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친 결정이었죠.
정말 들어오고 싶었던 회사이기도 하고, 특히나 요즘 같은 시기에는 비이성적인 판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로 돌아간다면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똑같이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한 두어 달 쉬다가
쿠팡 아르바이트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쉬는 기간 동안 머리가 맑아지고, 다시 나는 '뭘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개인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주 일하시는 분들께는 우스운 일이겠지만,
제게 있어 쿠팡 아르바이트 = 택배 상하차 라는 막연한 이미지였고
제 의지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나는 앞으로 뭐든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고민이 들 때 이런 선택들이 종종 뒤따르곤 하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약 2주 동안,
용인 3,5센터에서 일용직 단기 신청을 계속 넣어 근무를 했습니다.
2주 동안 총 8일 일한 것 같네요.
개발자로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올빼미가 되었던 저는
오후 근무(02시 퇴근) 스케줄을 선택했고,
따라서 어두컴컴했기에 통근 버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쿠팡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의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서 적응이 조금 안 되었습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중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이 있어요
이런 그림인데,
정말 딱 이게 떠올랐습니다.
고되어 보이는 사람들,
어딘가 아파 보이는 사람들,
얼굴에는 불행이 꽃피어 있고,
안색이 노람과 동시에 창백함이 공존하는 어딘가 어두컴컴한 분들이,
(처음에는 몰랐지만) 마침 쉬는 시간이어서 방한복을 입고 이곳 저곳에 아무렇게나 엎어져있는 것을 보면서,
오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마음을 단단히 다잡기도 했습니다.
교육을 받았고
첫 근무는 냉동센터였습니다.
첫 날, 계약직처럼 보이는 사복 차림의 분들이 누군가의 사망 사고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보고
'그럴 만 하겠다'라고 느꼈어요.
처음 출근 당시에 로비에서 느꼈던 무언가 안색이 너무 안 좋아보이는 분들의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습니다.(3시간 만에 처음으로 화장실을 간 것인데, 파란 조끼를 입은 분이 날카롭게 노려보면서 꼽을 주더라구요 ㅋㅋ)
안색이 질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맡아 보는, 오줌 냄새도 아니고 진짜 처음 맡아보는 화장실 냄새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제 첫 업무는 냉동 창고에서 쟈키라는 것을 이용해 각 지역에 해당하는 구역으로 중량식품물들을 옮기는 것이었는데,
정말 이게 '막노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몇 시간은 고되지 않지만 마지막 6시간 이후부터는 정말 힘들었고요.
예전에 제가 쿠팡 아르바이트라고는 염두에 두지도 못 했을 때,
쿠팡 아르바이트를 러시아 수용소 생활로 이입해서 일을한다는 둥의 유튜브 썰 쇼츠를 보았던 것이 기억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피곤해했습니다.
파란 조끼를 입은 분들은 직원들에게 정말 불손하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원들 역시 하나의 인격체이고, 저처럼 다른 환경에서 오신 분들도 있으셨나본지 이러한 홀대에 견디지 못하고 파란 조끼 분과 고성을 내지르며 한바탕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2주 간의 근무에서 꽤 자주(겪었단 사회에 비하면)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밥은 정말 드럽게 맛이 없었어요.
노가다 함바집 같은 곳들은 힘을 낼 수 있게 제육, 닭볶음탕 등의 음식들을 자주 준다는데,
여기는 먹고 잠들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탄수화물 투성이더군요.
여기는 도대체 뭐가 들을 거지? 싶은 흐물거리는 이상한 야채죽과,
쌩 쌀밥, 그리고 질 나쁜 어묵 몇 쪼가리 등
도무지가 의욕이 안 생기는 식사였어요.
제가 기준이 높은 게 아니라 정말 정말 별로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첫 날 근무는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집에 오자 마자 샤워만 겨우 하고 지쳐 쓰러지듯 잠에 들었습니다.
헬스를 해 생긴 근육이 왜 풍근이라고 불리는지,
그리고 실압근이라는 게 실제로 유효한 개념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는데
한 번에 이해가 됐어요.
잠들기 전에 스치듯 그런 생각이 침잠하듯 떠오르면서, 돌연 주변이 밝아졌고, 해가 떴고, 다음 날이 시작됐습니다.
시간은 15시가 넘어 있었고,
카톡창에는 '출근 확정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세지가 와 있었어요.
정말 지어낸 게 아니라,
'축하는 개뿔이 시발'이라고 욕지거리를 투덜거리면서 침대에서 일어나고는 살짝 놀랐습니다.
하루만에 살짝 괴팍해졌다는 우스운 생각을 하면서,
피로를 느끼는 몸을 이끌고 출근 준비를 했습니다.
