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억 500만 달러(한화 약 3,027억 원). 수수료를 포함하면 2억 3,640만달러(3,490억 원). 올해 경매에서 나온 최고의 숫자다. 19분 동안 이어진 숨 막히는 질주 끝 5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트로피를 거머쥔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구스타프 클림트의 ‘엘리자베스 레더러 초상’(1914-1916)은 작가 최고 기록은 물론 근대미술 작품 중 가장 비싼 경매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미술작품 중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다(4억 5,030만 달러, 2017년 크리스티 뉴욕)) 최근 몇 년간 크리스티에 밀려 만년 2등을 벗어나지 못했던 소더비도 이번 경매 덕분에 체면을 차렸다. 2025년 11월 18일, 단 하루 경매액은 7억 600만 달러(1조 424억 원)에 달했고, 소더비 281년 역사상 일일 경매 최고치였다. 이 중 이 작품이 포함되어 있던 레너드 A. 로더 컬렉션은 5억 2,750만달러(7,789억 원)를 차지했다.
트로피 랏(trophy lot)의 성공은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미술시장이 오랜 침체를 벗어나 추세전환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유씨 필카넨 아트 어드바이저(전 크리스티 대표)는 이번 11월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에 대해 “월요일(크리스티 경매일) 우리는 전환점을 맞았다”라며 “동종 최고 수준인 로더 컬렉션이 강력한 입찰 경쟁을 보였다. 시장이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낙관적이라고? 우리 모두 그래야 한다”라고 아트넷에 코멘트했다.[1] 26년을 코앞에 두고, 신호탄은 터졌다.
추세전환 신호탄은 터졌는데
낙관의 샴페인을 터트리기 전, 올해 시장을 살펴보자. 25년 상반기 미술시장은 ‘침체’라는 단어로 뭉뚱그리기엔 다양한 시그널이 산재했다. 물론 규모 면에서는 난항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상반기 글로벌 미술품 경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2% 감소했다. 다만 올해 들어 감소 폭이 줄어들어 턴어라운드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커진 상황이다.
미술시장에서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을 보면, 올해 상반기 미국 경매사 매출은 10% 줄었다. 초반엔 미술 시장만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트럼프 정부 발 관세전쟁에 주식을 비롯한 다른 자산시장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러다 막상 관세 협약의 강도가 약하자 대부분 이전 수준을 넘게 회복했다. 그러나 미술 시장은 이와는 다른 분위기다. BoA(Bank of America)는 ‘2025 가을 미술시장 동향’ 보고서[2]에서 “미술시장이 전반적 경제지표에 비해 다소 뒤처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조금 더 미묘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라며 “저가 미술품의 활기, 고가 미술품의 둔화가 눈에 띈다”라고 지적한다.
컬렉터 세대교체, 변화의 시작
그렇다. 시장 전체가 얼어붙은 것은 아니다. 작은 변화들이 포착된다. 가장 큰 변화는 BoA의 지적대로 고가 미술품의 거래가 둔해지고, 저가는 활발하게 거래된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1천만 달러(약 147억 원)이상 거래 작품 수는 전년 동기대비 44%나 줄었다. 팬데믹 이후 최고를 기록했던 2022년에 비하면 72%나 줄어든 수치다. 기준을 더 올려보면 처참하다. 2022년 상반기 5천만달러(738억 원) 이상 거래된 매물은 13건이었지만 2025년 상반기에는 한 건도 없었다. 시장을 이끄는 고가 작품의 거래가 부진하니 전체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반면 중저가 미술품 경매에서는 2025년 상반기 낙찰률과 예상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거래량도 많아졌다. 올해 상반기 작품 판매량은 2016년 이후로 두 번째로 많았다. 비싼 작품이 가격 방어는 물론 상향 여지도 더 크다고 여겨졌던 것에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엔 컬렉터의 세대교체가 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미술시장의 주요 고객이던) 베이비 붐 세대가 컬렉터 생애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고 있음에 따라,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약 106조 규모의 상속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BoA의 ‘Study of Wealthy American’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과 Z세대는 40%가 미술품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고, 43%는 미술품 수집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는 17%만이 미술품을 소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컬렉팅을 시작하는 젊은 세대 덕에 저가 작품 시장이 활발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딜로이트와 아트테틱이 발간한 ‘아트 앤 파이낸스 리포트 2025’에도 세대 변화에 대한 뚜렷한 근거가 있다. 보고서에서는 밀레니얼과 Z세대의 초현실주의 시장 참여도를 밝혔는데, 밀레니얼 세대의 소더비 입찰자 비중은 2018년 12.6%에서 2025년 상반기 23.8%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Z세대도 0.5%에서 6.2%로 폭증했다. 이들은 동시대 젊은 작가의 작품 수집에도 열성을 보이지만, 20세기 작가(초현실주의)에도 관심이 크다.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 작품에선 밀레니얼 세대의 입찰 비중이 47.4%에 달해 압도적이었다. 또한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밀레니얼과 Z세대가 럭셔리 부문 입찰자 중 41%에 달하며, 20~21세기 미술품과 럭셔리 제품에 대한 강한 선호를 보이고 있다.

