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생리 기간이 되면 여성들의 지갑은 얇아진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집어든 생리대 한 팩 가격에 깜짝 놀란 경험,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게 1만 원이 넘는다고?’ 순간의 당혹감. 해외에서 사면 훨씬 싸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허탈함은 배가 된다.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인 생리대. 그런데 이 필수품의 가격이 한국에선 이렇게 비싼 걸까. 이런 의문에 드디어 정부가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럴 듯한 답을 찾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3일부터 생리대 시장 빅3인 유한킴벌리, LG유니참, 깨끗한나라의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조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대통령이 생리대 가격을 언급한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이 문제가 여성들의 실생활과 직결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생리대 자료사진 / 뉴스1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법무부·성평등가족부·대검찰청 업무보고 자리에서 "우리나라 생리대가 그렇게 비싸다. 조사 한번 해 봐 주시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그는 국내 생리대 가격이 높아 해외 직구에 의존하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거론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필수품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싸게 유통되는 상황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발언이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생리대 직구는 이미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일본 여행 가면 꼭 생리대 사온다"는 이야기부터 "미국 아마존에서 대량 구매한다"는 팁까지 공유된다.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직구를 하는 이유는 딱 하나. 가격 차이가 체감될 만큼 커서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 경향과 유통 과정의 부가세 등을 이유로 들었다. 품질 경쟁과 유통 단계가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해명이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상승을 충분히 설명하기엔 부족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생리대는 매달 반복 구매가 필요한 까닭에 가격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공정위에 이미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히며, 국내 기업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과도한 이익을 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특정 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라면 가격 인하 요인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성평등가족부에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라고 지시하며, 단순한 가격 논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생리대 가격이 비싼 것이 담합이나 가격 남용에 의한 것인지를 살펴볼 계획이다.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부당하게 가격·거래조건·거래량 등을 제한하는 카르텔이나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유지·변경하는 가격남용은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한 행위다. 담합이나 가격남용이 확인되면 공정위는 시정조치나 과징금 등을 부과할 수 있다. 사안이 중대한 경우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유기농 소재나 한방 관련 재료를 사용한다고 표기한 고가 생리대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 제품은 1만 5000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다. 공정위는 이런 제품이 실제로 표기된 자재를 사용했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만약 생리대 소재 등을 사실과 다르게 표기했다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
시민단체인 여성환경연대가 펴낸 '일회용 생리대 가격 및 광고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를 보면 실상이 명확히 드러난다. 2023년에 국내·외 일회용 생리대의 가격을 사이즈별로 조사한 결과, 대형 사이즈를 제외한 나머지 사이즈에서 국내 생리대 가격이 더 비쌌다. 전체 사이즈를 통합한 생리대 1개당 평균 가격은 국내 제품이 국외 제품보다 195.56원, 즉 39.55% 더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거의 40% 가까이 비싼 셈이다.
국내에서 기본형 생리대 한 팩(10개 안팎)은 보통 1만 원 안팎에 판매된다. 저가형 제품은 1만 원 이하지만, 유기농 소재나 흡수력이 높은 프리미엄 제품은 1만 2000원에서 1만 5000원대까지 올라간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3만 원대 중후반에 대용량 세트를 판매하기도 한다. 여성 한 명이 한 달에 사용하는 생리대 개수를 평균 20개로 잡으면, 한 달에 최소 2만 원, 1년이면 24만 원이 생리대에 들어가는 셈이다.
생리대 자료사진 / 뉴스1
생리대가 왜 이렇게 비싸냐는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6년 '깔창 생리대' 사건 이후 생리대 가격 논란은 여러 차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저소득층 여학생들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깔창을 대신 사용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공분이 폭발했다. 정부는 긴급 지원책을 내놨지만 근본적인 가격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발언 중 가장 주목받은 대목은 관세 없는 수입 허용 가능성이었다. 생산 비용 대비 판매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면, 관세 없이 수입을 허용해 실질적인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가격을 낮추기 위한 강력한 시장 압박 카드로 해석된다.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고, 국내 업체에도 가격 조정의 신호를 주겠다는 의미다. 관세 없는 수입이 현실화되면 해외 생리대가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들어올 수 있다.
여성들의 반응은 뜨겁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드디어 누군가 말해줬다" "생리대 가격 정말 문제 많았는데 잘됐다" 같은 반응이 쏟아진다. 일부는 "관세 없애면 진짜 가격 내려갈까" 하며 반신반의하면서도,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직접 경쟁 구조까지 언급하며 나선 만큼 이번엔 말로만 그치지 않고 생리대 가격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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