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 뉴스 및 비즈니스 채널의 1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인도 간 무역 협정 협상이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외국 자본의 지속적인 유출이 이어지면서 인도 루피화가 큰 압박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루피화는 올해 아시아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부진한 성과를 기록한 통화로 평가받고 있다.
Nomura와 S&P Global Market Intelligence는 내년 3월 말까지 인도 루피화의 달러 대비 환율이 92루피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환율은 약 89.6루피 수준으로, 추가 약세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루피화의 향후 방향성이 상당 부분 미·인 무역 협정 체결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S&P 글로벌 머천다이징 아시아태평양 담당 이사 한나 루치니카바 숄시는 “현재 루피화는 저평가된 상태”라며 “미국과 인도의 무역 협정 전망이 개선될 경우 환율이 되돌림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S&P 글로벌은 향후 6개월 이내 양국이 무역 협정에 도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뉴델리와 워싱턴 간 협상이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인도는 전 세계에서 미국의 관세 부담이 가장 큰 국가 중 하나가 됐다. 일부 품목의 관세율은 50%에 달한다. 지난 8월 고율 관세가 발효된 이후 인도의 대미 수출은 9월과 10월에 각각 두 자릿수 감소세를 기록했으나, 11월에는 22.6% 증가하며 반등했다.
노무라의 인도·일본 외 아시아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 소나르 바르마는 “관세 인상이 지속될 경우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인도 기업들이 공급망 이전 과정에서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장기적인 불확실성으로 외국 자본 유출이 이어지고 있으며, 루피 약세는 수입 비용과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루피화 약세가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통화 가치 하락은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비교적 안정적인 인도 국내 물가 상승률은 수입 물가 상승 충격을 흡수할 여력을 제공한다는 분석이다.
올해 초 루피화 환율은 달러당 85.64루피 수준이었으나, 이달 초 90루피라는 심리적 저항선을 돌파한 데 이어 불과 15거래일 만에 91루피를 넘어섰다. National Securities Depository Limited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도 시장 순유출 규모는 이미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주식시장에서의 자금 이탈이 두드러져, 12월 19일 기준 해외 투자자들은 연초 이후 약 180억 달러어치 인도 주식을 순매도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루피 약세의 핵심 원인이 경상수지 적자에 있는 것은 아니며, 해당 적자는 관리 가능한 범위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외국 자본 유출 흐름이 반전되기 전까지 루피화가 지속적인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에는 의견이 모인다.
인도 중앙은행인 Reserve Bank of India는 최근 통화정책 회의에서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보도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최근 루피 급락을 억제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피화의 향방은 미·인 무역 협상 진전과 외국인 자금 흐름이라는 두 변수를 중심으로 당분간 변동성이 이어질 전망이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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