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둔 제약바이오 업계가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의약품 가격을 큰 폭으로 내리는 정부의 약가 제도 개편안이 "사실상 국내 제약산업 미래에 대한 포기선언과 같다"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약가 인하의 대상인 제네릭(복제약)은 제약 산업의 절반(53%)을 차지하는 캐시카우로, 이 매출원을 통해 기업은 신약 개발에 투자하고 한 해 살림살이를 꾸린다.
27일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 따르면 제네릭 가격을 오리지널 의약품의 40%(기존 53.55%)로 낮추는 약가 인하 방안이 시행된다면,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의 손실이 날 수 있다.
정부는 약가 산정률을 주요국 수준으로 조정하겠다며, 신규 제네릭의 가격을 오리지널 대비 40%대 수준에서 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등재 의약품 중 인하 대상 품목에 대해서도 40%대 수준으로 3년간 순차 인하를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이후에 약가 조정없이 최초 산정가(53.55%) 수준에서 유지되는 약이 우선 대상이다. 안정적 수급이 필요한 약제는 제외된다.
인하율은 '40%대' 수준에서 언급되며 특정 안됐으나, 비대위는 신규 등재 약가 인하·주기적인 약가 조정 기전에 따라 40%로 귀결될 것으로 보고 이 경우 연 최대 3조6000억원의 피해를 추정했다. 작년 약품비(26조8000억원) 중 제네릭 비중(53%)을 반영해 인하율 25.3%(53.55%→40%)를 적용한 수치다.
현재 매출 상위 100개 제약사의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에 불과하다. 고환율과 불경기는 내수 중심 사업구조를 가진 제약기업들의 경영환경을 몇 년간 위축시켜왔던 터다.
최근 비대위의 긴급 기자회견에서 윤웅섭 공동위원장(일동제약 대표)은 "지금의 경영황경은 지난 2012년 일괄 약가인하(평균 14%)를 단행할 때와 분명히 다르다"며 "이런 상황에서의 약가 인하가 가져오는 건 제약산업 지속가능성의 붕괴일 것이다. 상위 제약사든 중소제약사든 우리 산업의 기반이 제네릭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5대 강국 목표라면서…"원료 기반 흔들·1만5000명 고용 감축 위험"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이 분야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할 갈림길에 놓여 있다.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만료(매출 하락) 위기에 대응하려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새 기술을 사들이는데 여념 없고, 아시아 기업들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 속에서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 수출은 올해 20조원을 넘으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글로벌 흐름 변화와 K바이오의 기술 성장이 합을 이뤄, 고속도로에 이제 막 올라탄 것이다.
정부 역시 '제약바이오 글로벌 5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세웠다. 블록버스터 신약 3개 창출 같은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윤 위원장은 "이처럼 중요한 순간에 약가 인하는 R&D와 품질 혁신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신약 개발, 기술 수출로 이어온 성장 동력을 상실케 한다. 신약 R&D와 설비 투자의 소스가 막힌다면 산업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슈가 생길 것이고 결국 수입의약품에 의존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기업 수익 1% 감소 시 R&D 활동이 1.5% 감소한다는 조사결과(Philipson T&Durie T)도 제시했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의약품 공급 중단, 원료의약품 기반 훼손, 고용 감축 위험도 예고되고 있다.
중소 규모 제약사 관계자는 "채산성 악화가 우려된다"며 "40%대로 약값을 인하하면 영업이익률을 낼 수 없다. 당장 채산성 악화 품목부터 줄이거나 생산 중단할 수밖에 없으므로 품절 이슈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1~11월 공급 중단·부족 의약품 275개 품목 중 '채산성 부족' 원인이 38.6% 상당이었다. 이어 "저가의 해외 원료를 더 찾게 되니 안그래도 취약한 원료의약품 자급 기반도 더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약가 인하 시 산업 전체 종사자 12만명의 10% 이상인 1만4800명 실직 우려도 제기됐다. 류형선 비대위 부위원장(다산제약 대표)은 "제약산업은 고정비가 높은 산업으로, 필연적으로 고용 조정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도 산업 기반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성명을 내고 "제약바이오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는 공감하면서도, 혁신이란 이름 아래 산업 현실을 외면하고 국산 의약품 공급 기반을 약화시키는 정책의 분명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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