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접어들면 물의 풍경부터 달라진다. 수온이 내려가면 민물고기 몸속에서도 변화가 먼저 시작된다. 살은 단단해지고 조직은 한층 조밀해진다. 바다 생선이 식탁의 중심에 서는 계절이지만, 조용히 제철을 맞는 민물고기도 있다. 바로 '향어'다. 이름부터 낯선 편이다. 다만 한 번 맛본 사람의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특정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겨울 식탁을 책임졌고, 지금도 양식장에서는 계절에 맞춰 묵묵히 몸집을 키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향어는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민물고기다.
먹을거리 부족하던 시절에 들어온 민물고기
향어는 평균 길이 50cm 안팎까지 자라는 대형 민물고기다. 잉어과에 속한다. 독일 잉어, 이스라엘잉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국내에 유입된 시점은 1973년이다. 먹을거리가 넉넉하지 않던 시기, 영양 보충을 목적으로 이스라엘에서 들여왔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관리가 비교적 수월했다. 내수면 양식장에서 주력 어종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사람이 먹기 좋게 개량된 품종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살이 두껍고 잔가시가 적다. 민물고기 향은 남아 있지만 강하지 않다. 담백한 맛이 기본을 이룬다. 이런 특성 덕분에 회로 먹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보양식으로 찾는 경우도 이어졌다. 잉어처럼 복을 부르는 음식으로 여겨진 인식도 지역 곳곳에 남아 있다.
흙탕물 속에서 자라는 이유
향어는 원래 바닥을 훑으며 먹이를 찾는 성향이 강한 민물고기다. 수조 바닥에 가라앉은 사료뿐 아니라 미세한 유기물, 바닥에 붙은 먹잇감을 입으로 빨아들이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때 바닥의 흙이 계속 떠오르며 물빛이 탁해진다. 양식장에서 일부러 물을 흐리게 만드는 게 아니라, 향어의 생활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다.
바닥이 고운 흙으로 유지되는 이유도 있다. 콘크리트 바닥보다 흙바닥이 향어의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받아준다. 바닥을 쪼는 과정에서 충격이 분산되고, 향어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흙이 없는 환경에서는 바닥을 파려는 행동이 멈추지 않아 수조 벽이나 제방을 더 심하게 건드리는 경우도 생긴다. 지하수를 사용하는 것도 흙탕물과 무관하지 않다. 지하수는 수온 변화가 크지 않아 향어 성장에 유리하다.
다만 유속이 빠르지 않기 때문에 바닥에서 일어난 흙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물을 자주 갈아도 흙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양식장에서는 이 상태를 비정상으로 보지 않는다. 향어에게는 오히려 익숙한 환경에 가깝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향어는 바닥을 차고 오르내리는 움직임이 잦다. 그 과정에서 근육이 단단해진다.
회로 먹는 민물고기, 취향은 분명하다
향어는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지만, 살이 가장 충실해지는 시기는 겨울이다. 회로 먹는 경우가 많으며, 육질이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해 씹는 감촉이 또렷하다. 바닷고기 회보다 단맛이 진하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민물고기 향을 정리하기 위해 생강을 곁들이기도 하고, 초장만으로 충분하다는 말도 나온다.
회뿐 아니라 매운탕으로도 많이 먹는다. 잔가시가 적어 먹기 수월하고, 국물은 묵직한 편이다. 산초 같은 향신료를 더해 향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고단백 식품으로 알려져 보양식으로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흙탕물 속에서 자라지만, 손질과 관리 과정을 거치면 맛은 깔끔해진다. 양식장에서 수조까지, 수조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절대 가볍지 않다. 진흙 속에서 건져 올린 민물고기가 겨울 식탁 한가운데에 오르기까지 수십 번 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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