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성탄절 휴일인 25일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관계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회의 소집은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으로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이 주재했다.
특정 기업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장관급이 참석하는 회의가 대통령실 주도로 열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외교 라인까지 회의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이는 쿠팡이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에도 진정어린 사과와 대책마련은 없이 미국 정치권에 전방위 로비를 통해 '한국 정부와 국회가 미국 기업을 과도하게 제재한다'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것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미국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트럼프 대통령의 전 측근인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지난 23일(미 현지시간)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와 국회의 규제 움직임을 두고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날 긴급 회의는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의 X(옛 트위터)에 올린 글 직후 소집됐다.
쿠팡 사태가 한미 양국의 통상 마찰로 번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에 대한 대책까지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쿠팡은 이날 자체 조사 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고객 정보를 유출한 전직 직원을 특정해 조사한 결과 3300만개의 고객 정보에 접근했으나 이중 약 3천개 계정의 고객 정보만 저장했고 외부에 유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일방적 발표를 했다.
현재
대통령실 정책실장 주재…과기부장관·외교부장관·국가안보실 등 참석
대통령실은 이날 김용범 정책실장 주재로 쿠팡 사태 관련 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회의는 이재명 대통령의 강경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쿠팡 개인정부 유출' 사태를 겨냥 "이번에 '무슨 팡'인가 하는 곳에서 규정을 어기지 않나"며 "그 사람들은 처벌이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 분야 위법행위에는) 그에 합당한 경제적 부담을 지워야 어떤 게 더 경제적으로 손실이고 이익인가를 판단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에는 형벌 조항이 너무 많다. (이 같은 형법 위주의 처벌은) 기업의 사장이나 이익을 보는 사람이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실무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이 많다. 그마저도 수사와 재판에 5∼6년씩 걸린다"며 "이런 처벌은 아무런 제재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경제형벌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는데 속도를 내야 할 것 같다. TF를 만들었으면 속도를 내야 한다. 속도가 생명"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또 12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쿠팡을 겨냥해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며 강력한 제재를 지시했다.
회의 참석자만 보더라도 대통령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날 회의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개인정보보호위원장,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관계 부처 장관급 인사들은 물론 경찰청 등 수사기관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외교부 장관, 국가안보실 관계자 등 외교안보 라인 인사들도 함께 참석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쿠팡에 대한 고강도 제재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이 집중 논의될 전망이다.
과징금 부과 기준 강화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될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과징금 산정 기준을 현행 '최근 3개년 평균 매출액'에서 '3년 중 최고 매출액'으로 변경하고 부과율을 3%로 상향하도록 시행령 개정을 주문했다.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개인정보보호 제도 전반의 보완책도 함께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오현주 국가안보실 3차장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보 보호 대책의 미흡한 점을 검토해 연내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쿠팡, 미국 정·관계 전방위 로비
美 전 국가안보보좌관 "한국 정부·국회가 미국 기업 과도하게 규제"
특히 이날 성탄절 긴급 회의에는 외교부 장관과 국가안보실 관계자 등 외교 라인 인사들도 참석했다. 이는 쿠팡 사태가 대미(對美) 외교·무역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사전에 점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최근 쿠팡은 미국 정·관계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에 주력하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과도하게 제재하려 한다'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 상원 로비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나스닥 상장 후 약 5년간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총 1075만 달러(약 156억 원)의 로비 자금을 지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에 100만 달러(약 14억5000만 원)를 기부했다.
