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38] 아차산성에서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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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38] 아차산성에서 보내는 편지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25 04:51:28 신고

 모든 것이 떨어지는 계절, 나목되어 서 있는 벌거벗은 나무들. 나는 겨울바람을 맞으며 다시 아차산을 찾았습니다. 아차산은 백제 시대에 산성이 만들어지고, 고구려가 남진하여 개축하였으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보루들은 신라 때 세워졌습니다. 다시 말해,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삼국의 치열한 역사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정상에 올라보면 누구라도 서울일대의 동서남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이 수비산성으로서 최적지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아차산은 서울 동쪽의 한강변에 위치하여 주변 조망이 탁월합니다. 한강 상류구간인 암사대교를 배경으로 하남에서 잠실까지 한눈에 펼쳐지고, 한강다리·63빌딩은 물론 남산타워까지도 탁 트인 요충지입니다. 삼국시대부터 한강 일대는 한반도 이남의 패권과 직결된 요충지라, 한강 유역을 지배하려면 반드시 아차산을 차지해야 했습니다. 삼국의 장수들과 병사들이 이 산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이 목숨을 잃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절절한 이야기가 산성을 지키는 돌담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데, 박하린 시인은 <아차산의 전설>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오랜 풍상 견뎌 온 아차산성 / 무너진 석축 돌무리 틈서리마다

스며있을 무사들의 피, 함성 / 평강공주 바보사랑 이야기

전쟁과 살육 / 사랑 가슴앓이

예나 지금이나 / 변한 건 하나 없는데

"인간사 부질없다" / 세상일 본듯 못 본듯 아리수

아차산 구비돌아 / 무심한 듯 흘러내리네.'

아차산에 있는 온달과 평강공주 동상(자료사진=문화일보)
아차산에 있는 온달과 평강공주 동상(자료사진=문화일보)

그렇습니다. 이곳은 고구려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와 결혼한 온달장군이 590년 죽령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려고 신라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최후를 맞은 곳이기도 합니다. (아차산성과 충청북도 단양군의 온달산성 두 곳은 모두 자신들이 온달장군의 전사지라고 논쟁 중입니다.)

이 산성에서 죽어서도 아내를 잊지 못해 관마저 멈추게 만들었다는 한 사내를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사랑하면 죽은 몸마저 사랑하는 여인에게 닻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그보다는 평강공주, 참으로 알 수 없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왜 수많은 귀족 가문의 자제를 버리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평민, 그것도 바보라 불리는 온달을 선택했을까요? 그 당시 고구려는 왕권이 미약한 관계로 세력이 강한 귀족들이 평강공주와 결혼을 통해 자기세력을 넓히려 합니다. 평강공주는 이를 거부하고 튼튼한 나라, 왕의 권위가 제대로 선 나라를 꿈꿉니다. 드디어 그녀는 바보인 듯 하나 범상치 않은 듬직한 평민 사내를 고릅니다. 물론 설화는 평원왕이 이 결혼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평원왕은 늘 우는 평강공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는 매일 울어 주변을 시끄럽게 하니 커서는 대장부의 아내가 될 수 없어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을 보내야겠다"

평강은 어릴 적 그저 가냘프고 약하고 떼쓰기 좋아하는 소녀였던 모양입니다. 그런 그녀가 성장하면서 세상을 보는 매서운 눈매와 강한 의지를 갖기 시작합니다. 처한 현실 속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부를 축적한 평민이나 하급 귀족이 왕권이 약했던 시기의 정치적 상승을 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당시 평원왕은 강성해진 귀족 세력을 제어하기가 버거웠고, 외부적으로는 신라와 백제의 압박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약육강식이 판치는 고난의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온달이었습니다. 후세에 덧씌어진 이미지이겠지만, 그럼에도 설화가 실제보다 더 오래 살아 있습니다. 공주의 주체성과 온달이 바보에서 충성스러운 장군으로 극적으로 변모하는 이런 장면은 감동을 낳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진짜인가 보다는 단지 '어떤 이야기가 더 감동적인가?'를 볼 때 설화가 더 사람들에게 매력적입니다. 신분의 장벽 속에서 사회의 벽을 뛰어넘는 비약이라는 일반인들의 기대의 언어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온달이 아무리 왕의 사위라 하더라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결코 위대한 장군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평강공주 이야기는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주체적인 두 사람이 공유한 꿈을 통해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 메시지입니다. 온달을 향한 평강공주의 굳은 믿음과 신실함은 온달로 하여금 전장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운 뛰어난 장군으로 우뚝 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약한 존재입니다. 하고많은 삶의 건널목에서 우리를 믿어 주고 격려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통과 슬픔의 언덕, 절망과 좌절의 건널목에서 기꺼이 나를 믿어주고 격려하는 작은 손길로 인해 용기와 희망이 새롭게 생겨납니다. 정신분석가 하인즈 코허트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비춰 주는 거울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일전에 한번 소개했듯이 자기반사대상(mirroring self object)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변의 영향을 쉽게 받는 존재입니다. 나의 긍정적인 면을 비춰 주고 격려해 주면 스스로도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일상을 자신감있게 대합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반사대상을 갖지 못하면 코허트가 말했듯이 열등감이 심해져 쉽게 상처받고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경제는 '2속도 경제'(two-speed economy)라 불릴 정도로 반도체와 AI중심의 수출은 잘 나가지만, 자영업을 비롯한 내수는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습니다. 내수의 경제적 어려움은 그저 고통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은 우리를 더욱 움츠리게 만듭니다. 우리 주변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터널 속에서 서로 손을 잡고 격려하며 조심조심 앞을 향해 걸어야 할 형편에 처한 분들도 많습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온기를 나눌 때 우리는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와 당신의 따뜻한 손길과 작은 배려는 누군가에게 춥고 초라한 시기를 견뎌 낼 온기를 만들어 줍니다. 이 온기는 우리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자신감을 갖고 용기를 내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데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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