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57) 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가 전장사업 전문자회사인 하만을 통해 독일 'ZF 프리드리히스하펜'(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을 15억유로(약 2조6000억원)에 전격 인수했다. 전장사업이란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기·전자 장치와 소프트웨어 부품 등을 개발·생산·공급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지난 26일 주식시장에서는 뜻밖에도 코스닥 상장업체인 오비고 주가가 상한가를 치는 기염을 토해 온종일 화제가 됐다. 바로 오비고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생태계의 핵심 협력사로서 수혜주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자회사 하만을 통해 독일 제트에프(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부를 인수한다는 소식은 한국 전장 산업의 지형도를 뒤흔들었다. 조단위의 이 거대한 인수합병의 파고 속에서 시장의 시선은 돌연 한 중소기업으로 향했다. 바로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플랫폼 전문 기업 오비고다. 과거 피처폰 시절(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 주로 사용되던 기능 위주의 휴대전화) 전 세계 9억 대의 기기에 브라우저를 태웠던 기술력이 이제는 거대한 자동차를 하나의 스마트 기기로 변모시키고 있다. 스웨덴 본사를 역인수한 설립자 황도연(60세로 추정) 대표의 대담한 결단에서 시작된 코스닥 상장업체 오비고의 여정은 자동차라는 쇳덩어리 하드웨어가 깡통이 되고 소프트웨어가 영혼을 결정하는 모빌리티 대전환기의 상징적 사례로 손꼽힌다.
황도연 대표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라는 용어가 대중에게 생소하던 시절부터 자동차의 미래를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정의했다.
1991년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모바일 플랫폼의 태동과 표준화를 현장에서 지켜본 1세대 전문가다. 에릭슨코리아와 오픈웨이브를 거치며 글로벌 비즈니스의 생리를 익힌 그는 2003년 스웨덴의 모바일 브라우저 강자 텔레카의 한국 지사를 설립했다. 당시 텔레카는 전 세계 시장 점유율 20%를 차지하며 노키아와 삼성전자 등 주요 제조사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던 업계 3위의 강자였다.
오비고 탄생의 결정적 장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 연출됐다.
당시 텔레카 본사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한국 지사를 분사하려 하자, 황도연 대표는 단순히 독립하는 길 대신 본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역발상을 실행에 옮겼다. 이는 마치 휠라코리아가 글로벌 본사를 인수한 사례와 비견되는 사건으로, 한국 지사가 외부 투자를 유치해 글로벌 브랜드와 기술력을 단숨에 확보한 승부수였다. 이 과정을 통해 '텔레카 코리아'는 100% 한국 지분 회사인 오비고로 재탄생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황도연 대표는 "전 세계 시장 점유율 20% 정도에서 3위 정도 되는 업체였고, 우리 제품이 전 세계 9억 대 정도에 탑재됐었다"고 밝혔다.
모바일 제국의 유산에서 자동차 소프트웨어의 표준으로: 황도연의 승부수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짧았다. 아이폰의 등장은 피처폰 기반의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몰락하는 과정을 목격한 황도연 대표는 모바일 시장이 이미 거대 공룡들의 전쟁터인 레드오션이 됐다고 판단했다. 그는 눈을 돌려 아직 소프트웨어의 개념이 희박했던 자동차 시장을 주목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스마트폰과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구동되는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곧 소프트웨어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견하며 사업의 중심축을 100% 차량용 플랫폼으로 옮겼다.
그러나 자동차 시장의 문턱은 모바일보다 훨씬 높았다. 안전과 직결되는 특성상 기술 검증에만 수년이 소요됐다. 실제로 오비고가 유럽 주요 완성차 업체와 협업을 시작한 것은 2015년이었지만, 그 결과물이 실제 양산 차량에 탑재된 것은 2019년이 되어서였다. 기술부터 품질, 성능, 사후관리까지 모든 단계에서 완벽한 신뢰를 입증해야 했다. 오비고는 피처폰 시절 축적한 최적화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량용 임베디드 브라우저(AGB 브라우저)와 앱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이는 낮은 성능의 차량 하드웨어에서도 스마트폰 수준의 빠른 로딩과 안정적인 연결성을 보장하는 핵심 전자기술이 됐다.