이 때문인지 트럼프 1기 미국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23일(현지시간) 'X'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무역 관계 재조정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한국이 미국 기술 기업(테크 기업)을 표적으로 삼아 그의 노력을 훼손하는 일은 매우 유감스러울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한국 국회가 쿠팡을 공격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추가적인 차별적 조치와 미국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 장벽의 발판이 될 것"이라며 "미국 기업들의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고 해당 분야에서 중국의 확대되는 영향력에 맞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조율된 미국의 대응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공화당의 대럴 이사 하원의원도 현지 언론에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쿠팡)을 상대로 공격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쿠팡 외에도 애플·구글·메타 등도 사례로 언급했다. 그는 "한국의 규제가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미국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쿠팡 사태가 자칫 한미 간 외교 현안으로 부상하려는 조짐이 나오자 정부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해 미측의 오해를 불식하겠다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국회 더욱 강경한 '대규모 대응'
'과기부장관' 총괄 '범정부 쿠팡TF', 국회 30일~31일 연석청문회
미국 정계가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한국 정부와 국회에 '외교적,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 정부와 국회, 경찰청은 더욱 강력한 종합 대책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정부도 더욱 강경대응에 나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성탄절인 25일 범 정부차원의 쿠팡 관계부처 대책 회의를 열고, 기존에 현재 과기정통부 2차관이 팀장(류제명)을 맡고 있던 '범부처 쿠팡TF'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이 직접 맡아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이날 과기부에서 주재한 '쿠팡 대책회의'에는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을 비롯해 대통령실, 외교부, 산업통상부, 공정거래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범정부 차원으로 관계 부처 장·차관급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아울러 플랫폼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조사 및 엄중한 대응과 별개로, 국민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플랫폼 기업 등에 대한 정보 유출·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 제도 개선 방안도 충실히 준비하기로 했다.
과기정통부는 경찰 수사와 별도로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 원인 분석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쿠팡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국회는 오는 30∼31일 예정된 국회의 쿠팡 사태 관련 '연석 청문회'를 개최한다.
지난 17일 과방위 청문회에서 CEO인 김범석 대표가 불참하고 대신 외국인 임시 대표를 내세워 '맹탕 청문회'를 만들어 버리자 국회는 6개 상임위가 동시에 연석 청문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무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외교통일위원회도 참여하는 6개 상임위 '연석 청문회'를 오는 30일~31일 개최한다. 올해 마지막이 '쿠팡 연석 청문회'로 달궈질 전망이다.
"정보유출 3천명뿐" 쿠팡 기습 발표…정부 "일방적 내용, 강력항의"
한편, '대미 로비력'으로 정부와 국회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쿠팡은 25일 기습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쿠팡은 이날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자체 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직 직원의 단독 범행으로 확인됐으며 고객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제3자에게 전달된 정황은 없다는 발표를 기습적으로 했다.
쿠팡은 디지털 지문 등 포렌식 증거를 토대로 고객 정보를 유출한 전직 직원을 특정했다.
해당 유출자는 범행을 자백했으며, 고객 정보에 접근한 방식과 저장·삭제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한다.
쿠팡 측 설명에 따르면, 유출자는 탈취한 내부 보안 키를 이용해 약 3300만 고객 계정의 기본 정보에 접근했으나, 실제로 저장한 고객 정보는 약 3000개 계정에 불과했다.
저장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 일부 주문 정보였다. 이 중 공동현관 출입번호는 2609개로 확인됐다.
쿠팡은 "고객정보 중 제3자에게 유출된 정보는 일절 없다"며 "결제정보, 로그인 관련 정보, 개인통관번호에 대한 접근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로 인한 고객 보상 방안을 조만간 별도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경찰이나 민관합동조사단의 공식 발표에 앞서 쿠팡이 관련 내용을 공개한 배경에는 외부 전문기관 조사 결과와 내부 확인 내용이 대체로 일치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출 규모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점이 확인된 만큼 사실관계를 선제적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정부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조사 관련 배포 자료는 민관합동조사단의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민관합동조사단에서 조사 중인 사항을 쿠팡이 일방적으로 대외에 알린 것에 대해 쿠팡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민관합동조사단에서 정보 유출 종류 및 규모, 유출경위 등에 대해 면밀히 조사 중에 있는 사항으로 쿠팡이 주장하는 사항은 민관합동조사단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음을 알려드린다"고 덧붙였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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