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작은 차이를 지키는 힘, ‘타고가요’가 만든 이동의 기준
사진=김남근 기자
- 원칙과 신뢰로 시장의 구조를 다시 읽는 리더십
- 사용자 중심으로 구조를 재설계한 ‘타고가요’의 철학
빠르게 변화하는 이동·여행 시장에서 부모와 아이가 겪는 실제 불편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제품 출시의 속도와 기능이 경쟁처럼 앞서가지만, 정작 사용자 경험의 기준은 충분히 다듬어지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구조적 불편을 외면하지 않고, 작은 어려움까지 제대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시장에서 점점 희귀한 가치가 되었다. 그래서 최근의 산업에서 중요한 리더의 덕목은 화려한 전략을 펼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어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는 사람이다. 신뢰와 원칙, 전문성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실제 사용자의 불편을 해결하려는 한 리더의 선택이 지금 변화의 방향을 다시 세우고 있다.
생활의 불편에서 발견한 구조의 문제
박계홍 대표의 출발점은 생활의 무게로부터 발화되었다. 출산에 이어 코로나 팬데믹이 겹치며 경력 단절을 겪은 뒤, 다시 일자리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늦은 출산으로 시작된 육아는 매일의 체력과 마음을 동시에 시험했다. 특히 평발인 아들은 조금만 걸어도 발을 아파하며 멈춰 섰고, 외출할 때마다 계속 안아주고 업어야 하는 상황은 그녀의 몸에 큰 부담을 남겼다. 결국 허리 디스크까지 생기면서 가족의 일상은 더욱 위축되었다.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단순한 외출조차 계획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이런 시기에 그녀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여러 캐리어 이동 수단 제품을 구매해 사용해 보았지만 기대와 달리 불편은 더 커졌다. 가격대는 높았지만, 조향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무게 배분이 맞지 않아 조금만 움직여도 흔들림이 생겼다. 분리되지 않거나 분리가 불편한 구조는 이동 중 상황에 따라 대응하기 어려웠고, 결국 이 제품들은 사용하지 못한 채 집 구석에 자리만 차지하게 됐다. 어느 날 방치된 제품을 바라보던 순간, 그녀는 문득 그동안 누적된 불편이 왜 해결되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안 된다면 내가 직접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의 결심을 설명했다.
그녀가 느낀 것은 삶에서 매일 부딪히는 불편이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부모의 손과 몸이 겪는 부담, 아이가 느끼는 불안정함, 그리고 이동 동선에서 생기는 작은 위험까지 외면할 수 없었다. 반복되는 경험은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의문을 남겼고, 결국 사용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성향은 이때 분명해졌고, 그 성향은 후에 그녀가 제품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 ㈜브이지에스씨
경험에서 다듬어진 리더의 방향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뒤 어렵게 다시 선택했던 직장은 그녀에게 일의 감각을 되찾게 해준 곳이었다. 해외 소싱을 담당하며 제품 개발의 전 과정을 스스로 챙겼고, 시장성 판단부터 생산·검수·론칭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몸으로 익혔다. 프로젝트가 연속으로 성공하며 자신감도 붙었지만, 그 과정이 늘 긍정적인 경험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회의 자리에서의 강압적 분위기,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지시,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리더의 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지치게 했다. 개인의 의견을 말해도 돌아오는 것은 반박이 아니라 질책이었고, 그 여파는 집과 일상으로까지 번져갔다.