이제 시장은 오비고의 생태계 장악력에 주목한다.
전 세계 차량 인포테인먼트 운영체제 시장의 50%를 점유한 블랙베리 큐엔엑스(QNX)가 오비고의 플랫폼을 기본 탑재하기로 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이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큐엔엑스를 선택할 때 오비고의 솔루션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는 강력한 영업망을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오비고의 오랜 파트너다. 2010년부터 차량정보기술 융합 분야에서 협력해 온 양사는 싼타페의 블루링크 라이프 메뉴에 오비고의 브라우저를 탑재하며 성공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황도연 대표는 자동차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인터페이스(API)를 표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자체 생태계를 만들지 않으면 국산 전기차는 가성비에서 중국산을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로 무장한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의 포식자
최근 오비고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공급자를 넘어 인공지능 전환(AX) 플랫폼 리더로의 진화를 선언했다.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차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오비고는 차량용 게임 플랫폼 '픽조이'와 오디오 플랫폼 '픽클' 등을 통해 운전자 개인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초개인화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한 대가 한 달에 약 2.6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성하며, 이는 트위터가 1년 동안 생성하는 데이터양에 육박한다는 분석은 오비고가 집중하는 데이터 비즈니스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특히 2024년 4월 방문 정비 플랫폼 '카랑'을 인수한 것은 오프라인 서비스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독특한 성장 모델을 제시했다. 차량 내 인공지능이 엔진오일 교체 시기를 감지해 알림을 보내고, 고객이 선택하면 정비사가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다. 정비 후에는 인공지능이 작업 사진을 분석해 적정성을 검증한다. 이는 차량의 전 생애 주기를 데이터로 관리하는 서비스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황 대표는 내년에 새로운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들을 국내외 시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며, 차에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초개인화 콘텐츠와 차량 안전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 핵심 방향이라고 밝혔다.
재무적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2023년 144억 원이었던 매출은 2024년 3분기 누적 249억 원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2024년 3분기 별도 기준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플랫폼 비즈니스의 수익 모델을 증명했다. 2025년에는 연간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미 계약된 로열티 매출이 매년 수십억 원씩 안정적으로 유입되는 구조를 갖췄다. 삼성전자의 하만이 9조 원(약 70억 달러)에서 14조 8,500억 원(약 110억 달러) 이상으로 사업 규모를 키우며 제트에프의 사업부를 인수한 환경은 오비고와 같은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에 거대한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과거 자동차가 마력과 토크로 말하던 시대였다면, 이제는 얼마나 똑똑하게 운전자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느냐가 승부처다. 황도연 대표는 지금의 변화를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비유하며, 카카오톡이나 쿠팡 같은 새로운 강자가 자동차 시장에서도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오비고는 그 변화의 중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스마트카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10년에서 20년 동안 자동차 산업의 핵심 분야를 지배하겠다는 포부다. 하드웨어가 깡통이 되는 시대, 오비고가 구축한 소프트웨어 생태계는 미래 모빌리티의 새로운 두뇌이자 심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와 오비고 사이의 구체적인 관계와 시너지 효과는 다음과 같다.
SDV 생태계 확장 및 가치 부각: 삼성전자가 자율주행의 핵심인 ADAS 사업을 대폭 강화함에 따라, 차량 내에서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고 관리하는 오비고의 SDV 솔루션 경쟁력이 시장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삼성의 이번 행보는 자동차 산업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상징하며, 이 과정에서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오비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만과의 실질적 협력: 오비고는 삼성전자의 전장 자회사인 하만이 운영하는 차량용 앱스토어 '하만 이그나이트 스토어(Harman Ignite Store)'에 자사의 제품을 출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오비고의 서비스를 차량 내에서 직접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예정이다.
인적 네트워크와 기술적 접점: 오비고의 주요 임원진 중에는 하만(Harman Connected Services) 이사 출신 등 관련 업계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어, 기술적 협력과 비즈니스 전개에 있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 내 수혜주 분류: 삼성전자의 대규모 전장 사업 투자 소식이 발표될 때마다 오비고는 현대차, 토요타, 르노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에 이미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는 검증된 파트너라는 점이 부각되며 시장에서 주요 수혜주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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