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라 더봄] 흑인과 여성 차별에 항거한 페이스 링골드의 예술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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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라 더봄] 흑인과 여성 차별에 항거한 페이스 링골드의 예술과 삶

여성경제신문 2025-12-26 13:00:00 신고

American People series #20: DIE.  Faith Ringgold 196 /Courtesy of MoMA NY.
American People series #20: DIE.  Faith Ringgold 196 /Courtesy of MoMA NY.

페이스 링골드: 사회적 미학 실천가 (1930 10. 08~2024 04.13)

지난번에 미술계에 만연한 각종 계급주의와 차별 요소 중 미술 형식, 남녀 성차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가들을 소개하며 그들이 삶과 예술적 활동을 통해 보여준 여러 형태의 표현 방식을 소개했었다.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와 루이 부르조아(Louise Bourgeois)는 사실 그 중심에 꼭 다루고 싶던 작가들이었지만 개별적으로 심도 있게 다루고 싶어 제외했었다.  

오늘은 페이스 링골드의 삶과 예술 활동에 관해 이야기하며 지난 반세기 동안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지위를 극복하고 지금의 평등과 자유를 성취하며 예술 활동을 통한 자아실현을 넘어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연계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면 대한민국은 숨차게 격변의 시간을 보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존립과 협업은 늘 그 정도의 조율을 두고 나를 갈등하게 했다. 하지만 국가적, 사회적 위기 앞에선 그걸 따질 이유가 없게 된다.  

공동체의 질서와 상식의 근간이 흔들리면 개인의 그것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고 개인은 그것을 지키고 양육하는 데 일정량의 사회적 의무가 있다. 개인적으로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 때 그곳에 있으면서 소수민족으로서 처음으로 미국살이의 위기와 두려움을 경험했었다.

그들은 총이 있었고 그들의 경제적 능력은 한 국가의 존재 여탈을 결정할 수 있는 무서운 세력들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깊이 감추어지고 외면되어 왔던 오랜 인종과 계급 갈등이 부활하고 부와 권력으로 민주주의와 인간 존중의 기본권을 침탈하는 반이성적 폭력행위였다. 그것은 늘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Faith Ringgold, The American collection #6 “The Flagg is Bleeding #2” 1997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Faith Ringgold, The American collection #6 “The Flagg is Bleeding #2” 1997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평등과 자유 그리고 능력과 노력을 갖추면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이 현상들은 그 물리적 힘의 열등성과 관습의 테두리와 함께 살면서 어떻게 극복되고 양육되었는가?  

마침 국회의사당 사태 이후 내가 일했던 미국 워싱턴 DC 근교 글랜스톤 뮤지움에선 지난 60년 넘게 예술가로서 시대의 모든 모순과 불합리에 맞서 싸우며 자신만의 다양하고 유니크한 미디움을 이용한 예술세계를 창조하고 현실운동가로 시대를 살아온 페이스 링골드의 전 시대 작품 전시가 오픈되었다(2021. 04. 08~10. 24 Glenstone Museum).  

당시 91세의 노구로 푸른색 반짝이로 만든 마스크를 하고 전시를 둘러보는 그녀의 눈은 총명하게 빛났지만 말을 아꼈었다. 노예선을 타고 오는 흑인들의 고행들로 시작되는 작품들은 American People series(1963~1967), 60년대 혼란과 갈등의 Black Power theme을 거쳐 Black Light series로 이어지며 더욱 어두운 색조로 전환되는 검은 빛의 미학을 발전시켜 온 작품들로 연결되고 Frecnch Connection series로 마무리된다.  

감상의 끝에 그녀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현재 상황을 염두에 둔 듯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라고 조용히 읊조렸다. 불평등과 계급 그리고 자본으로 대신되는 권력은 여전히 모양새를 바꾸며 존재해 있다.

Faith Ringgold, 1964 American People #4 The Civil Rights Triangle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Faith Ringgold, 1964 American People #4 The Civil Rights Triangle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페이스 링골드의 예술과 삶은 인종차별, 성차별, 흑인 문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로 백인 예술계에서 비판받고 거절되어 왔다. 비평가와 갤러리들은 그녀가 백인을 묘사하거나 위계질서에 도전하는 것을 꺼렸고 그녀의 강력하고 서사적인 작품들, 특히 아메리칸 피플 시리즈는 어떤 퍼블릭 공간에도 전시될 수 없었다.  

그녀는 60년대 말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블랙 파워 운동이 일어났을 때,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살아남고 끊임없이 생산하고 저항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구축하기 위해 인물화와 섬유 예술 작업으로 시대를 서사하는 콘텐츠에 집중해 왔다.  

뉴욕 할렘의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나 패션 디자이너 엄마에게 영향받고 자라며 예술혼을 키웠지만 인생 자체가 인종, 계급, 성차별의 대상이 되어 좌절되고 억압받았던 사회적 결핍은 그녀의 영감이 되고 그 저항심은 창작의 저력이 되었다.

이미 20대에 페미니즘 운동과 반인종차별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미술관들이 여성이나 흑인 작가들의 전시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시위를 주도하다 입건되기도 했었고 그 후 왕성한 사회참여는 정치적으로 격동적인 시대를 겪으며 인종과 성평등 문제들과 더불어 연대하며 개인 경험과 아프리카 문화 차용을 작품으로 융합한 그녀만의 화풍과 정신으로 고양해 갔다.  