'그냥 가지 말까'라는 유혹이 몸을 엄습했고
사람에게 자유란 마냥 좋은 것만이 아님을 다시 절실히 깨달았죠.(제가 제 의향대로 퇴사를 한 것 같이 말이에요)
차라리 2주간 강제로 해야 됐더라면 기분이 좀 나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센터인 용인 5센터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알고 보니 3센터 = 5센터이지만, 별개의 센터로 취급을 받아 교육을 다시 받았습니다.
다시 교육을 받으며 교육 받는 시간이 소중히 느껴졌습니다.
첫 날의 마지막 1시간은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일반 근무라면 그것보다 한 시간을 더 했어야 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약간의 위안을 갖게 되더라고요.
여하튼 이번에는 냉장 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두 번째 일은 pda 단말기를 들고 다니면서 토트 바구니에 출고되는 식품들을 넣고 그것을 레일에 올려보내는 일이었는데요,
어제보다는 덜 춥다는 점에서 훨씬 나은 일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깔창 조차 없는 안전화를 신고 몇 키로를 걸어 다니다 보니 발이 너무 아파 절뚝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나중에는 많은 분들이 조금이라도 절뚝이고 있고,
빨간 조끼를 입은 관리자 분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는 모습을 보니 조금 웃겼습니다.
이게 정상이라는 거죠.
여기서는 이게 정상이고 발이 아프고, 아픔과 고통을 겪다가 사라지면 새로 채우면 그만인 그런 대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여기서도 화장실 관련 지적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번 화장실 지적이 발생해서,
화장실 가는 시간을 확인하고 잠시 다녀왔습니다.
불과 5분의 시간이었어요.
일한 분들은 아실 겁니다.
화장실과 근무 장소의 거리가 멀어서, 5분은 정말 최소 시간으로 볼일을 보고 온 시간입니다.
일을 다시 하려고 pda를 켜 보니,
pda는 잠겨 있고, 지금 당장 무슨 데스크로 와서 관리자 면담을 하라고 하더군요.
내심 짐작은 갔지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었고,
따라서 다른 일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서 얘기를 들어 봤더니,
화장실은 허락을 맡고 가랍니다.
정말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 찰나,
(분명 제가 말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일부러 어딘가로 무전을 걸더군요.
그렇게 제가 꺼져줄 때까지 무전은 계속되었습니다.
저도 맥이 빠져서 다시 일을 시작했죠.
전반적으로 관리자들이 문제가 많아 보였습니다.
이 관리자들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일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지,
일용직 사원들의 병들고 질린 안색이 이렇게 만든 건지,
아니면 일용직 사원들이 병들고 질린 게 이 분들 때문인지,
그 날 남은 근무 시간동안 생각했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었고,
출구에 위치한 흡연실에서 아까 그 빨간 조끼를 입고 계시던, 제게 화장실 관련 뭐라고 하셨던 여자 분이
천박하게 욕을 하면서 개인 의자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 질 나빠 보이는 남자 무리들과 깔깔대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현탐이 왔습니다.
제가 몸 담았던 사회에서는 전혀 보이질 않는 유형의 사람들이었는데, 위화감을 느꼈어요.
마치 자기들만의 서열이 형성되어 있는, 고등학생들이 몸만 늙으면 저렇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같이요.
용인 센터의 경우 주차장이 마땅히 없어서
자차를 끌고 출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셔틀을 타야 했는데,
출퇴근 왕복 시간이 3.5시간정도 걸렸어요(정확히는 도착해서도 날아가는 시간 같은 시간들이 너무 많았어요)
안 그래도 일도 고된 편인데 개인시간까지 날아가는 주제에 최저시급이라
제 정신 멀쩡히 박힌 사람이라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저는 2주동안 계속 근무 신청을 했습니다.
무슨 상하차 같은 것도 하고,
래핑도 하고(이게 진짜 너무 힘들었습니다.)
좋은 계약직 분들도 만나고
나름 다양한 경험도 했어요.
5일차부터는 몸도 꽤 적응이 되었지만,
확실히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제 개인적인 여정을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고
이렇게 글을 남겨 봅니다.
정말 사람 사는 냄새 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소소한 희노애락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무풍지대와도 같던 제 삶에 큰 경험이었습니다.
혹자는 겨우 쿠팡 2주 일한 거 가지고 이런 감상까지 남기냐, 라고 하실 수 있는데
저는 아무래도 너무 나약한 사람인가봅니다.
동시에 관리자한테 그러한 취급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예민한 사람인가봐요.
쿠팡에서 오래간 일한 여러분들,
그리고 저처럼 느낌에도 모종의 사정으로 책임을 짊어지고자 힘든 길을 묵묵하게 견디고 있는 여러분들,
비록 행색은 좋아보이지 않고, 걱정될 정도로 건강이 상해 보인 분들도 계셨지만
여러분들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응원드리겠습니다.
짧은 글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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