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 위기마다 경영권 방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9월 영풍·MBK의 공개매수로 촉발됐다. 영풍·MBK는 작년 9월 13일 고려아연 지분을 최대 14.6%까지 공개매수해 고려아연 지분 47.7%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고려아연도 예상하지 못했던 추석 직전 기습공격으로 전해진다. 당시만 하더라도 손쉽게 영풍·MBK가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을 거란 예상들이 많았다.
최 회장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이때부터다. 그동안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최 회장은 곧바로 해외 우군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기존 한화, LG 등 국내 기업을 우군으로 확보했던 최 회장은 지체 없이 일본 출장길에 오르며 글로벌 사모펀드들과 접촉했다. 또 기자회견을 열고 적극적으로 시장과 소통하며 자사주 공개매수 맞불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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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과정에서 부침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일반공모 유상증자 결정이 논란이 됐다. 발행주식의 20%를 주당 67만원에 일반 공모 형태로 신규 발행했다고 밝혔으나 시장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가 돈을 빌려 자사주 공개매수를 한 뒤 곧바로 유상증자를 통해 주주에게 빚을 갚게 한다는 지적이었다. 최 회장은 결국 약 2주 만에 유상증자 결정을 전격 철회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며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결정을 내렸다.
올해 1월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는 상법 특성을 활용해 영풍·MBK의 이사회 진입을 막는 묘수를 발휘했다. 고려아연의 손자회사인 썬메탈코퍼레이션(SMC)을 통해 의도적으로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이라는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면서 영풍이 보유한 지분 25.4%의 의결권을 제한했다. 이를 바탕으로 집중투표제와 이사 수 19명 상한 안건을 통과시키며 경영권 방어 기틀을 마련했다. 올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최 회장은 다시 해외 계열사를 이용해 새로운 상호주 관계를 형성하며 영풍·MBK의 이사회 진입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영풍·MBK 측에서는 강성두 영풍 사장, 김광일 MBK 부회장, 권강석 우리금융캐피탈 고문 등 단 3명만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데 그쳤다.
◇최윤범, 이사회 주도권 이어갈 듯
고려아연의 이번 미국 테네시 제련소 투자는 최윤범 회장의 ‘신의 한 수’가 될 전망이다. 영풍·MBK와 약 14%(의결권 기준) 벌어진 지분 격차를 단숨에 좁히고 경우에 따라 역전까지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고려아연은 미국 전쟁부 등과 합작해 크루서블 JV를 만들기로 했는데, 이 JV는 고려아연이 진행하는 유상증자에 약 2조8000억원을 투입해 지분 약 10.84%를 취득하게 된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유증 후 신주 발행으로 영풍·MBK가 42.1%, 최 회장 측이 약 30%로 각각 지분율이 희석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상태에서 크루서블 JV가 최 회장에 힘을 실어주면 최 회장 측 지분율은 약 40%까지 치솟게 된다. 여기에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4.8%)까지 끌어들인다면 지분율 역전도 가능하다.
최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이사회 주도권을 이어갈 전망이다. 고려아연 이사 중 6명은 오는 3월16일 임기가 만료되는데, 이 중 5명은 최 회장 측으로 파악된다. 업계에서는 집중투표제와 현재 지분율 등을 고려해 내년 주총에서 이사회는 최 회장 측 9명(직무정지 4명 제외), 영풍 측 6명으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영풍·MBK는 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 투자 계약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 그리고 고려아연이 중장기적으로 부담하게 될 재무적·경영적 위험 요소들이 충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고려아연은 “미래 성장을 견인할 크루서블 프로젝트를 차질없이 진행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핵심광물 공급망의 중추 기업으로서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대한민국의 경제 안보에도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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