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당분간 유예하기로 했다. 미·중 간 무역 전쟁 ‘휴전’ 기조를 이어가며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23일(현지 시각)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해 온 정책과 관행을 대상으로 한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를 관보에 게재했다. USTR은 조사 결과 중국산 반도체에 대해 관세를 포함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추가로 부과할 관세율은 0%로 설정했다.
대신 USTR은 18개월 뒤인 2027년 6월 23일부터 관세율을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며, 구체적인 인상 폭은 관세 적용 최소 30일 전에 공개하기로 했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차별적인 정책·관행이 미국의 무역과 상업 활동에 피해를 준다고 판단될 경우, 행정부가 관세 등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이번 조치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말기인 지난해 12월, USTR이 중국산 반도체를 대상으로 301조 조사를 개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USTR은 조사 결과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수십 년간 “점점 더 공격적이고 광범위한 비(非)시장적 정책과 관행”을 동원해 왔으며 이에 따라 미국 기업과 노동자, 미국 경제가 심각한 불이익을 받아왔다고 평가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 외국 기업에 대한 기술 강제 이전, 지식재산권 침해, 불투명한 규제, 임금 억제, 시장 원리를 무시한 국가 주도산업 정책 등을 문제 사례로 지적했다. 이 같은 행위가 미국의 상업 활동에 부담을 주거나 이를 제한하고 있어 행정부 차원의 대응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그럼에도 USTR이 당장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은 배경에는 현재 미·중 양국이 무역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휴전 국면’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30일 부산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미국의 관세 인하와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유예 등을 골자로 한 무역 합의에 도달하며 갈등을 잠정 봉합했다. 이후 양측은 상호 방문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모습이다.
앞서 미국은 중국의 해상·물류·조선 산업에 대해서도 무역법 301조 조사를 해 중국산 선박 입항 수수료 부과 등의 조치를 내놓았지만, 정상 간 합의에 따라 이 역시 1년간 유예한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결정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화하고 정상 간 합의를 확고히 하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도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상황 속에서 미국이 긴장을 낮추려는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추가 관세가 유예됐을 뿐,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담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의 불공정한 기술 정책을 문제 삼아 중국산 반도체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인상해 올해부터는 50%의 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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