세 번의 사직서를 내고 결국 회사를 떠났지만, 이 경험은 그녀의 내면에 중요한 결론을 남겼다. ‘어떤 조직을 만들 것인가’보다, ‘어떤 조직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라는 기준이 확실해진 것이다. 억압적인 분위기를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 사람을 소모품처럼 대하는 태도, 직원의 삶을 통제하려는 방식은 그녀가 오너가 되었을 때 반드시 지워야 할 관습이 되었다. 그녀는 “직원들이 저를 마음에서 밀어내지 않을 때 더 좋은 판단이 나온다고 믿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창업 당시 관계를 기반으로 한 리더십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후 그녀가 회사를 이끌며 세운 운영 기준은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했다. 출퇴근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는 구조, 식사와 휴식을 존중하는 일상적 리듬, 의견을 내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회의 문화, 그리고 대표라는 직책보다 먼저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다가가려는 태도가 그 핵심이 되었다. 제품을 개발할 때도 모든 부서의 의견을 듣는 방식을 유지했고, 사소해 보일 수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중요한 결정의 근거로 삼았다. 조직에서 겪은 상처와 배움이 그녀의 리더십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었고, 지금의 회사를 이루는 문화적 기반 역시 이 시기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불편을 해결하는 설계 기준
박계홍 대표가 제품 개발이라는 낯선 영역으로 발을 옮기게 된 계기는 거창한 영감이 아니라 앞에서도 언급했듯, 일상에서 겪은 반복적인 불편을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 때문이었다. 기존 제품을 사용할수록 문제는 더 명확해졌고, 왜 개선되지 않는지가 오히려 의문으로 남았다. 반복되는 불편은 단순한 기능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한계에 가까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어떤 제품을 사용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시장에 나온 기존 제품을 모두 구매해 직접 분해하며 구조를 살폈다. 어느 부위가 흔들림을 만들고, 어떤 연결 방식이 불안정함을 유발하는지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아이를 태웠을 때의 하중 분배, 회전 각도에서 생기는 저항, 끊김 없이 부드러운 조향이 어려운 이유 등 실사용 상황을 떠올리며 분석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조금만 개선’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결국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내 아이를 태워도 안심할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며, 개발의 방향이 판매를 위한 상품 제작이 아니라 안전을 전제로 한 설계였음을 강조했다.
이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제조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단순히 제품과 부품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기준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여러 제조사를 검토하며 품질 관리 방식과 공정 수준을 확인했지만, 대부분의 공장이 그녀가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디자인만 바꿔 생산하는 방식이나 원가 절감을 우선하는 접근은 그녀가 해결하려는 문제와 맞지 않았다. 부모의 손과 아이의 몸이 겪는 불편을 줄이려면 부자재부터 구조, 검수까지 모든 단계가 재정비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소비자로서의 불만을 말하는 단계를 넘어, 문제의 원인을 직접 찾아 해결하는 개발자의 위치로 이동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왜 기존 제품들이 해결하지 못했는지, 구조적 한계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하나씩 확인하며 방향을 더 명확히 했다. 사용자가 겪는 현실을 기준으로 삼아 제품을 바라보는 방식은 이 시기에 더욱 단단해졌고, 훗날 브랜드 철학의 핵심이 되는 ‘실사용 중심의 구조 개선’이 이때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 대표가 ‘불편을 경험한 사람’에서 ‘불편을 해결하는 사람’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 ㈜브이지에스씨
완성도를 결정하는 선택, 신중에 정성을 더하다
제조사를 직접 찾던 과정에서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중국 캔톤페어에서 우연히 보게 된 한 제품이었다. 조향과 구조의 완성도가 다른 제품들과 분명하게 달랐고, 이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대표는 제조사를 찾아가 실제 생산 현장을 확인했고, 그곳이 글로벌 하이엔드 캐리어 브랜드의 OEM 공장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규모와 공정, 검수 체계, 내부 조직의 전문성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수많은 공장 중 이곳만이 그녀가 요구하는 기준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최소 생산 수량이었다. 공장은 처음에 10만 개 이상을 요구했고, 그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필요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천 개? 이천 개? 함께할 수 없다”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차례 공장을 방문하며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방향과 기준을 설명했고, 왜 이 구조에서 타협할 수 없는지, 왜 안전과 품질을 우선해야 하는지 직접 설득했다. 단순한 발주 요청이 아니라, 제품이 갖춰야 할 본질을 이해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녀는 “공장 선택은 목숨이 달린 결정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당시의 절박함을 회상했다.
