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쟁 2년 만에…베들레헴 "메리 크리스마스"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2년 만에 베들레헴에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구유 광장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다시 세워졌고, 거리 곳곳에서는 아이들이 행진하는 악대를 보며 환호했다.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이 도시에 축제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 한 남성이 성탄절을 앞두고 조명이 달린 풍선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24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가자지구 전쟁으로 중단됐던 크리스마스 축제가 재개되면서 이날 수천 명의 주민과 방문객이 베들레헴 구유 광장에 운집했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인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전통 행렬을 이끌며 “빛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선언했다. 그는 “우리 모두 함께 빛이 되기로 결정했다”며 “베들레헴의 빛은 세상의 빛”이라고 강조했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직전 일요일인 지난 21일 가자지구의 소규모 천주교 공동체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그는 황폐해진 가자에서도 재건을 향한 열망을 목격했다며 가자 신자들의 안부를 베들레헴에 전했다.

지난 2년간 베들레헴은 크리스마스 축제를 취소하고 대신 잔해와 철조망에 둘러싸인 아기 예수 탄생 장면을 전시하며 가자지구 참상에 연대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불필요한 축제 활동을 삼가고 크리스마스의 영적 의미에 집중하며 성지의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촉구해왔다.

관광 가이드로 일하던 조르제트 자카만 씨는 전쟁 기간 팔레스타인 수공예품 판매 웹사이트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오늘은 기쁨과 희망의 날이자 정상 생활 회복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의 생후 2년 반과 10개월 된 두 자녀는 올해 처음으로 ‘진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축제는 재개됐지만 가자 전쟁의 상처는 깊다. 마헤르 니콜라 카나와티 베들레헴 시장에 따르면 주민 80%가 관광업에 의존하는 이 도시의 실업률은 전쟁 전 14%에서 65%로 치솟았다.

일자리를 찾아 약 4000명이 베들레헴을 떠났다. 모든 종파를 포함한 기독교인 인구 이탈은 더욱 심각해 현재 서안지구 300만 주민 중 기독교인은 2%에 불과하다.

지난 10월 가자 휴전 이후에도 서안지구 긴장은 여전히 고조돼 있다. 이스라엘군은 무장세력 단속을 명분으로 급습을 이어가고 있다.

유엔(UN) 인도주의 사무소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착민의 팔레스타인인 공격은 2006년 집계 시작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베들레헴에서 자라 라말라에 사는 아이린 키르미즈 씨는 15세 딸과 함께 스카우트 퍼레이드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집을 나섰지만, 이스라엘 검문소에서 3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검문소가 없던 과거엔 40분이면 도착했던 거리다.

그는 “사람들이 회복을 시도하며 평화와 사랑을 축하하려는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전했다.

프랑스에서 온 방문객 모나 리워 씨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일을 이해하고 싶어 왔다”며 “크리스마스는 어두운 상황 속 희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스라엘 북부 나사렛과 시리아 다마스쿠스 외곽 등 인근 지역에서도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렸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교회 내 ‘구유 동굴(Grotto)’을 신도들이 방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