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까지 음악감독…"외국 생활에도 고국에 책임감 느껴"
라 스칼라 겸직에 "부담 덜한 삶"…내년 창단 70주년, 말러 등 레퍼토리 강화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KBS교향악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음악가를 사랑해주고 키워주고 도와주는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KBS교향악단 제10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국내 악단에 돌아온 정명훈(72)이 취임 일성으로 거창한 프로젝트 대신 소박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가 KBS교향악단을 이끄는 건 1998년 제5대 상임지휘자 이후 28년 만이다.
정명훈은 26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선임 기자회견에서 "20년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맡았을 때는 올림픽 대회에 나가는 것처럼 목표와 조건이 확실했지만, 그럴 때는 다 지났다"고 말했다.
정명훈은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인 내년 1월부터 3년간 음악감독으로서 오케스트라의 예술 운영을 총괄한다. 중장기 예술 전략을 수립하고 교향악단의 예술적 비전을 이끌어갈 예정이다.
정명훈은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 차기 음악감독과 함께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을 맡게 된 데 대해 "(나이가 들수록) 프로페셔널한 것보다 퍼스널한(개인적인) 것이 앞장서고 남게 된다"며 개인적인 인연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69년 피아니스트로 인연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1972년 19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KBS교향악단 지휘봉을 잡았다. 1998년에는 KBS교향악단 제5대 상임지휘자, 2022년부터는 명예직인 계관 지휘자로 여러 차례 KBS교향악단 무대에 올랐다.
정명훈은 고국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상한 게 외국 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항상 자기 나라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그것을 잊어버리지 못한다"며 "라 스칼라에서도 제가 하는 건 음악가를 사랑해주고 도와주는 것이다. KBS교향악단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정명훈은 구체적으로 오케스트라 음악을 향한 사랑을 일깨워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하는 건 음악가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며 "자기 속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시작하는 게 음악일 텐데, 오케스트라 안에 들어가면 그게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고 같이 만들어가는 음악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끔 도와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디션을 통해 음악가를 발굴하는 일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KBS교향악단이 내년 창단 70주년을 맞아 대표 레퍼토리를 강화하는 데에도 역할을 할 예정이다.
올해 계관 지휘자로서 KBS교향악단 기획연주회 '마스터즈' 시리즈로 브람스를 선보였던 정명훈은 내년에는 말러로 시리즈를 확장한다. 내년 3월 13일 말러 교향곡 5번, 10월 2일 말러 교향곡 4번을 들려준다.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가 3월 13일, 소프라노 크리스티아네 카르크가 10월 2일 각각 말러 가곡 협연자로 나선다.
KBS교향악단은 내년 4월 18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콘서트 버전을 연주한다. 정명훈은 1997년 베르디의 '오텔로'로 국내 최초 콘서트 오페라 형식을 선보인 이후 29년 만에 KBS교향악단과 오페라 무대를 연다. 메조 소프라노 알리사 콜로소바, 테너 갈레아노 살라스, 소프라노 김순영, 베이스 바리톤 김병길 등 정상급 성악가들이 함께한다.
정명훈은 지난 2023년부터 부산오페라하우스를 총괄하는 클래식부산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어 세 곳의 감독직을 잇달아 수행하게 됐다.
그는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은 데 따른 우려에 관해 "미국 등 다른 곳을 돌아다니며 지휘하는 것은 거의 하지 않는다"며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감독직을 맡는 다른 지휘자들보다 (부담이) 덜한 삶"이라고 했다.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링 시리즈) 등 새로운 레퍼토리 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너무 늦었다. 링 시리즈는 우리 아들에게 넘길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이승환 KBS교향악단 사장은 "지휘자님의 명성과 경험이 저희 오케스트라에도 스며들 것"이라며 "저희 음악가의 성장과 KBS교향악단의 세계 무대 위상 강화에 큰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KBS교향악단은 창단 70주년을 맞아 공영방송 악단의 역할도 강화한다.
대표 사업 '찾아가는 음악회'를 병원, 학교, 군부대, 도서 지역 등 문화 접근성이 낮은 곳을 중심으로 연 20회 내외로 운영한다. 서울 여의도에서 진행되던 '임산부를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도 내년부터는 각 지역에서 개최한다.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공영방송(PBI) 총회와 연계해 해외 방송음악 기관과 공동 프로젝트도 논의하고 있다.
박장범 KBS 사장은 "내년에 KBS교향악단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도록, 어렵게 결심해준 정명훈 지휘자님이 훨씬 더 능력을 발휘하도록 본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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