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외부인 출입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펜스 설치 움직임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과거 일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나타났던 흐름이 이제는 일반 단지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보행로 차단 논란과 지자체와의 충돌 가능성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벌금을 물더라도 단지를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최근 서울 동대문구 한 대단지 아파트는 지자체 허가를 받아 단지 외곽 펜스를 추가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단지 내부 보행 동선 보호와 보안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주민들 상당수는 ‘정체성 강화’와 ‘자산 가치 보호’를 더 큰 이유로 꼽는다. 공사 이후 단지의 차별성이 커지면서 가격 방어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도 적지 않다. 실제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공사가 끝나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벌금 물어도 막겠다”… 주민 결속이 불러온 ‘닫힌 단지 시대’
강동구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고덕 일대의 한 아파트는 외부인 접근을 줄이기 위해 펜스와 자동문, 각종 통제 장치를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이미 상당 수준의 주민 동의를 확보했다. 현재 지자체 심의를 기다리는 상황으로, 허가만 떨어지면 공사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논란은 불가피하다. 단지 내부에 공공보행통로가 포함되어 있거나 주민 외 시민이 이용하도록 계획된 구간이 있을 경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 강남 일부 단지는 출입 차단용 담장을 먼저 세웠다가 벌금을 부과받았고, 경찰 조사까지 진행된 사례도 있었다.
그럼에도 높이 기준 등을 교묘히 피해 신고 대상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 지자체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심의 단계에서부터 통행권을 명확히 규정하고, 공공 기능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각종 조건을 붙이고 있다.
서울시는 일정 부분에 대해 지상권 등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통제를 강화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법정 공방까지 이어진 사건이 있었다. 당시 법원은 공공보행 기능 유지 의무를 강조하며 단지 측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인 출입이 불안하다”, “단지 프라이버시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집값을 방어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퍼지고 있다. 단지가 하나의 ‘요새’처럼 변모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많지만, 주민 결속과 안전 심리가 결합되면서 펜스 설치는 하나의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다. ‘열린 아파트 시대’가 저물고 ‘닫힌 단지 전성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단순한 보안 문제를 넘어 도시 공간과 공동체 문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이미 달라졌다. 주민들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는다. 결국, 서울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이어지는 이 ‘펜스 전쟁’은 당분간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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