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부터 윤석열까지…불안한 권력은 주술에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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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부터 윤석열까지…불안한 권력은 주술에 기댄다

프레시안 2025-12-25 17:35: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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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무속과 권력의 결합은 은밀하지만,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권력자의 불안이 깊어질수록, 주술과 비선의 조언은 제도의 경계를 넘어 권력의 중심을 파고들었다. 국정을 마비시키며 민주주의를 위협해 온 이 위험한 흐름은, 그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채 되풀이되었다." - <주술 왕국> 프롤로그 중

2024년 12월 3일 밤 느닷없이 벌어진(사실상 치밀한 계획 하에 착수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사건은, 그로부터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충격과 혼란을 우리 사회와 행성에 남기고 있다. 정치적·제도적 장치가 그 자신의 물리적 한계 내지는 동일 세력의 저항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가운데, 당시의 파국적 순간이 만들어낸 균열은 최고 권력자의 탄핵 외에 더 많은 출구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속된 위기감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해가 뜨면 제 자리를 찾을 거란 당시의 예상과 달리, 사태의 근본적⋅구조적 문제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인 데다 그로 인한 불안과 분노는 여전히 응축된 채 남아 있으며 그 불씨가 되살아날 조짐 역시 계속해서 보이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훨씬 더 구조적이고 심층적인 변동의 순간으로 읽어낼 필요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이른바 '극우적 전회'라고 불릴 만한 염려스러운 흐름은 점차 제도권과 공적 담론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고, 그 세력의 활개 역시 이전보다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로 재조직되고 있다. 법과 제도의 모호한 경계들은 그 청산 과정을 지지부진하도록 하고 있고, 이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에게 깃든 불안과 피로감이 자신의 자리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출간된 김가현 저자의 <주술 왕국: 연산군부터 윤석열까지, 권력은 왜 신을 빌리는가>는 우리에게 쥐어진 '역사'라는 상식의 무기를 지금 이 현상을 이해하는 단초로 삼는, 매우 시의적인 일성(一聲) 내지는 그 정리이자 분석에 해당한다. 그가 주장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른바 '무속과 권력의 결탁'은 역사적인 차원에서 권력의 위기 때마다 끊임없이 출몰되고 반복되는 비상식적인 현실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의 공적 시스템과 그 책임 소재를 더욱 강화하고 이를 통해 권력자들의 사적 욕망 그 자체를 견제할 뿐만 아니라 그 욕망에 근원하고 있는 공적 의사결정에 대한 개입을 차단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해당 저서에서 돋보이는 점은 역시, 저자가 제시한 권력자의 위기가 신을 불러들이는 '정치 구조의 허점'과 그로 인해 빠지게 되는 '권력 붕괴 모델'이다. 즉 정통성과 통치 역량의 부족이 권력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그 권력의 정당성을 외부에서 찾는 '권력 기반의 취약성과 불안의 발현', 비판과 견제를 도전으로 규정하고 이성적 조언 시스템을 불신함으로써 무력화하며, 소통을 차단시키고 스스로 고립됨으로써 현실 인식을 상실하게 되어버리는 '공적 시스템의 붕괴와 고립', 주술과 비전 그리고 음모론이 그 고립으로 인한 공백을 침투하고 권력자의 초조함이 완화되거나 현실이 단순화되거나 책임 전가 자체가 도구화되는 '비합리적 대안의 부상과 도구화', 주술 의존이 더욱 심화되고 현실 왜곡 현상이 두드러지며 판단력 차단으로 인해 공적 체계가 잠식되어 불안이 심화됨으로써 종국에는 몰락에 이르는 '자기 파괴적 악순환과 몰락'. 이 네 단계가 조선 시대라는 비교적 가까운 역사의 소구를 통해 도출해낸, 위기를 해소하지 못하고 종국에는 몰락에 이르는 권력의 자기 붕괴 모델로 제시된다.

