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전편까지 작전적 사고의 정의와 유래, 세계 주요 강대국들의 작전적 사고, 한국군 작전적 사고의 뿌리와 형성 과정을 살펴 보았다. 역사적 성찰을 통해 우리 군의 정체성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그 토대 위에 우리가 마주할 미래 전쟁이라는 가혹한 현실을 올려두어야 할 때다. 미래전은 아직 오지 않은 전쟁이 아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대만해협을 둘러싼 위기 논의 속에서 그 양상은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전쟁들이 서로 다른 지역과 조건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전개되는 방식에는 공통된 흐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의 안보 환경은 이제 남북 간의 재래식 화력 비교라는 평면적 틀을 완전히 탈피했다. 인구 절벽이라는 내부적 한계, AI와 드론이 주도하는 기술적 변곡점, 그리고 대만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요동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퍼펙트 스톰’의 한복판에 서 있다.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래전 역시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라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전쟁양상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핵·비대칭위협 등 한반도의 특징적인 요소를 고려하면 기존의 우리가 알던 전쟁의 정의를 파괴하는 초복합적 양상을 띨 것이다.
◇양대 전쟁과 대만해협 위협의 교훈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전장의 성격이다. 드론을 중심으로 한 감시·정찰 체계의 확산은 전장을 사실상 ‘투명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병력이나 장비가 노출되는 순간, 곧바로 포병이나 정밀 타격이 이어지는 구조가 일상화되었다. 이로 인해 전쟁의 핵심은 병력 규모나 장비 수량이 아니라, 누가 더 빨리 발견하고, 더 빨리 결심하고, 더 빨리 타격하느냐의 문제로 이동했다.
또한 전자전과 사이버 공격은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지휘·통신 체계를 마비시켜 상대의 결심을 늦추는 핵심 전쟁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래전이 ‘전력의 경쟁’이 아니라 시간과 템포를 둘러싼 경쟁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는 한반도에서도 전쟁의 승패가 초기 수 시간, 수일 내에 결정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또 다른 방향의 교훈을 제공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정면 전력 경쟁을 피하고, 도시와 지하 공간을 전장으로 흡수함으로써 전쟁을 극도로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하 터널망은 은신처를 넘어 기동·보급·기습·지휘가 가능한 작전 공간으로 기능했고, 이는 첨단 전력을 보유한 군대의 장점을 상당 부분 상쇄했다.
이 전쟁이 보여준 핵심은 분명하다. 약자는 전장을 바꾸고, 강자는 그 전장에 적응해야 한다. 미래전은 빠른 전쟁인 동시에 느린 전쟁이 될 수 있으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전장은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인구 밀집도와 도시화 수준이 높은 한반도 역시 이러한 전장 양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대만해협 위협은 미래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 지역에서 논의되는 전쟁 시나리오는 상륙 침공만이 아니다. 봉쇄, 압박, 정보전, 경제적 교란을 통해 상대 사회와 동맹의 결심을 흔드는 방식이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전쟁이 총성 울리기 이전부터 이미 시작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앞서 중국군의 작전적사고에서 언급했듯이 지능화전과 체계대항전을 결합한 ‘시스템 봉쇄전’으로 대만의 지휘·통신·심리체계를 마비시키려 할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한반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과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 역시 불가피하게 그 전쟁과 연동된다. 한반도는 전쟁의 주전장이 아니더라도, 기지·병참·증원과 관련된 전략 공간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외부 전쟁과 맞물린 연동된 전쟁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기술적 임계점이 만든 새로운 현실
상기한 전쟁 양상을 가속하는 것이 바로 합동 전 영역 작전(JADO) 및 합동 전 영역 지휘통제(JADC2) 개념, 인공지능(AI), 유·무인 복합전투체계(MUM-T), 드론봇 전투체계 등의 과학기술이다. JADO와 JADC2 개념은 전장을 육·해·공으로 분절하지 않고, 사이버·우주·전자기 영역까지 포함해 하나의 전장으로 묶는다. 이는 전쟁이 영역별로 순차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전개되는 구조로 고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AI는 결심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폭증하는 정보를 정리해 지휘관이 결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드론봇은 전장을 투명하게 만들고, 소모를 전제한 저비용 고빈도 타격을 일상화한다. MUM-T는 이러한 무인전력을 유인전력과 결합해 전쟁의 위험을 분산시키고, 전투의 양상을 더욱 복합적으로 만든다. 중요한 점은 기술이 전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바뀐 전쟁 양상을 기술이 따라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에서 미래전 양상을 규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북한의 핵과 비대칭 위협이다. 북한의 핵은 반드시 사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무기가 아니라, 전쟁의 문턱을 조정하고 우리의 결심을 마비 또는 지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핵 위협은 동맹의 개입을 흔들고, 전쟁을 관리 가능한 국면으로 제한하려는 시도와 결합될 수 있다. 핵 위협을 배경으로 사이버 공격, 가짜뉴스 배포, 국가 중요 인프라 파괴 등을 동시에 감행하여 우리 군과 사회의 의지를 꺾는 인지전이 전쟁의 서막을 열 것이다.