모험은 위험하다, 개런티 작품의 증가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변화는 경매에서 ‘개런티 작품(보증 제도)’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3자 보증(third-party guarantees)’, ‘취소 불가능 입찰(irrevocable bids∙IB)’로도 불리는 이 제도는 경매 시작 전 미리 판매자를 물색해 최저가 구매를 확정해 놓는 제도다.
이 개런티 작품은 점점 늘어나 올해 상반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의 올 상반기 전후 및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의 출품작 거의 절반(45.5%)가 개런티를 받았다. 전년보다 13% 늘어난 수치다. 물량이 아닌 금액기준으로 보면 그 비율이 73%까지 치솟는다.
올해 최고가를 기록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엘리자베스 레더러 초상’도 제3자 보증을 받았다. 사실 로더 컬렉션 대부분이 보증받았다. 아트넷은 “소더비는 로더의 컬렉션에 약 4억 달러 보증을 했다.”[3]고 전했다. 시장이 활발할 때는 이 같은 보증 제도를 활용하기보다 경매에서 예상치 못한 비딩을 기대하며 수익 극대화를 꾀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불안정한 시장에선 모험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셈이다.
혼종과 혼돈의 2026년 
2026년의 상황을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변화의 시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밀레니얼과 Z세대 컬렉터 층이 부상하면서 그에 맞게 시장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비슷비슷한 작가, 연간 캘린더 사업처럼 돌아가는 아트페어가 (젊은)컬렉터들에겐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는 갤러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테그네이션’(stagnation)이라고 불릴 정도로 변화가 전무한 미술시장의 상황에 몇몇 갤러리들이 모험에 나섰다. LA에 기반한 갤러리인 ‘블룸’은 갤러리를 폐쇄하고, 다른 형태의 미술품 판매를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페이스갤러리는 지난 12월 1일 2차 시장 전문 갤러리인 페이스 디 도나 슈레이더 갤러리(PDS)의 개관을 발표했다. 디 도나 갤러리의 에마뉴엘 디 도나와 소더비의 글로벌 프라이빗 세일즈 부문 수석 부사장 겸 회장인 데이비드 슈레이더와 함께 새로운 모델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공간 운영, 아트페어 참가비 증가 등 비용이 늘어나 갤러리 운영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이 같은 도전이 기존 갤러리 모델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상태다.
새로운 컬렉터 층의 요구는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아트 앤 파이낸스 리포트 2025’에 따르면 이들은 고전 거장이나 블루칩 작가를 선호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여성작가, 초현실주의자, 동시대 작가에 집중한다. 기후변화, 성평등, 정체성, 인종 정의 같은 사회적 이슈가 컬렉팅 할 때 고려하는 주요 팩터이며 예술을 단순히 부의 상징이 아닌 가치관의 반영으로 생각한다. 디지털 문화는 이들 세대의 핵심으로 온라인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변화다. 젊은 컬렉터(61%)와 미술계 종사자(56%)는 가격 투명성이 미술시장 발전의 저해 요소라고 꼽았다. 높은 거래 비용과 엘리트주의도 뒤를 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이 없이는 미술시장의 장기적 발전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혼종과 혼돈의 2026년이 예고됐다. 턴어라운드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시장은 어느 때 보다 예측 불가능하다. 다만 변화의 방향은 명확하다. 더 투명하고, 더 포용적이고, 더 전문적이어야 한다. 상승장에 올라탈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실행하지 않으면 결과는 없다. 지금이 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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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news.artnet.com/art-world/records-fall-during-706-million-night-at-sothebys-turbocharged-by-blue-chip-lauder-trove-2714943
[2] https://www.privatebank.bankofamerica.com/articles/art-market-fall-update.html#footnote-1
[3]https://news.artnet.com/art-world/leonard-lauders-klimt-painting-fetches-sothebys-271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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