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운전자보험을 둘러싼 이른바 ‘절판 효과’가 연말 보험시장을 달구자 금융당국이 시장 점검과 대응에 나섰다. 내년 보장 구조 개편을 앞두고 가입이 빠르게 늘면서, 소비자 불안을 자극하는 영업 관행이 확산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운전자보험 판매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연말 들어 가입이 급증한 배경과 판매 과정의 적정성을 살피고 있다. 특히 보장 축소 가능성을 강조해 가입 시점을 앞당기도록 유도하는 이른바 ‘절판 마케팅’이 있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당국의 이런 움직임은 보험 영업 현장에서 감지되는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이달 들어 운전자보험은 상담·계약 문의가 눈에 띄게 늘며 다른 장기보험 상품을 밀어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험업계는 이를 두고 보장 구조 변경이라는 제도 변화가 시장 심리를 직접 자극하며 연말 장기보험 매출의 상당 부분이 운전자보험으로 쏠리는 이례적인 국면으로 해석한다. 아직 공식 통계가 집계되기 전이지만, 현장에서는 “체감 온도가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절판 효과가 불러온 ‘선가입’ 러시…운전자보험 뭐길래
운전자보험은 원래 자동차보험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보완적 상품으로 출발했다. 자동차보험이 사고 상대방의 피해를 보상하는 민사 책임 중심의 보험이라면, 운전자보험은 사고 이후 운전자 본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형사합의금, 벌금, 변호사 선임비용 등 형사·행정 책임을 대비하는 성격을 갖는다. 초기에는 선택적 성격이 강했지만, 교통사고 처벌 강화와 법·제도 변화가 이어지며 점차 필수 보험에 가까운 위치를 차지해 왔다.
특히 2020년 민식이법 시행 이후 어린이보호구역 사고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자 운전자보험 수요는 급격히 확대됐다. 보험사들은 경쟁적으로 보장 한도를 높이고, 변호사 선임비 보장 범위를 경찰 조사 단계까지 넓히는 방식으로 상품 경쟁에 나섰다.
그 결과 운전자보험은 ‘사고가 나면 바로 체감되는 보험’으로 자리 잡았고, 보유 계약 수 역시 수백만 건 단위로 늘며 장기보험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됐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이번 절판 효과의 직접적인 계기는 내년 1월부터 금융당국 권고에 따라 담보 구조 개편이 손해보험사 약관에 순차 반영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변호사 선임비 담보에 가입자 자기부담률 30~50%가 도입되고, 보장 한도 역시 재판 심급별로 분리·축소되는 방향이 제시됐다.
지금까지는 자기부담금 없이 약관상 한도 내에서 변호사 비용을 전액 보장해 주는 구조가 일반적이었지만, 앞으로는 상당 부분을 운전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설계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변화는 소비자에게 ‘보장 축소’로 받아들여지기 쉬워, 기존 조건이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진 연말까지 가입하려는 수요가 한꺼번에 몰린 것으로 보인다.
차 없는 사람까지 관심…운전자보험 효용성의 경계선
이번 과열 국면에서 주목되는 변화는 수요의 범위다. 보험 영업 현장에서는 최근 “차량을 보유하지 않았는데도 운전자보험 가입이 가능한지 묻는 문의가 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운전자보험이 차량 소유 여부보다 ‘운전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 보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렌터카·카셰어링 이용자나 향후 운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소비자들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러한 흐름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운전자보험의 실질적 효용은 단순한 사고 발생 확률이 아니라, 형사 책임이 수반되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과 그로 인한 비용 부담의 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운전 빈도와 사고 유형에 따라 체감 효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운전자보험의 핵심 담보로 꼽히는 변호사 선임비나 형사합의금 보장이 모든 교통사고에서 실제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거론된다. 교통사고의 상당수는 약식명령이나 행정처분 단계에서 마무리되거나, 민사적 보상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아 형사 재판이나 소송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운전자보험은 필요할 때 분명 도움이 되는 상품이지만, 실제 사고의 상당수는 소송까지 가지 않거나 형사 절차가 본격화되기 전에 정리되는 경우도 많다”며 “절판 여부만 보고 서두르기보다 운전 빈도와 사고 유형, 보장 조건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경제학과 교수 또한 “보험사별로 기본 계약 구성과 특약 조합이 크게 다른 만큼, 절판 분위기에 휩쓸릴 경우 불필요한 담보가 포함되거나 정작 필요한 보장이 빠진 상품을 선택할 위험도 있다”며 “특히 갱신형 상품의 경우 향후 보험료 인상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최근 운전자보험 판매와 관련, 소비자 불안을 자극하는 방식의 영업이나 충분한 설명 없이 이뤄진 계약이 없었는지에 대한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이달 판매가 급증한 일부 보험사 경영진을 불러 경위서를 요구하고, ‘절판 마케팅’ 문자를 자제하라는 지도에 나선 데 이어, 내년 운전자보험 판매량이 비정상적으로 급증한 회사를 대상으로 검사에 착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