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공기가 논바닥까지 내려앉는 시기가 되면 풍경이 확 달라진다. 여름 내내 연꽃과 연잎으로 가득하던 연밭은 물이 빠지고, 검은 진흙만 남는다. 겉으로 보면 생명 기운이 모두 사라진 자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식탁을 지켜온 식재료가 조용히 자라고 있다. 진흙 속에서 길게 뻗어 자라는 '연근'이다.
연근은 땅속에서 천천히 몸집을 키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마디가 굵어지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수확이 이뤄진다. 연근을 캐는 작업은 힘보다 감각이 중요하다. 깊게 파내기보다는 촉이 있는 방향을 따라 흙을 조금씩 걷어낸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마디가 쉽게 부러진다. 진흙을 털어내고 나면, 조금 전까지 땅속에 묻혀 있던 모습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매끈한 겉면이 드러난다.
진흙 아래에서 이어진 오래된 식재료의 기록
연은 늪지나 연못 같은 물가에서 자라는 식물의 땅속줄기다. 탁한 환경에서도 생육이 이어지는 특성 때문에 오래전부터 상징성을 지녀왔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스 유적에서는 연근이 자라는 식물에서 비롯된 연꽃 문양이 확인된다.
국내 기록에서도 연근의 흔적은 일찍부터 나타난다.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 벽화 속 연꽃 문양이 대표적이다. 고려시대에는 연꽃과 연근, 연밥을 귀하게 여겼으며, 왕실 연회에서도 연근은 자주 사용됐다. 식물학적으로 뿌리가 아닌 뿌리줄기다. 꽃과 잎, 줄기까지 활용됐다. 1670년경에 쓰인 조선시대 조리서 <음식디미방> 에는 연근 채와 연근 적 조리법이 실려 있다. 또한 18세기 실학서인 <증보산림경제> 에는 연근 재배법과 성질에 대한 설명이 남아 있다. 증보산림경제> 음식디미방>
국내에서 연근 재배가 본격화한 시기는 1950년대 말부터다. 늪지가 많고 물 관리가 쉬운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가 늘었다. 대구 반야월 일대는 찰기 있는 토양과 수로 덕분에 연근 농사에 유리했다.
겨울에 더 찾는 이유, 속에 쌓인 성분들
연근을 자를 때 나오는 점액질에는 뮤신 성분이 들어 있다. 점막을 보호하는 성질로 알려져 있다. 위장 기능을 돕는 이유로 예부터 죽이나 즙 형태로 섭취됐다. <승정원일기> 에는 왕실에서 연근즙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승정원일기>
연근에는 비타민 C 함량도 높은 편이다. 100g만 섭취해도 하루 섭취 기준의 절반 이상을 채울 수 있다. 철분과 칼슘도 함께 들어 있다. 철분은 혈액 속 산소 운반에 관여하며, 부족하면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된다. 연근 속 탄닌 성분은 떫은맛의 원인이지만 산화 속도를 늦추는 성질을 지닌다.
식이섬유 함량도 많다. 장의 움직임을 돕는 데 유리하다. 포만감이 오래 이어져 식사량 조절에도 도움이 된다. 열량은 100g당 약 75kcal 수준이다. 다만 섬유질이 많은 식재료인 만큼 한 번에 과하게 섭취하면 더부룩함이 생길 수 있다. 처음 먹을 때는 적은 양부터 시작하는 편이 낫다.
썰자마자 색이 변한다면 고르는 법과 손질 요령
연근을 고를 때는 길고 굵은 것을 우선으로 본다. 표면에 상처가 없고 색이 고른 것이 좋다. 손질된 연근에서는 인공적인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잘랐을 때 속이 희고 구멍 크기가 일정하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연근은 공기에 닿으면 빠르게 갈변한다. 철분과 닿으면 변색 속도가 더 빨라진다. 쇠칼이나 쇠 냄비 사용을 피하라는 이유다. 껍질을 벗긴 뒤에는 식초를 약간 탄 물에 담가 두면 색 변화를 줄일 수 있다. 데친 뒤 찬물에 우려내면 떫은맛도 한결 줄어든다.
보관법도 상태에 따라 다르다. 통연근은 흙을 털지 않은 채 종이나 비닐에 싸서 서늘한 곳에 둔다. 껍질을 벗기거나 썬 연근은 식초 물에 헹군 뒤 랩으로 감싸 냉장 보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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