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조원을 보는 눈⑦] 26년 만의 빗장 풀기: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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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조원을 보는 눈⑦] 26년 만의 빗장 풀기: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25 22:14: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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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2026년도 총지출 728조 원이라는 거대한 예산의 바다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사회 안전망이다. 지난 12월 2일 국회를 통과한 보건복지부 예산은 137조 4,949억 원으로 확정되어 전년 대비 9.6퍼센트라는 기록적인 증가율을 보였다. 이 중에서도 의료급여 예산은 9조 8,400억 원(국비 기준)이 편성되어 전년 대비 1조 1,518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증액을 기록했다.

 이번 의료급여 예산의 핵심은 단순히 숫자의 증가가 아니다.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26년 동안 빈곤층의 발목을 잡았던 불합리한 규제인 간주 부양비 제도가 2026년 1월부터 전격 폐지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 복지 행정이 가졌던 가장 완고한 문턱 하나가 마침내 허물어졌음을 의미한다.

가짜 소득의 종언: 연락 끊긴 자녀의 굴레를 벗다

 의료급여 부양비 제도는 실제로는 가족에게 부양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존재하고 일정 소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소득의 일부를 수급자의 소득에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가짜 소득이 계산되면서 실제로는 극심한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이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는 비극이 반복되어 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는 이러한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절규가 담긴 사례들이 공유되었다. 사업 실패 후 자녀와 연락이 끊긴 채 의료급여를 신청했다가 아들의 소득이 기준을 넘는다는 이유로 탈락한 60대 남성이나, 딸이 결혼하면서 사위의 소득이 부양의무자 기준에 포함되어 혜택이 끊긴 노인의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최소 5,000명 이상의 저소득층이 새롭게 의료급여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은 중앙의료급여심의위원회에서 부양비 폐지는 불합리한 수급 자격 문턱을 개선하여 비수급 빈곤층을 완화하기 위한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이는 가족 중심의 부양 체계에서 국가 책임 중심의 복지 체계로 나아가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국회의 난타전: 공공의대와 아동수당의 정치학

 하지만 9.8조 원에 달하는 의료급여와 보건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예산 심사 과정에서 정부안보다 약 3조 6,000억 원을 증액하며 민생 예산 사수를 강조했으나, 그 이면에서는 여야 간의 날 선 고성과 충돌이 오갔다.

 가장 큰 충돌 지점은 공공의대 설립 관련 예산이었다. 정부안에 포함되었던 공공의료 전문인력 양성 및 지원 예산 39억 원 중 19억 원이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삭감되자 여당은 즉각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에서 국민의힘이 의료대란 이후 지역 의사 부족에 공감하며 서민 코스프레는 다 해놓고 뒤통수를 쳤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박희승 의원은 "동료 의원에게 상의도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며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고 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아동수당 지급 방식을 둘러싼 논쟁도 뜨거웠다. 여야 의원들은 아동수당 연령을 만 8세 미만으로 확대하고 금액을 인상하는 방향에는 동의했으나,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차등 지급 문제를 두고 정면충돌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역적 차이 때문에 덜 지원을 받는 상황이 있다면 국가가 플러스알파를 담당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위기 지역에 먼저 지원하는 인구 감소 대책의 일환임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기술과 복지의 불균형: 인공지능이 삼킨 인건비

 보건의료 예산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또 다른 딜레마가 발견된다. 정부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강조하는 인공지능(AI) 관련 예산은 보건 산업 연구개발(R&D) 부문에서 3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정작 지역 의료 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파견 의료인력 인건비 예산은 75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이 예산 규모는 인공지능 시스템 구축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만약 인공지능 시스템에 투입된 예산 중 142억 원 정도만 인건비로 전환했어도 파견 인력 규모를 200명 이상 확대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이는 728조 원 예산이 인공지능이라는 화려한 구호에 매몰되어 정작 현장의 사람과 생명을 지탱하는 실질적인 운영비에는 인색하다는 비판을 정당화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은 상임위 발언을 통해 인공지능 단어는 좋지만 인프라가 시급한 상황에서 모든 분야에 인공지능을 붙여 예산을 받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미화 의원은 구체적인 내용 없이 인공지능이라는 명분만으로 예산을 편성하기보다 필수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1.6퍼센트의 채무와 생존의 무게

2026년도 예산안이 확정되면서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51.6퍼센트에 달하며 사상 처음으로 50퍼센트를 넘어섰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9.8조 원의 의료급여 예산을 증액하고 26년 된 부양비 규제를 폐지한 것은, 국가가 재정적 압박보다 국민의 기본적 생존권을 우선순위에 두었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러나 공공의대 설립 좌초와 인공지능 예산의 쏠림 현상은 여전히 정치적 이해관계와 산업 논리가 복지의 질을 결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728조 원의 메가 예산이 향하는 곳이 화려한 기술의 전시장일지, 아니면 무너진 민생의 수선장일지는 이제 막 시작된 9.8조 원의 집행 과정이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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