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 홍수 구호 지연에 분노 확산, 주민들 백기 시위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인도네시 홍수 구호 지연에 분노 확산, 주민들 백기 시위

BBC News 코리아 2025-12-26 17:16:57 신고

3줄요약
인도네시아 아체주 주민들이 국제적 연대를 호소하며 흰 깃발을 들고 있다
AFP via Getty Images
인도네시아 아체주 주민들이 국제적 연대를 호소하며 흰 깃발을 들고 있다

인도네시아 최서단 지역에서 심각한 홍수를 경험한 아체주 주민들이 정부의 늦장 대응에 항의하며 분노와 절망 속에서 수주째 흰 깃발을 내걸고 있다.

홍수는 11월 발생한 이례적인 사이클론으로 촉발됐으며, 수마트라섬 전역에서 1000명 이상이 숨지고 수십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 최악의 피해를 입은 아체주에 집중됐다. 여전히 많은 주민이 깨끗한 물과 식량, 전기, 의료 물자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달 초 북아체주 주지사가 공식 석상에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위기관리가 얼마나 참담한 상황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스마일 잘릴 북아체주 주지사는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중앙 정부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며 외국 원조를 거부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지난주 각료회의에서 "인도네시아는 이 재난을 극복할 역량이 있다"고 말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국가 재난을 선포하라는 요구도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다. 국가 재난이 선포되면 긴급 자금이 풀리고 구호 활동 절차가 간소화된다.

프라보워 행정부의 대응이 수동적이고, 체계가 없으며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런 평가가 2024년 2월 포퓰리즘 공약을 앞세워 당선된 프라보워 대통령의 대표적 수식어가 됐다고 평한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학교 무상 급식 제도는 올해 대규모 식중독 사태가 터져 이미 논란에 휩싸였다. 8월과 9월에는 실업률과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수천 명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수십 년 만의 최대 규모로 꼽히는 시위를 벌였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지지율은 약 78%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으나, 11월 홍수에 대한 정부 대응이 또 다른 정치적 과제로 부상했다.

진흙에서 놀고 있는 아체주의 아이들 모
AFP via Getty Images
아체주 주민 다수는 여전히 깨끗한 물과 식량, 전기 이용이 어렵다

절박한 도움 요청

지난 18일, 아체주 주도 반다아체에서 수십 명의 시위대가 흰 깃발을 흔들며 중앙 정부에 외국 원조를 수용을 요구했다.

군중 속 어린 소녀의 손에 들린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저는 겨우 세 살이에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세상에서 자라고 싶어요."

흰 깃발은 일반적으로 항복을 상징하지만, 시위대는 아체주 전역에 등장한 흰 깃발이 국제 사회의 연대를 호소하는 신호라고 말한다. 흰 깃발은 무너진 지붕 위와 침식된 강둑, 모스크 밖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내걸렸다.

시위에 참가한 후스눌 카와티닌사는 BBC에 "이 깃발은 항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아체 지역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지역 밖의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구조 신호"라고 말했다.

마을 전체가 휩쓸려 나가고 도로와 기반 시설이 광범위하게 파괴되면서 많은 지역 사회가 고립됐다. 생존자들은 질병과 굶주림을 호소하고 있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 누르미 알리는 "대체 언제까지 진흙과 홍수 물로 몸을 씻어야 하냐"고 외쳤다.

주 당국은 유엔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아체 주지사는 "(도움을 주는 곳이) 누구든, 어디든" 환영한다고 밝혔다.

프라보워 정부는 "국가적 규모"로 구호 작업이 진행 중이라며, 복구를 위해 약 60조 루피아(약 5조1660억원)를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재난의 재발

아체주 일부 주민은 이번 상황을 접하고 2004년 성탄절 다음 날의 쓰나미를 떠올린다. 역대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였고,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규모 9.1의 해저 지진이 쓰나미를 일으켜 최대 30m 높이의 파도가 그날 아침 인도양 연안을 강타해 10여 개국에서 약 23만 명이 숨졌다.

수십 년간의 내전으로 이미 황폐화된 아체주는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현지 주민들은 최근에야 삶을 재건했는데, 11월에 또다시 재난이 닥쳤다고 말한다.

이들은 2004년 쓰나미 당시에는 피해가 훨씬 컸음에도 불구하고 구호가 지금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고 회상한다.

당시 여러 국가, 세계은행 등의 다자 기구, 민간단체들이 복구를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원했다.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는 기금 및 지원 사업을 관리하는 전담 기구도 설립했다.

쓰나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린두 마잘리나는 "쓰나미 이후 모두가 행동에 나섰고 지역 사회가 빠르게 회복했다. 지금 겪는 고통이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현재 세 아이의 어머니인 마잘리나는 최근 홍수로 집이 침수된 이후 아이들을 먹여 살리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마잘리나는 마을로 물자가 들어올 때마다 주민들이 "굶주림 때문에 서로 좀비처럼 싸운다"고 덧붙였다.

여러 국가가 구호 지원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아랍에미리트(UAE)는 홍수 피해를 입은 메단시에 쌀 30톤과 구호품 300세트를 보냈으나, 중앙 정부의 "지침"을 이유로 당국이 모두 반송했다.

아체주 수해현장을 찾은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가운데)
Getty Images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가운데)과 그의 행정부를 향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비디얀디카 자티 페르카사 선임 정치 연구원에 따르면, 대통령이 국제 원조를 거부하는 것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함이다.

페르카사 연구원은 "외국 원조를 받아들이는 것은 외국 세력의 감시를 초래하는 일이며, [프라보워는] 실패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정치적으로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멜버른대학에서 아시아학을 연구하는 베디 하디즈 교수는 프라보워가 위기관리보다 "주권의 상징적 연출"을 우선시했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현장 상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프라보워가 팜유 농장 확대를 추진하는 등 홍수 피해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도 있다. 환경 단체들은 팜유 농장으로 인한 산림 파괴가 홍수 피해를 악화시켰다고 말한다.

린두 마잘리나는 처음에는 홍수에서 살아남아 운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재난 이후 상황이 오히려 더 나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마잘리나는 "매우 고통스럽고 비참한 상황"이라며, "시장부터 학교, 사무실까지 모든 것이 완전히 마비됐다. 내 아이들은 언제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추가 취재: 아크라물 무슬림, 리노 아보니타, 난다 파흐리자 바투바라

Copyright ⓒ BBC News 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