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자동차 시장서 '독보적 1위'
세단이 아닌 기아차 쏘렌토 SUV
'국민 아빠차'라는 서사를 입혀
순위 |
판대된 자동차 모델명 |
2025년 11월 판매량(대) |
전월 대비 증감 | 시장 내 위치 |
| 1 | 기아 쏘렌토 | 10,047 | ▲ 3,259 | 전체 판매 1위, 중형 SUV 절대 강자 |
| 2 | 기아 스포티지 | 6,868 | ▲ 2,813 | 준중형 SUV 시장 주도 |
| 3 | 현대 그랜저 | 6,499 | ▲ 1,425 | 준대형 세단의 자존심 유지 |
| 4 | 현대 쏘나타 | 5,897 | ▲ 1,294 | 중형 세단 수요 회복 |
| 5 | 현대 투싼 | 5,384 | ▲ 1,475 | 준중형 SUV 스테디셀러 |
| 6 | 현대 아반떼 | 5,317 | ▼ 552 | 준중형 세단 수요 지속 |
| 10 | 현대 싼타페 | 3,947 | ▼ 914 | 쏘렌토의 직접적 경쟁 모델 |
기아 쏘렌토가 지난해에 이어 2025년까지 2년 연속 국내 자동차 시장 베스트셀링카 자리를 지키며 한국 자동차 시장의 세대교체와 가치 소비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부의 상징이었던 준대형 세단 그랜저의 시대를 끝내고 실용성과 기술력이 결합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시대를 연 쏘렌토의 성공은 단순한 판매량 수치를 넘어 하이브리드 기술의 완성도, 4050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꿰뚫은 정교한 마케팅, 그리고 경쟁 모델의 전략적 빈틈을 파고든 디자인적 우위가 결합된 입체적인 결과물로 분석된다.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중심축이 세단에서 SUV로, 그리고 순수 내연기관에서 전동화로 이동하는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기아 쏘렌토는 그 흐름의 가장 높은 파도를 타고 있다. 2024년 한 해 동안 9만 4538대를 판매하며 기아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이래 최초로 내수 1위라는 기록을 세운 데 이어, 2025년에도 11월 한 달간 1만 47대를 판매하는 등 압도적인 지배력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2025년 1월부터 11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은 9만 526대로, 2위인 카니발과의 격차를 1만 8000대 이상 벌리며 독주 체제를 공고히 했다. 이는 경제적 불황 속에서도 소비자들이 실패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자 하는 보수적 실용주의로 회귀했음을 시사한다.
과거 폴 크루그먼이 지적했듯 시장의 승자는 단순히 운이 좋은 쪽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숨겨진 필요를 가장 먼저 구조화하는 쪽이다. 기아 쏘렌토의 승리는 기술적 우위에서 시작된다. 현재 기아 쏘렌토 판매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하이브리드(HEV) 모델은 연료 효율성과 주행 성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1.6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 모터가 결합된 시스템은 합산 출력 235마력을 발휘하며 복합 연비 기준 15.7km/L를 기록한다. 고속도로 정속 주행 시 18km/L를 상회한다는 실제 사용자들의 평가는 고유가 시대에 가장 강력한 구매 동기가 되었다. 기아 내부에서 조차 "이 정도면 완전 변경 모델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고 자평할 만큼, 쏘렌토의 파워트레인은 시장의 표준이 되었다.
기술과 욕망의 교차로에서 탄생한 하이브리드 제국
하지만 기술의 승리가 완벽했던 것만은 아니다. 쏘렌토 하이브리드 모델은 출시 초기 엔진 오일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이슈로 홍역을 치렀다. 저온 주행 시 연소되지 않은 연료가 오일에 스며드는 '연료 혼입 현상'이 발생하자, 2022년 당시 차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과 소비자 분쟁 조정위원회를 통해 강하게 항의했다. 당시 자동차업계 한 전문가는 "엔진 오일에 연료가 섞이면 점도가 달라져 엔진 내부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아는 이에 대해 엔진 교체나 리콜 대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라는 무상수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아 측은 저온 시 응축 물질의 증발 지연이 원인이며 소프트웨어로 해결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이는 리콜 비용과 시간을 줄이려는 제조사의 편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쏘렌토의 인기가 꺾이지 않은 이유는 하이브리드라는 대체 불가능한 선택지가 주는 '경제적 이득이 품질에 대한 불안감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쏘렌토의 경쟁력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바로 마케팅 전략이다. 기아는 쏘렌토의 핵심 구매층인 40대(24.5%)와 50대(27.5%)를 겨냥해 '국민 아빠차'라는 서사를 입혔다. 이들은 가족의 안락함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 세대가 많다. 쏘렌토는 5인승부터 7인승까지의 유연한 시트 구성을 통해 이들의 요구를 충족했다.
