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투자자 1400만 명 시대의 한국 주식시장은 참여는 확대됐지만 작동 원리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소설 '세력자들'은 바로 그 간극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픽션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읽다 보면 한 편의 금융소설을 넘어 자본시장 구조를 해부한 보고서에 가깝다.
저자는 실제 애널리스트 출신이며 현재 독립리서치 법인인 리서치알음을 운영중이다. 그는 숫자와 제도, 구조에 익숙한 시선으로 한국 자본시장을 바라본다.
소설 속 주인공 최도진은 데이터와 펀더멘털을 신뢰하는 인물로, 시장이 가치가 아닌 다른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의문을 품는다. 소설은 그의 시선을 따라 코스닥 시장의 이상 거래, 쪼개기 상장과 기술특례 상장, 반복되는 테마주 광풍 등 한국 증시의 구조적 문제를 차분하지만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지점은 악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다. 시장을 좌우하는 인물들은 흔한 범죄자나 탐욕스러운 악당이 아니다. 그들은 제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시스템의 빈틈을 활용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독자는 '이건 소설일 뿐'이라고 쉽게 선을 긋기 어렵다.
이야기는 내부 고발, 정치권과 금융권의 미묘한 긴장, 제도 변화의 이면을 따라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금융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에 닿는다. 과연 한국 주식시장은 가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 그리고 이 구조는 누구를 위해 설계된 것인가? 등이다.
'세력자들'은 주식 투자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느꼈을 법한 불신과 답답함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동시에 단순한 분노에 머무르지 않고, 제도와 구조의 문제를 정면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그 안에는 자본시장을 오래 지켜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현실 인식과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주식시장을 다룬 소설이자, 한국 자본시대를 기록한 또 하나의 보고서다. 시장의 화려한 무대 뒤에서 어떤 질서가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이 소설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양성모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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