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와디강 인근의 울퉁불퉁한 공터에서 은퇴한 중장 출신 국회의원 후보 테이자 쪼가 연단에 섰다. 그는 청중을 향해 "더 나은 시절이 올 것"이라며 분위기를 띄우려 애썼다.
테이자 쪼는 미얀마 군부의 지원을 받는 통합단결발전당(USDP) 후보로, 만달레이 시 아웅메타잔 지역구에 출마했다.
300~400명가량 모인 사람들은 나눠 받은 당 로고 모자와 깃발을 들고 자리를 지켰지만, 오후의 무더위에 금세 지친 모습이다. 일부는 의자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아이들은 의자 줄 사이를 오가며 뛰어놀았다. 이들 가족 상당수는 지난 3월 만달레이와 인근 지역에 큰 피해를 남긴 지진의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작은 지원이나 물품을 기대하며 이 자리에 나왔다. 집회가 끝나자 사람들은 곧바로 흩어졌다.
'조작된' 선거
미얀마 국민들은 오는 28일, 약 5년 전 군부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이후 처음으로 선거에서 투표할 기회를 맞는다. 당시 쿠데타는 미얀마를 파괴적인 내전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집권 군사정권에 의해 수차례 연기돼 온 이번 선거는 이미 '눈가림용 선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장 큰 지지를 받던 정당인 국민민주연맹(NLD)은 해산됐고 당 대표인 아웅산 수치는 현재 위치가 공개되지 않은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이번 투표는 한 달에 걸쳐 세 차례에 나눠 진행될 예정이지만, 여전히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광범위한 지역에서는 투표 자체가 불가능하다. 투표가 실시되는 지역에서도 선거는 공포와 위협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BBC가 만달레이에서 열린 유세 현장에서 참석자들에게 이번 선거를 어떻게 보는지 묻자고 하자, 정당 관계자들이 이를 말렸다.
"잘못된 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게 한 남성의 설명이었다. 그는 "이 사람들은 기자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현장에 배치된 사복 차림의 군 정보요원들의 숫자는 이들이 느끼는 불안을 설명해준다. 선거를 비판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범죄로 규정된 독재 체제에서, 군부에 확고히 우호적인 정당 활동가들조차 외국 기자가 검열 없는 질문을 던지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같은 두려움은 만달레이 거리에도 남아 있다. 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파는 한 시장 좌판에서 만난 손님들은 선거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모두 답변을 거부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투표해야 한다"고 한 사람이 말하자, 생선 상인은 "당신들이 나를 곤란하게 만들 것"이라며 취재진을 쫓아냈다.
솔직한 의견을 말한 사람은 단 한 명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없는 사적인 공간을 찾아야 했고, 신원을 숨기는 조치가 필요했다.
"이번 선거는 거짓이에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어요. 모두가 인간성과 자유를 잃었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고문을 당했거나 다른 나라로 도망쳤어요. 군부가 계속 나라를 운영하는데, 어떻게 바뀔 수 있겠어요?"
그는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위험을 동반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미얀마 군 당국은 지난 7월, "선거 과정의 일부를 파괴할 목적의 모든 발언, 조직 행위, 선동, 시위, 전단 배포"를 범죄로 규정하는 새 법을 도입했다.
이달 초에는 의사이자 2021년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를 가장 먼저 조직한 인물 중 한 명인 테이자르 산도 이 법에 따른 첫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그는 선거 보이콧을 촉구하는 전단을 배포한 뒤 기소됐다. 군정은 그의 체포로 이어질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현상금도 내걸었다.
지난 9월에는 양곤에서 총알과 투표함을 함께 그린 스티커를 게시한 혐의로 젊은이 세 명이 각각 42년에서 49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연방을 해치는 모든 세력을 단결해 진압하라."
만달레이 왕궁의 오래된 붉은 벽돌 성벽 아래, 늦은 오후 산책을 즐기는 가족과 연인들 머리 위로 거대한 붉은 포스터가 위압적으로 걸려 있었다.
이처럼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서는 자유로운 투표에 가까운 상황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장군의 승부수
그럼에도 군정 수장 민 아웅 흘라잉은 요즘 자신감이 엿보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토의 절반 가까운 지역에서조차 투표가 치러지지 않는 이례적인 선거가, 집권 5년 동안 참담한 결과만 낳은 자신의 통치에 그동안 얻지 못했던 정당성을 부여해 줄 것이라고 그는 믿는 듯하다.
