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 자산시장에서는 이른바 '산타랠리'가 자산별로 극명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뉴욕 증시와 금 가격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강세 흐름을 이어가는 반면, 가상자산 대장주 비트코인은 지지부진한 흐름 속에서 약세장 진입 여부를 가르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26일 가상자산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이날 오전 8만7400달러(약 1억2580만원) 선에서 거래되며 9만달러 회복에 실패했다. 일주일 전 대비 반등 폭은 2% 안팎에 그쳤고, 지난 10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 대비로는 약 30% 하락한 상태다. 가격은 뚜렷한 방향성을 찾지 못한 채 좁은 박스권에 갇혀 있다.
블룸버그는 "비트코인이 2022년 테라·루나 사태 이후 최악의 분기 성과를 기록할 가능성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주식시장이 위험자산 선호 심리 속에 랠리를 이어가고, 금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는 동안 비트코인은 '위험자산'도 '헤지 자산'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였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거래량 감소와 수급 약화가 동시에 나타나며 시장 존재감이 약화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옵션 만기가 최대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현지시간 26일 만기를 맞는 비트코인 옵션 규모는 약 230억달러(약 34조원)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만기 전후 가격 변동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투자자들의 방향성 베팅이 위축됐고, 이에 따라 시장 유동성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마저 4분기 들어 순유출로 전환되며 가격을 지지할 핵심 매수 주체가 사라졌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전통 자산시장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성탄절 휴장을 앞둔 지난 24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나란히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S&P500지수는 6932.05를 기록하며 올해 들어 38번째 최고가 기록을 새로 썼다.
미국 경제의 견조한 펀더멘털이 랠리를 뒷받침했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 확정치는 4.3%로 시장 예상치(3.2%)를 크게 웃돌았다. 여기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주식 매수 소식이 전해지며 나이키 주가가 4% 넘게 급등하는 등 개별 호재도 잇따랐다.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금 역시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 가격은 온스당 4500달러에 근접하며 1979년 이후 최고 수준의 연간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올해 상승률만 70%를 넘어서며 '디지털 금'을 자처해온 비트코인의 위상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현 국면을 단순한 조정이 아닌 '약세장 초입'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장 건전성 지표인 BCMI는 기준선인 0.5 아래로 하락했다. 이는 2019년과 2023년 급락 국면 직전에 나타났던 패턴과 유사하다.
장기 추세를 가늠하는 365일 이동평균선(약 10만2000달러)이 붕괴된 점도 추가 하락 우려를 키운다. 이에 따라 투자 심리를 반영하는 '공포·탐욕 지수'는 23~28 수준에 머물며 '극단적 공포' 구간에 진입했다.
디지털 자산 분석업체 BRN의 티모시 미시르 리서치 책임자는 "자본이 장기 헤지 수단으로 평가받는 실물자산과 전통 금융시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가상자산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대규모 옵션 만기가 종료되는 이후 8만5000달러 선이 무너질지 여부가 내년 초 가상자산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할 핵심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방어에 성공할 경우 반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만, 이 선이 붕괴될 경우 본격적인 약세장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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