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5년 12월 14일은 유엔이 지정한 첫 '반식민주의의 날'이었다. 필자는 앞선 기고문에서 외세의 지배와 종속을 경험한 나라들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한 일간지 칼럼은 이들 대부분이 권위주의 국가인 점을 지적하며 "좋은 말도 발화자의 권위와 평판에 따라 설득력에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메시지와 메신저의 딜레마"라는 정치적 현실을 환기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우리의 직관에 부합한다. 말의 무게는 내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화자의 실천과 모범은 그 자체로 설득력(力)이 된다. 이번처럼 도덕적 규범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자국민을 억압하는 정권의 훈계를 민주주의 국가들이 귀 기울여 듣고 싶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지를 메신저에 투영해 읽는 태도 자체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양자를 결합해 판단하려는 경향은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적 한계에 가깝다. 선악은 단면적이지 않다. 현대 사회가 정립한 도덕적 가치의 발전 과정에는 윤리적으로 크게 비판받는 주체들이 기여한 바도 있다. 혁명 직후의 소련은 일당 독재 체제 하에서도 여성의 권리 해방을 제도화했고, 인종차별적인 나치 독일은 동물 보호를 국가 정책으로 도입했다.
무엇보다도, 메신저에 집착하면 필연적으로 사각지대가 생긴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주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번처럼 말이다. 민주주의는 선한 정치 체제로 여겨지지만, 식민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 국가들이었다. 이들은 유엔의 '탈식민화' 목표에 저항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표결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반대표를 던졌고, 다른 서구 국가들은 대부분 기권하거나 불참했다.
민주주의는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 체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지, 민주 국가가 그 자체로 도덕적 우월성을 담보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서구 국가들은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동시에 권위주의 정권의 형성과 존속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해 왔다.
팔레스타인은 서구의 방해로 민주주의 도입이 좌절되고 비극으로 귀결된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1919년 이래 팔레스타인인들은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한 민주 국가 수립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을 강제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독립으로 이어질 민주적 체제를 허용하지 않았다. 영국에 의탁해 힘을 키우던 시온주의자들(=유대 민족주의자) 역시 반대했는데,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이 다수 인구가 되어 정치적 결정을 좌우할 수 있게 된 이후에만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1948년에 건국된 이스라엘이 민주주의를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인종청소로 도입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놀랍게 들리겠지만 '반식민주의의 날'은 이 같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현존하는' 모든 형태와 양상의 식민주의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1967년 이래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다. 이에 저항해 온 하마스가 2023년 10월 7일에 1200명의 유대인을 학살하자, 이스라엘은 반격이란 명분 하에 7만 명 이상을 학살했고, 가자지구를 영구 점령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국제사회가 '반식민주의의 날'을 제정한 배경에는 이러한 격화일로가 드러낸 기존 국제 질서의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권위주의 국가들이 도덕적 의제를 이끈 것을 놓고 위선적이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권위주의가 반식민주의라는 메시지를 만들어낸 것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반식민주의가 담아낸 것은 서구의 패권적 질서에 대한 정치적 문제 제기와 성찰의 요구였다.
세계 첫 '반식민주의의 날'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누구보다 인권과 국제법을 소리 높여 외치던 서구 국가들은 어째서 침묵했는가. 그리고 일본의 식민 역사를 줄곧 비판해 온 우리나라는 왜 침묵했는가. 질문이 누구에게서 나왔든, 우선은 자성적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독자들 중에는 서구 진영과의 결속이 도덕적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가치관에 따른 차이니 여기서 옳고그름을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우리 정부가 무엇을 포기한 것인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가 서구와의 연대를 택하며 희생시킨 것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비판 의식이다. 기념비적인 첫 '반식민주의의 날'에 일본을 성토하는 목소리조차 없었던 사실은 정치적·도덕적 족쇄로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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