예술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뿐 아니라 그 경험과 삶의 깊이가 행위로 표현되어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다. 

링골드는 특별히 그녀의 초기 작품 American People Series(1963~1967)에서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를 사용하여 볼륨감, 드라마, 입체감을 연출하는 서양 미술의 그림자가 있는 형식(chiaroscuro 카이로스쿠로: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까지 다 빈치, 카라바조, 렘브란트 등이 즐겨 썼던 기법)에 의존하는 것을 거부했다.

대신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받은 평평한 그래픽 스타일을 채택하며 인물의 음영을 강조하고 단순한 형태는 강하고 대담한 패턴을 만들어내며 거의 존재감이 없이 표현된 어두운 피부의 남성들이 있지만 밝은 피부의 남성이 우뚝 서 권력의 위계를 보이고 여성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초현실주의로 표현하였다.

여성은 말 그대로 시대를 초월하는 존재였다.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깨닫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의 기법들은 비서구적인 미학에 기여하고 '슈퍼 리얼’이라는 스타일로 백인과 흑인 간의 긴장된 모호함과 위선을 묘사하고 있다.

링골드의 블랙 라이트 시리즈(1967~1969)는 미국의 흑인 정체성, 인종, 페미니즘을 탐구하는 중요한 그림 세트로, 아프리카 예술과 정치 포스터에서 영감받은 평평하고 대담한 색채를 사용하여 흑인의 삶과 가시성에 대해 강력한 발언을 했다. 이 획기적인 작품들은 흑인 예술 운동과 페미니스트 예술의 핵심 인물로서 그녀의 역할을 확고히 했다. 

Faith Ringgold Black Light #12: Party Time, 1969  oil on canvas, 60 x 86 in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Faith Ringgold Black Light #12: Party Time, 1969  oil on canvas, 60 x 86 in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검은색은 아름답다”라는 운동에 참여하며 흰 페인트를 제거한 팔레트를 사용하여 검은 피부의 뉘앙스를 탐구하고 블랙 파워에 대한 추상화를 결합하기 위한 쿠바(Kuba :콩고의 야자 섬유로 만든 자수천의 형태. 기하학적 패턴과 질감이 특징) 형식을 차용하여 색과 형태로 미국 흑인의 매일의 삶과 투쟁을 보여주었다.

 Faith Ringgold, Black Light Series #9 “The American Spectrum 1969 /Courtesy of Frieze
 Faith Ringgold, Black Light Series #9 “The American Spectrum 1969 /Courtesy of Frieze

또한 그녀의 예술 창작에서 Story Quilt(퀼트 공예; 역사적으로 여성 작품으로 무시되었던)는 시각적으로 도전적인 사회 규범, 공예와 순수 예술을 혼합하고 아프리카와 흑인 여성 경험을 해방과 자결책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1970년대와 80년대부터 링골드는 14~15세기 티베트 불화에서 영감을 얻은 탕카 형식(직물에 그린 두루마리)에 몰두하며 상징적인 내러티브 텍스트와 패브릭 및 전통 퀼트를 통합하여 공예와 순수 예술을 혼합하여 흑인의 정체성, 꿈,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유럽” 유화 전통에서 벗어난 서사로 전환한다.  

Faith Ringgold, The Wake and Resurrection of the Bicentennial Nigro, 1975-1989 /Courtesy of Glenston museum MD.
Faith Ringgold, The Wake and Resurrection of the Bicentennial Nigro, 1975-1989 /Courtesy of Glenston museum MD.

패션 디자이너인 어머니 윌리 포시와 협력하여 부드러운 조각과 인형을 만들고 이 매체를 통해 역사적으로 '여성스러운' 공예를 변형시켜 흑인 여성 주인공, 가족사, 그리고 이전에 침묵했던 정치적 사건들과 서사를 되찾고 알리는 데 중점을 둔다. 

그녀의 사회적 참여 작품들은 가면극, 드라마, 춤, 음악, 의상, 조각, 각색 등을 망라하며 확대되고 그녀의 도전은 흑인과 여성의 입지가 역사 안에서 형평성을 갖도록 일관되게 옹호하는 동화책과 회고록으로도 이어졌다.  

끊임없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도전하며 자신의 예술과 삶을 연결하고 흑인 여성 정체성을 기념하기 위한 단체와 재단을 설립하여 소외된 목소리를 앞장서 표현하고 흑인 여성 작가들이 미래에 올바른 자리를 찾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Faith Ringglold, “Tar Beach”1988, Acrylic on canvas with fabric border, 74.6X6.5 in /courtesy of Guggenheim Museum NY. 
 Faith Ringglold, “Tar Beach”1988, Acrylic on canvas with fabric border, 74.6X6.5 in /courtesy of Guggenheim Museum NY. 

링골드의 지속적인 유산은 두려움 없는 진실을 말하고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으로, 정치적인 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만드는 능력에 보이며, 다른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도록 격려하고 미술사에서 누구든 보일 수 있도록 사회 저변에 심오한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있다. 지난해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한 시민으로서 공동체의 몫을 다하고 또 개인의 삶 또한 장렬하게 완성했다. 그 정신이 살아서 이어져 양육되길 기원한다.

여성경제신문 윤세라 Glenstone Museum 근무 lovelysarah06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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