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들은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AI 모델로 자기소개서를 '무한 복제'하고, 기업은 AI 도구로 이를 '자동 필터링'한다. 알고리즘과 알고리즘이 맞붙는 채용 시장에서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사람'은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술의 발달로 채용 절차는 간편해졌지만, 기업과 구직자 사이의 정보 흐름이 오히려 왜곡되는 ‘채용의 역설’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화려한 자소서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은 "진짜 인재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17만 건 지원서 중 채용률 0.24%…“대부분이 AI로 쓴 엉터리”
최근 프린스턴 대학교 연구진이 구인구직 플랫폼의 자기소개서 수만 건을 분석한 결과, 챗GPT 출시 이후 지원서들의 분량은 길어지고 문장 완성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용주들은 AI가 쓴 것과 같은 매끄러운 문장에 예전보다 덜 신뢰하게 됐다고 한다.
연구진은 "AI를 활용한 구직자들이 오히려 채용될 가능성이 낮아졌다"라며 노동자와 기업 간의 정보 흐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AI가 채용의 효율성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미국 구직자의 상당수가 취업 지원에 챗봇을 이용하고 있지만, 이는 지원서의 '상향 평준화'를 넘어 '변별력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AI(Figure AI)의 브렛 애드콕 CEO가 최근 지난 3년간 무려 17만 6,000건의 입사 지원서를 받았으나, 채용은 단 425명(0.24%)에 그쳤다고 밝혔다.
애드콕 CEO는 쏟아지는 지원서 대다수가 "엉터리(Garbage)"였다고 표현했다. AI로 손쉽게 만든 완성도 낮은 지원서들이 채용 시장에 범람하며, 기업 입장에선 제대로 된 인재를 찾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져야 하는 극심한 비효율에 빠진 셈이다.
“AI 쓴 인재 거른다” vs “기술 활용 능력이다”
이 현상을 바라보는 빅테크 CEO들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자동화 플랫폼 기업 애피언(Appian)의 매트 콜킨스 CEO는 "구글과 세일즈포스 같은 기업들이 AI로 지원자를 선별하며 인재의 잠재력을 놓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AI는 기업의 본질적인 과제 해결에 집중돼야 한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반면 어도비와 같은 기업은 AI 활용 자체를 하나의 '역량'으로 보고 있다. 스테이시 마르티넷 어도비 CCO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AI를 채용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원자를 높이 평가한다”라고 밝혔다.
미국 인사관리협회(SHRM)에 따르면 인사 담당자의 절반 이상이 구인난을 겪고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AI 도구를 도입하고 있다. 결국 ‘AI가 쓰고 AI가 검토하는’ 시대의 승자는 다시 ‘인간미’를 증명하는 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구체적인 성과, 투박하더라도 진솔한 문제 해결 과정, 대면 면접에서 드러나는 인성이 향후 채용 시장의 핵심 지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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