2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진 설득 끝에 마침내 공장은 예외적으로 한 라인을 열어주겠다고 결정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첫 생산 수량 5천 개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고, 이후의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부자재 선정, 조향 구조 점검, 생산 공정 확인, 출고 전 검수까지 작은 부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아이의 안전과 부모의 사용성을 고려한 설계가 실제 제품에 정확히 반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원가가 더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안전과 품질에서 단 한 부분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결정은 결국 제품의 완성도를 좌우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훗날 브랜드의 방향성과 신뢰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고, 마침내 프리미엄 타는 캐리어인 ‘타고가요’가 세상에 등장하게 됐다.
ⓒ ㈜브이지에스씨
2%의 개선이 만든 변화
공장에서의 첫 생산이 시작된 후 박계홍 대표가 가장 집중한 것은 ‘사용자의 몸이 느끼는 변화’였다. 그녀가 개발 과정 내내 붙잡았던 목표는 대단한 혁신이 아니라, 실제 부모와 아이가 겪는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일이었다. 제품을 완성하며 그녀가 내건 슬로건이 “2%의 불편함을 개선하자”였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작은 차이가 결국 일상의 리듬을 바꾸고, 여행의 부담을 줄이며, 부모의 몸에 남는 피로와 아이의 안전을 지키는 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를 위해 타고가요 제품 출시 후에도 개선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조향각도, 회전 저항, 실사용자가 느끼는 중심 이동, 핸들 유격 정도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체감되는 수많은 요소를 실제 고객 피드백을 통해 다시 검토했다. 여행지에서의 지면 환경, 공항 동선, 부모가 한 손으로 아이를 태운 채 밀어야 하는 상황까지 다양한 환경을 상정(想定)하며 제품은 반복적으로 다듬어졌다. 그녀는 “좋아 보이는 기능보다 몸이 느끼는 불편이 줄어드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라며 “제품이 가져야 할 본질을 잃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철학은 시장에서 아주 빠르게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기존 탑승 캐리어에서 느낀 불안정함이나 조향의 어려움이 사라졌다는 후기들이 쌓였고, ‘여행이 이렇게 편한 줄 몰랐다’, ‘아이와의 이동이 두렵지 않다’라는 피드백이 연달아 이어졌다. 제품에 대한 만족이 높아지면서 소개를 통해 고객층이 확대됐고,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실사용 기반의 신뢰가 형성되었다. 특히 구조적 안정성과 설계 기반 완성도는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아 대만·일본·홍콩 등 여러 지역으로 수출이 이어졌고, 현지 부모들 역시 가장 먼저 ‘안정성’을 높이 평가했다.
박 대표가 초기에 결정한 ‘원가 절감보다 품질 기준을 우선하는 선택’은 시장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국제표준 검수 기준을 고수하고, 단 하나의 부자재도 타협하지 않는 방식은 단기적으로 비용 부담이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쌓는 길이 되었다. 타고가요 제품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안전하게 여행을 누릴 수 있는 도구여야 한다’라는 그녀의 생각은 결과적으로 사용자 경험 그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한 사람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준이 소비자들의 일상 속에서 신뢰로 이어졌고, 이는 그녀가 만든 브랜드 타고가요가 단순한 제품군을 넘어 하나의 ‘기준’을 갖춘 브랜드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기자가 들어본 박계홍 대표의 이야기는 새로운 기술이나 거대한 자본에서 시작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일상의 불편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았던 태도, 사람을 우선하는 기준, 무너뜨리기 쉬운 원칙을 단단히 지켜낸 시간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고 느껴졌다. 경력 단절과 육아의 현실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은 조직에서의 경험을 거치며 리더십의 기준으로 확장됐고, 결국 제품 개발과 제조 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품질과 안전을 타협하지 않겠다는 선택, 작은 차이를 정확히 개선하겠다는 고집은 시간이 흐른 뒤 시장에서 신뢰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녀의 다음 선택이 더 궁금해진다. 변화를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필요한 지점을 정확히 바라보는 사람. 박계홍 대표는 오늘도 그렇게 자신의 원칙이 만든 신뢰를 믿고 당당한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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