특히 3자녀 가구가 7인승 모델을 구입할 때 받는 세제 혜택은 실용적인 50대 가장들에게 강력한 소구점이 되었다. 기아 송호성 사장은 인터뷰를 통해 자동차를 제조하는 회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목적에 맞춘 목적기반 모빌리티(PBV)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고객 수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유연한 조직 문화를 승리의 비결로 꼽았다.
세련된 실용주의와 아빠라는 이름의 브랜드 권력
디자인적 관점에서 쏘렌토의 성공은 경쟁 모델인 현대 싼타페의 전략적 실패와 궤를 같이한다. 싼타페가 파격적인 박스형 디자인을 선택하며 호불호의 늪에 빠진 사이, 쏘렌토는 기존의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계승하며 수직형 LED 헤드램프와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적용해 세련미를 더했다. 이는 보수적인 중장년층 소비자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또한 싼타페가 하이브리드 출시 지연과 디젤 모델 단종으로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 것과 달리, 쏘렌토는 적은 비중이나마 디젤 라인업을 유지하며 전통적인 SUV 수요층을 흡수했다. 한 자동차 전문 매체는 싼타페의 디자인 논란이 쏘렌토에게 반사이익으로 작용했으며, 소비자는 결국 익숙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구성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마케팅의 디지털 전환 역시 주효했다.
기아는 4세대 쏘렌토 출시 당시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기아 Play AR 앱을 선보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전시장을 방문하기 어려운 고객들이 집 앞 주차장에 쏘렌토를 가상으로 배치해 보고 첨단 기능을 체험하게 한 이 앱은 출시 5일 만에 1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이는 비대면 고객 경험을 강화하며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좁힌 혁신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또한 캠핑과 차박 트렌드에 발맞춰 2열과 3열 폴딩 시 확보되는 광활한 적재 공간을 강조하며,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서의 SUV 이미지를 구축했다.
거시 경제적 관점에서 쏘렌토의 독주는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의 수혜'이기도 하다. 충전 인프라 부족과 가격 부담으로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소비자들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으로 쏘렌토 하이브리드를 선택한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도 현대차그룹 전기차들이 최대 7500달러(약 1012만 원)의 보조금을 받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국내 시장만큼은 하이브리드가 지배하는 형국이다. 정부가 하이브리드 취득세 감면 혜택을 2026년까지 연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쏘렌토의 앞날에 긍정적인 신호다. 비록 15년 만에 하이브리드 취득세 감면이 종료될 것이라는 행정안전부의 발표가 있었으나, 친환경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40만 원 한도의 감면 혜택은 소급 적용 등을 통해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기아 쏘렌토가 보여준 2년간의 기록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은 화려한 기술의 나열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삶과 밀착된 기술의 최적화다. 쏘렌토는 엔진 오일 문제라는 기술적 오점과 7개월에 달하는 긴 출고 대기라는 운영상 한계 속에서도 품질에 대한 신뢰와 실용적 가치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왕좌를 지켜냈다. 2026년 이후에도 쏘렌토가 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하이브리드를 넘어선 전동화 기술의 안정성과 고도화되는 품질 관리 능력에 달려 있다. 쏘렌토의 연간 판매량 10만 대 돌파는 단순히 기아의 승리가 아니라, 한국형 SUV가 전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경쟁력을 확보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쏘렌토가 써 내려간 이 기적 같은 연대기는 앞으로도 한국 이동 수단 역사의 중요한 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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