또한 북한의 장사정포와 미사일 전력은 개전 초기에 아군의 지휘결심체계를 물리적·사이버적으로 동시 타격할 것이다. 이는 우리 군 지휘부가 상황을 판단하고 명령을 내릴 시간을 주지않는 시간압축전략(결심할 시간을 주지않는 방식)이다. 여기에 전자전, GPS 교란, 드론과 특수작전이 더해질 경우 한반도의 미래전은 국지도발과 장거리 타격, 후방 교란이 동시에 발생하는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전통적인 단계적 대응이나 단일 작전 개념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 양상이다.
◇미래 전쟁, 관리형·수세적 사고로는 안돼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 한반도의 미래전은 세 가지 실체로 요약된다. 첫째 전영역 동시성으로 전방과 후방, 지상과 사이버, 물리적 타격과 심리적 조작이 경계없이 동시에 쏟아지는 전장이다. 둘째, 결심템포의 전쟁으로 누가 더 많은 화력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빨리 전장을 인식하고 결심하여 적의 OODA(Observe, orient, decide, act) 루프를 끊느냐의 싸움이다. 셋째, 기능적 소멸 경쟁으로 적의 영토를 밟고 지나가는 소모전보다 적의 전쟁수행기능을 먼저 소멸시키는 쪽이 승리하는 시스템 전쟁인 것이다.
이같은 세 가지 실체를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전쟁양상을 예상해보면, 핵 위협과 인지전이 결합된 결심지연형 전쟁, 장사정포 및 미사일 타격, 국지도발과 후방 교란이 동시에 발생하는 전쟁, 도시·지하·민간 인프라가 전장으로 흡수되는 복합 전쟁, 유무인 복합 및 무인체계 통합 드론 / 로봇전, 군사적 충돌 이전부터 사회와 국가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시스템 마비전쟁이 될 것이다.
미래 한반도의 전쟁은 단일 전선의 전면전이 아니라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 일본의 군사적 역할 변화가 연동된 환경 속에서 핵·비대칭 위협과 첨단기술이 결합되어, 전선없는 공간에서 결심을 지연시키고 흔들며 전쟁과 평시의 경계를 흐리는 초복합전쟁의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전쟁 양상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전쟁은 언제나 예상보다 빠르고, 예상보다 복잡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미래 한반도 전쟁의 양상은 기술적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으며, 지정학적 복합 위협은 우리 군에게 기존의 ‘관리형·수세적 사고’를 완전히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적의 위협에 단순히 반응하는 수준으로는 이 거대한 파고를 넘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북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거대한 지정학적 격랑 속에서 ‘누가 먼저 전장을 설계하여 적을 무력화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생존 질문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분석적 토대 위에서 우리는 수세적 관성을 깨뜨리고 전 영역의 효과를 공세적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작전적 사고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