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차별과 외면 속에서도 동편제 수궁가의 전승을 이어온 정의진의 시간이 포착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궁'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인 정의진 명창과 그의 제자들을 따라가며, 전승 위기에 놓인 동편제 수궁가의 현재를 기록한다.
'수궁'은 정의진 명창 개인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는 그와 함께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여성 예인들의 삶을 조명, 동편제 수궁가가 어떤 시간과 선택 속에서 유지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고령의 여성 소리꾼들을 찾아가 나누는 대화와 기억을 더듬는 과정은 이 소리가 무대 위의 한 순간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이어져 왔음을 드러낸다. 소리는 그렇게 공연 밖의 시간과 함께 축적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번에 공개된 틸은 무대 위 장면에서 시작해 그 무대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따라간다. 관객 앞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과 더불어, 공연을 준비하며 이동하고 기다리고 연습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한복을 갖춰 입고 무대에 선 정의진 명창의 모습 뒤로 지방 공연장을 오가며 반복해온 준비의 시간이 겹쳐진다.
특히 좁은 숙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소리를 맞추는 장면은 전승이 이루어지는 오늘의 현실을 보여준다. 마스크를 쓴 채 호흡을 맞추고, 손과 몸의 움직임으로 소리를 짚어가는 과정은 동편제 수궁가가 이론이 아닌 '몸의 기억'과 반복된 연습을 통해 이어져 왔음을 말해준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소리를 놓지 않으려는 예인들의 시간이 이 장면에 담겨 있다.
공연을 앞둔 정의진 명창과 제자들은 짧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상태를 살핀다. 연습이 이어질수록 피로는 쌓이지만, 이들은 다시 무대에 올라 소리를 이어간다. 치료와 공연 일정을 병행하는 정의진 명창의 모습과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소리를 포기하지 않는 제자들의 얼굴은 전통 예술이 놓인 오늘의 현실을 담담히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묵묵히 소리를 이어온 이들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시선을 함께 전한다.
'수궁'은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들' 섹션 상영을 통해 다큐멘터리 계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2026년 1월 1일부터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gm@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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