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2025 도쿄 아트북페어에 다녀오다①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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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 2025 도쿄 아트북페어에 다녀오다① 생명력

문화매거진 2025-12-26 10:06:21 신고

[문화매거진=MIA 작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도쿄아트북페어에 다녀왔다. 2009년 처음 시작된 이래 15여 년간 행사를 이어 온 도쿄아트북페어는 올해 특별히 2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북페어 기간은 보통 3, 4일이 일반적인데, 주차별 참가팀이 다르기 때문에 예년보다 큰 규모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모든 참가팀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일부러 일정을 길게 잡았다. 관람하며 달성된 기대도 있었고 새로 느낀 바도 있어 기록해 본다.

▲ 2025년 도쿄아트북페어 현장 / 사진: MIA 제공
▲ 2025년 도쿄아트북페어 현장 / 사진: MIA 제공


북페어는 꽤 기이한 장이다. 세계 각국에서 무수한 창작자들이 모여 소통하고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엄청난 에너지가 교환되고 섞이는 장소로 기능한다. 현장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수와 에너지에 압도당하는 한편, 작은 혼란이 일기도 했다. 

엄밀히 말해 세계에 이렇게 많은 창작자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탄은 창작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꼭 내가 아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 이곳에서 어떤 분별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점점 옅어졌다. 눈에 보이는 현장에 근거하여 비관이 섞인 걱정과 두려움을 가장한 이성적인(혹은 다분히 감정적인) 판단이 고개를 들곤 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희소한 종류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처음 도달했기 때문이다. 행사를 중심으로 반복해서 겪은 일련의 경험들이 이 가정, 혹은 주장의 근거이므로 아래에 적어 보겠다.

[ 어느 여름, A는 아트북 서점에서 어떤 책을 한 권 본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책이었으나 페이지마다 비슷한 듯 다른 구도와 극적인 색상으로 반복되는 그림이 좋았다. 특별한 인쇄 방식도 눈에 띄었다. 자신의 작업에도 참고할 만한 소스가 있는 것 같아 구매했다. 시간이 흘러 다음 해 여름, 금방 겨울이 되었고 여느 해와 다름없이 A는 한국에서 해마다 열리는 북페어에 방문한다. 거기서 자신이 구매했던 책을 만든 작가를 만나게 된다. 

A는 문득 프랑스 작가가 한국에서 열리는 북페어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희한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그 작가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하지만 작가가 북페어에 참여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는다. 작가는 직접 한국의 북페어 주최 홈페이지에 신청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보냈고, 참가팀으로 선정되어 편도 18시간을 날아 한국에 와서 부스를 차렸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떠올리며 A는 작가를 직접 만난 것이 반가워서라기보다, 단지 그런 가능성을 한 번도 가정하지 못한 자신에 놀란다. ]

위에 쓴 경험처럼 서점에서 구매한 책 작가를 북페어에서 ‘틀림없이’ 마주치곤 하는 경험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책을 사는 순간부터 ‘이 작가는 언젠가 어디에서 만나게 될까’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작가를 만난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하나의 작품을 둘러싼 경험이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되고 반복된다는 점이다. 북페어는 바로 그런 경험이 이어지고 확장되는 거점이 된다.

아트북페어가 그저 사람이 많은 행사라는 인상은 사실의 절반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중에서 나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유효한 만남을 갖는 경우를 세면 무수하진 않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만남은 내가 가지 않으면, 작가가 참여하지 않으면 결코 성사될 수 없다는 점에서 희소하다. 사후적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창작은 맥락 없는 공간에서 무작위로 발생해 흩어지는 에너지가 아니며 분명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생명력을 지닌 무엇, 정확히 연결되려는 충동에 가까운 무엇이라 느껴진다.

지금까지 기술한 내용이 아트북을 작정하고 소장하는 컬렉터나 바이어에게는 그저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애초에 그들과 같은 목적 없이 여기까지 ‘끌려온’ 나에게 이런 깨달음 혹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는, 내가 속한 세계를 좀 더 정확한 시각으로 바라볼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핑계 어린 두려움에서 벗어나 가야 할 방향으로 가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닐까. 결국 주제는 다시 ‘작업하며 사는 삶’으로 돌아온다. 이번 여행은 그것이 자주,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종류로 느껴지더라도 한편 필연적인 행위일 것이란 믿음에 다다르게 해주는 연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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