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당국은 지난 6월 티빙과 웨이브의 결합을 조건부로 통과시켰다. 핵심은 일정 기간 구독료를 유지하는 등 소비자 보호 조건이 걸렸다는 점이다. 시장에선 “둘이 합쳐 국내에서 버티는 체급을 만들되, 그 비용을 당장 이용자에게 전가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OTT 업계는 그동안 ‘콘텐츠 투자 경쟁’이 곧 ‘적자 경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돼 왔다. 이용자 입장에선 선택지가 늘었지만, 사업자 입장에선 제작비와 마케팅비가 누적되는 방식이었다. 조건부 승인 이후 토종 OTT의 전략은 더 분명해졌다. 중복 투자를 줄이고, 가입자 기반을 합쳐 협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무게가 쏠렸다.
조건부 승인만으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결합 절차는 주주 이해관계 등으로 속도가 나지 않았다. 양사는 지난 6월 16일 ‘더블 이용권’(두 서비스를 함께 쓰는 구독 상품)을 먼저 내놓으며, 이용자 단에서 결합을 시작했다.
이 대목이 2025년을 상징한다. 법적·지배구조적 결합은 시간이 걸리지만, 시장 반응은 ‘상품’으로 먼저 확인한다. 통합 이용권은 단순한 프로모션이 아니라 “결합이 지연돼도 통합 경험은 먼저 만들겠다”는 신호다. 향후 통합 서비스가 출범한다면, 가격 설계와 콘텐츠 배치, 추천·탐색 UX(이용자 경험)를 어떻게 한 화면에서 풀어낼지가 다음 승부처가 됐다.
업계에선 요금 인상을 단순히 넷플릭스만의 정책 변화가 아닌 전체 시장 기준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신호로 본다. 가입자당 매출(ARPU)을 올려야 콘텐츠 투자 여력이 생기고, 그 투자 여력은 다시 경쟁력을 만든다. 올해는 그 ‘고리’가 가격을 통해 다시 확인된 해였다.
티빙은 11월 일본 디즈니+에 ‘TVING 컬렉션’을 열었다. 디즈니+ 플랫폼 안에 한국 OTT 브랜드 전용관을 올리는 방식으로, 국내 OTT의 해외 유통망 진입 실험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국내 OTT의 해외 확장은 ‘자체 서비스로 직접 진출’ 혹은 ‘콘텐츠를 납품’하는 두 갈래가 주류였다. 전용관 형태는 그 중간 지점에 가깝다. 콘텐츠를 단순 공급하는 수준을 넘어, 플랫폼 안에서 ‘브랜드 단위의 큐레이션(작품을 골라 묶어 추천·배치하는 편집)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향후 다른 국가·다른 플랫폼에서도 비슷한 모델이 확산될지 주목된다.
웹툰은 한국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확장했지만, 오랫동안 ‘원작 지식재산권(IP)을 공급하는 산업’으로 묶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건은 반대로, 글로벌 IP 보유자가 ‘웹툰 플랫폼 자체’를 유통 채널로 인정한 장면이다. 웹툰이 드라마·영화로 넘어가기 전 단계의 ‘중간재’가 아니라, IP를 직접 소비시키는 1차 유통망으로 올라섰다는 의미를 갖는다.
네이버웹툰은 9월 1일 ‘컷츠’를 전면 공개했다. 웹툰을 ‘읽는’ 콘텐츠에서 ‘짧게 보는’ 영상형 이용자 제작 콘텐츠로 넓히며 젠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 소비 습관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변화는 포맷의 문제가 아니라 체류시간과 발견의 문제로 이어진다. 짧은 영상은 알고리즘 추천과 공유에 유리하고, 신규 이용자가 유입되는 속도가 빠르다. 웹툰 플랫폼 경쟁이 ‘작품’에서 피드(추천 화면) 노출로까지 확장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올해의 포인트는 ‘단속’이 더이상 사후 처리로만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술(워터마킹·추적)과 운영(신고·차단), 법무(소송·국제 공조)가 한 패키지로 굴러가야 한다. 플랫폼의 경쟁력은 작품 라인업만이 아니라, 이 패키지의 효율로도 평가받기 시작했다.
카카오는 상반기 카카오엔터의 지분 구조 변경을 검토했지만, 8월에는 관련 논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매각이냐, 투자 유치냐, 상장이냐’처럼 큰 자금이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는 점이다.
카카오엔터는 웹툰·웹소설(원작)부터 음악, 영상 제작·유통까지 한 회사에 묶인 구조다. 이런 종합 콘텐츠사는 오리지널 제작비, 인기 IP 확보 비용, 해외 마케팅 등으로 현금이 계속 필요한 사업이다. 그래서 지분 매각이나 상장 같은 자금 조달 이벤트는 단순한 재무 이슈가 아니라 ‘오리지널 투자와 글로벌 확장 속도를 얼마나 올릴 수 있느냐’와 직결된다.
올해 ‘검토 중단’은 당장 대규모 자금 유입 기대가 낮아졌다는 신호로 읽히며, 콘텐츠 기업도 결국 자본시장 환경과 투자 심리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다시 드러냈다.
게임 분야에서 가장 체감이 큰 변화는 규제의 성격 변화였다. 확률형 아이템(뽑기형 유료 상품) 표시·고지 의무 위반에 대한 이용자 보호 장치가 올해 본격화됐다. 업계는 8월 1일을 기점으로 입증책임 전환(게임사가 ‘위반이 없었다’를 설명해야 하는 구조)과 최대 3배 손해배상 등 민사 리스크가 커졌다고 보고 대응 체계를 재정비했다.
이는 단순히 확률을 공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부 데이터·로그(서비스 운영 기록)를 어떻게 보관하고, 어떤 방식으로 설명 가능한 형태로 남기며, 분쟁이 생겼을 때 어느 부서가 책임지고 대응할지까지 포함한다. ‘라이브 서비스 운영’의 한 축이 콘텐츠 업데이트에서 컴플라이언스(규정 준수 체계)로 넘어왔다는 해석이 나온다.
게임 쪽에서는 ‘해외’ 축에서 성과와 확장도 동시에 나왔다. 넥슨 자회사 엠바크의 ‘아크 레이더스’는 12월 열린 ‘더 게임 어워드(TGA) 2025’에서 ‘베스트 멀티플레이어(멀티플레이 게임 부문)’를 수상했다. 한국 게임사의 영향력이 국내 개발작을 넘어, 해외 스튜디오 포트폴리오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증명되는 흐름이 확인됐다. 크래프톤은 6월 24일 일본 ADK 인수를 발표하며 게임 IP를 광고·애니메이션 제작망까지 연결하려는 행보를 드러냈다. 게임사가 ‘게임만 만드는 회사’에서 IP 제작·유통 체인을 가진 회사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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