물론 저자에 따르면, 이 붕괴 모델은 세 가지의 파국 유형으로도 나뉜다. 흥미롭게도 이 세 유형은 모두 '불안한 권력이 주술에 기댄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심리적 파국'(Psychological Catastrophe) 유형으로 분류되는 연산군의 사례는 "통제 불능의 분노와 광기를 주술적 방식으로 해소하며 공적 영역을 사적 감정의 배출구로 삼은 경우"로, "이는 권력자가 스스로 주술적 존재가 되어버리는 '주술의 사유화'"에 해당한다. '공간적 파국'(Spatial Catastrophe) 유형으로 분류되는 광해군의 사례는 "이성적 합의가 배제된 채 풍수도참에 의존한 국가 정책이 어떻게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며,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권력이 주술을 이용하는 '주술의 도구화' 과정"에 해당한다. '관계적 파국'(Relational Catastrophe) 유형으로 분류되는 명성황후의 사례는 굿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무당이 권력 핵심에 등장해 국정을 좌우하는 결과"를 낳은, 이른바 '비선 실세'가 "권력과 이익을 교환하는 전형적인 '주술과의 유착'"에 해당한다.

저자 소개에서도 밝혀지고 있듯, <주술 왕국>은 "역사학도의 냉철한 시선과 운명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합된" 독특한 계보의 대중 역사 비평서라 할 수 있다. 정치적 현실이 어떻다는 논평이 더욱 흔해지고 있고, 그 소비 역시 날로 증가하는 우리 현실 속에서, 비록 조선조에 국한되긴 하지만 한국 사회의 중장기적 구조와 그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손에 들어간 주술적 감각의 멸망적 행보'를 뚜렷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현실 비평과 역사 비평, 그리고 사회심리학적 독해를 비교적 능숙하게 교차시킴으로써 보기 드문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될 만하다. 특정 시기나 정권의 문제로 국한될 수 있는 우리 현실의 문제를 전근대 권력 정치와 사회적 상상력에 누적된 장기적 패턴으로 추상화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관점 자체를 전환하려는 비평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될 만하다.

모두가 예감하고 있듯, 183일 간 우리 시민/다중이 혹한과 눈보라의 모진 겨울을 견디며 이룬 '빛의 혁명'을 하나의 역사적 분기점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이 저서는 그 이후의 사회적 전망과 상상을 그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역사적 참조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시민/다중은 '빛의 혁명' 과정을 계엄과 내란에 대한 반대와 저항에 만족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를 스스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나아가 감시와 통제의 역할을 국가와 권력이 아닌 우리 시민/다중의 것으로 역산출하고 그로부터 자율과 긍정이 각기의 삶의 자리에서 뿌리내리는 역사적 계기로 전환하기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정치적 사건의 표면과 더불어 그 이면의 무의식적 구조를 아울러 포착하는 이 저서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평자는 특히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열쇳말로 제시한 '자기 꼬리를 삼킨 권력'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이 표현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다중적인 위기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사실 권력은 숙주라기보다는 기생체, 즉 스스로를 소모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권력(을 유일한 것으로 지향하는 잠재된 힘)이 그 자신의 목적과 수단을 뒤바꾸며 자기 보존만을 위해 질주하는 구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심과 주변, 주체와 객체가 전도되는 '주객전도'의 국면이 우리 사회 전반을 왜곡시키고 병들게 하는 근본 원인일 수 있다는 먼지 쌓인 문제의식을 지금의 우리에게 다시금 되살리게 한다.

<주술 왕국>은 그 자체가 사건을 바라보는 감각과 그 역사를 비평적으로 재배열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혁명과 반(反) 혁명, 권력의 집중과 자멸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일관된 장치로 묶어내고 있고, 우리 현실 사회를 스스로 성찰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역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업으로서 유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특정 정치 세력의 흥망성쇠 내지는 무속의 비합리성(예컨대 일제가 우리 문화를 '미신'으로 취급함으로써 식민적 지식으로 배치했던 것처럼) 정도로 오독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책이 근본적으로 토대하고 있는 이 시대의 균열과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전도 및 집단적 혼란의 구조와 층위를 먼저 생각해볼 것을 권해본다.

▲<주술왕국>(김가현 지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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