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미국이 아니다. 이 싸움은 단순히 간판의 이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의 영혼을 지키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브랜드 통치학이 가져올 미래는 불확실하다. 2029년 그가 퇴임한 이후 다음 행정부가 이 모든 이름을 다시 지우는 과정을 겪게 될지, 아니면 미국이 영구적인 브랜드 국가로 남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가 새겨넣은 수많은 이름표가 미국의 분열을 상징하는 시각적 흉터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황금색으로 장치된 무도회장의 화려함 속에서 미국의 공공 정신은 길을 잃고 있다. 이 나르시시즘의 청구서는 결국 다음 세대의 미국인들이 짊어져야 할 몫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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