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접어들면 집 안 풍경도 함께 바뀐다. 바깥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외출은 줄고, 자연스럽게 식탁에 오르는 횟수가 늘어나는 건 집밥이다. 하루 한두 번 밥을 짓기보다, 전기밥솥에 넉넉히 지어 보온 상태로 두고 여러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따뜻한 온도가 유지된다는 이유만으로, 밥솥 안의 밥을 비교적 안전하게 여기는 습관도 이렇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보온 상태의 밥이 항상 안정적인 건 아니다. 갓 지은 직후에는 수분과 온도가 비교적 고르게 유지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 균형은 서서히 흐트러진다. 보온 기능은 이 과정을 늦출 뿐, 완전히 막아주지는 않는다. 겉보기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여도, 안쪽 환경은 조금씩 달라진다.
밥솥 보온, 어디까지 괜찮을까
전기밥솥의 보온 기능은 내부 온도를 약 60도 안팎으로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 구간에서는 일반적인 세균 활동이 둔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보온 상태라면 시간이 꽤 지나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조건이 잘 맞는 경우라면 10~12시간 정도까지는 눈에 띄는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례도 많다.
다만 이 시간에는 전제가 따른다. 보온 중 뚜껑을 자주 열지 않고, 내부 수분이 과도하게 빠져나가지 않으며, 밥솥 성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이어야 한다. 보온 상태에서 뚜껑을 반복해 여닫으면 내부 온도는 순간적으로 내려가고, 김이 빠져나가면서 수분 분포도 달라진다. 이런 과정이 누적되면 밥 전체가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특히 바닥이나 가장자리 쪽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식는다.
밥의 양도 변수다. 소량의 밥을 보온하면 열이 고르게 퍼지지 않기 쉽고, 많은 양을 오랫동안 두면 수분 증발 속도가 빨라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밥알 겉면은 마르고 갈라지며, 안쪽과 바깥쪽의 차이는 더 벌어진다.
12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는 조건
밥 보관과 관련해 종종 언급되는 사례 중 하나가 볶음밥 증후군이다. 조리된 밥을 적절하지 않은 환경에 두었을 때 특정 세균이 늘어나 복통이나 구토 같은 증상을 유발하는 경우다. 상온에 둔 밥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온 중인 밥도 조건이 무너지면 같은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보온 시간이 12시간을 넘어서면 밥솥 내부 일부 구간이 기준 온도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커진다. 밥솥 구조상 내부 온도는 완전히 균일하지 않다. 뚜껑 쪽, 가장자리, 바닥면마다 차이가 생기고, 이 상태가 오래 이어질수록 세균 증식 위험도 함께 커진다.
보온을 끈 뒤 그대로 두는 경우라면 기준은 더 엄격해진다. 조리된 음식은 열원에서 내려놓은 뒤 2시간 이내에 냉장 보관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으로 제시된다. 밥도 다르지 않다. 이미 오랜 시간 보온한 상태라면 더 두지 않는 편이 낫다.
보온 대신 냉동이 나은 이유
밥솥 보온 습관은 전력 사용 측면에서도 부담이 크다. 보온 기능은 하루 종일 전기를 사용한다. 같은 양의 밥을 냉동 보관한 뒤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방식과 비교하면 차이는 분명하다.
냉동 보관은 추가 전력 소모가 크지 않으며, 해동 시간도 짧다. 반면 보온은 24시간 내내 전력을 쓰게 된다. 시간이 누적될수록 차이는 더 벌어진다.
밥 상태 면에서도 냉동이 낫다. 밥을 지은 직후 소분해 냉동하면 수분과 식감이 비교적 잘 유지된다. 보온 중인 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분 구조가 바뀌면서 푸석해지기 쉽다.
낮은 온도에서는 세균 활동이 거의 멈춘다. 먹을 만큼만 꺼내 쓰는 방식은 남김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매일 먹는 음식일수록, 보관 방식 하나가 쌓여 만들어내는 차이는 크다. 보온 기능은 잠깐 사용할 때 의미가 있다. 하루를 넘기는 순간부터는 다른 선택지가 더 나은 이유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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