그는 최근 양곤 대성당에서 열린 성탄 미사에 참석해, 인간 사회에서 "지배와 억압, 폭력"으로 이어지는 "개인 간의 증오와 원한"을 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발언의 주인공은 유엔과 국제 인권 단체들로부터 무슬림 로힝야족에 대한 집단학살 혐의로 지목된 인물이다. 그의 쿠데타로 촉발된 내전으로 지금까지 약 9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무력 분쟁 데이터 분석 기관 ACLED는 추산하고 있다.
민 아웅 흘라잉이 추진하는 선거라는 승부수는 중국의 전폭적인 외교적 지지를 받고 있다. 일당 체제 국가인 중국이 이 다당제 선거에 기술적·재정적 지원까지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선거는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마지못해 용인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러시아산 무기로 새롭게 무장한 군부는 최근 2년간 쿠데타에 반대하는 각종 무장 세력에게 빼앗겼던 지역을 다시 탈환하고 있다. 민 아웅 흘라잉은 내년 1월 말 예정된 선거 3단계에 이러한 수복 지역을 최대한 포함시키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웅산 수치와 국민민주연맹(NLD)이 정치 무대에서 배제된 상황에서, 군부의 지원을 받는 통합단결발전당(USDP)의 승리는 사실상 확실시된다. 자유선거가 치러졌던 2020년 총선에서 USDP는 전체 의석의 6%만을 차지한 바 있다.
일부 관측통들은 민 아웅 흘라잉이 군정 내부는 물론 자신이 소속된 정당 안에서도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선거 이후에도 대통령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지만, 2020년 총선에서 의석을 확보했던 다수 정당이 배제된 상태에서 의회 정치가 재개되면서 그의 권력은 일정 부분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이번 선거를 잘못된 쿠데타로 인한 파괴적 교착 상태에서 군부가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출구 전략'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누구도 타협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겉보기에 평온해 보이는 만달레이의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아직 끝나지 않은 미얀마 내전이 남긴 깊은 상흔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라와디강 건너편에는 한때 인기 있는 관광지였던 밍군의 장대한 사원 단지가 있다. 강변 도로를 따라 잠시 차로 이동하면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지난 4년 동안 이 지역은 만달레이 인근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분쟁 지역이었다. 자원으로 구성된 인민방위군(PDF)이 여러 마을을 장악하고 있으며, 군 수송대를 상대로 매복 공격을 벌여 왔다.
밍군에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우리는 이동 허가를 협의하기 위해 현지 경찰 지휘관과 찻집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젊은 나이였지만, 얼굴에는 업무가 남긴 심한 피로가 역력했다. 허리 뒤에는 권총을 차고 있었고, 군용 돌격소총을 든 더 어린 두 명의 남성, 어쩌면 소년일지도 모를 이들이 그의 경호원처럼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마을을 오가려면 이 무기들을 휴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상대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의 젊은 남성들로, 미얀마 국경 지역에서 밀반입했거나 전사한 군인·경찰에게서 획득한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이 가운데 자신들을 '유니콘 게릴라 포스'라고 부르는 집단이 가장 까다로운 상대라고 그는 말했다. 이들과는 협상이 없다고 했다.
"마주치면 늘 총을 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는 또 자신이 있는 곳 북쪽의 대부분 마을에서는 이번 선거가 치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이미 어느 한쪽 편에 서 있습니다. 상황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타협할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약 한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밍군으로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인민방위군(PDF)이 취재진이 기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젊은 민주주의를 뒤엎은 군부 인사들 역시 타협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이제 준민주적 외양을 덧씌워 체제를 재정비하려 하고 있다.
쿠데타 이후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고 학교와 병원을 겨냥한 공습이 이어진 데 대해 질문받자, 테이자 쪼 장군은 그 책임을 군부에 반대한 세력에 전적으로 돌렸다.
"그들이 무장 저항을 선택했다"고 그는 말했다.
"적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법에 따라 국민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테러리스트일 뿐입니다."
만달레이 시민들은 이번 선거가 2020년 총선과 같은 활기나 열기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규모 유세는 거의 열리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통합단결발전당(USDP)에 도전할 수 있도록 허용된 정당도 다섯 곳에 불과하다. 이들 어느 정당도 USDP가 지닌 자원이나 제도적 뒷받침을 갖고 있지 않다. 투표율 역시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나 내전에 지친 탓에, 많은 미얀마인들은 이번 선거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투표소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투표는 하겠죠."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하지는 않을 거예요."
추가 취재: 루루 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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