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칩 업체 엔비디아가 AI 칩 스타트업 그록(Groq)의 자산을 200억 달러(약 29조 원)에 사들이는 초대형 인수에 나선다. 엔비디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딜로 AI 반도체 패권 경쟁이 한층 더 격화될 전망이다.
24일(현지시간) 미국 CNBC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그록의 주요 투자사인 디스럽티브(Disruptive)의 알렉스 데이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엔비디아가 그록의 자산을 현금 20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액은 엔비디아가 2019년 이스라엘 칩 설계업체 멜라녹스를 70억 달러에 인수했을 때의 약 3배 수준이다.
그록은 사전 학습된 AI 모델이 실제 서비스를 수행할 때 쓰이는 ‘추론용’ 칩에 특화된 스타트업으로 구글 TPU(텐서 처리 장치) 개발에 참여했던 조너선 로스가 2016년 설립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록은 지난 9월 블랙록, 뉴버거 버먼, 삼성전자, 시스코 등으로부터 7억5000만 달러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69억 달러를 인정받았는데, 불과 석 달 만에 세 배 가까운 몸값에 매각되는 셈이다.
다만 이번 거래는 그록이라는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는 형태는 아니다. 엔비디아는 그록의 핵심 자산과 인력, 지적재산권(IP)을 넘겨받되, 아직 초기 단계인 ‘그록클라우드’ 사업은 인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록은 재무책임자(CFO)인 사이먼 에드워즈가 CEO를 맡는 독립 회사로 남아 운영을 이어가게 된다.
주요 경영진은 엔비디아로 이동한다. 창업자 조너선 로스와 써니 마드라 사장을 비롯한 핵심 임원들이 엔비디아에 합류해 저지연 AI 프로세서 기술을 엔비디아의 ‘AI 팩토리’ 아키텍처에 통합하는 작업을 맡을 예정이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는 내부 이메일에서 “그록의 초저지연 프로세서를 엔비디아 AI 팩토리 설계에 결합할 계획”이라며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와 IP를 확보하는 구조”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록 측은 이번 딜의 성격을 “비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이라고 규정했다. 회사는 매각 협상 전까지 별도 인수 계획을 추진하지 않았으며, 엔비디아의 제안이 들어온 뒤 단기간에 협상이 타결됐다고 설명했다. 그록은 올해 매출 5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의 공격적인 투자 행보도 눈에 띈다. 엔비디아의 현금 및 단기 투자 자산은 올해 10월 말 기준 606억 달러로, 2023년 초 133억 달러에서 4배 이상 증가했다. 엔비디아는 이를 바탕으로 AI 생태계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지난 9월에는 AI 하드웨어 스타트업 엔파브리카에 9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인재와 기술을 확보했다. 같은 달에는 오픈AI에 최대 1000억 달러 투자 가능성을 언급했고, 인텔과의 협업에도 5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을 밝히는 등 대형 베팅을 이어가고 있다.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엔비디아가 그록의 저지연 추론 기술과 인력을 흡수하면서 데이터센터·AI 팩토리 시장에서의 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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