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무엇을 먹느냐’는 더 이상 개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질환 관리와 삶의 질을 동시에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면서, 의료와 식품의 경계에 있는 ‘메디푸드(Medi-Food)’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메디푸드는 질병 치료나 건강 관리를 목적으로 의학적 근거에 따라 설계된 특수 영양식이다.
씹기·삼킴·소화 기능이 저하된 고령자, 만성질환자, 회복기 환자 등을 대상으로 영양 성분과 섭취 형태를 정밀하게 조정한다는 점에서 일반 건강식이나 건강기능식품과 구별된다.
실버타운 경쟁력, ‘시설’에서 ‘식단’으로
최근 메디푸드 시장 성장을 이끄는 핵심 무대는 실버타운이다.
국내 메디푸드·케어푸드 시장 규모는 2025년 말 기준 3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실버타운의 경쟁 기준도 과거의 시설·입지 중심에서 개인 맞춤형 영양 관리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울의 한 실버타운에서는 입주민이 식당 키오스크에 손목 밴드를 접촉하면 개인 건강 데이터에 맞춘 식단이 자동 주문된다.
유전체 분석 결과와 기저 질환 정보를 바탕으로 ‘신장 강화 저염식’과 같은 맞춤형 메뉴가 제공되고, 주방에서는 영양 조제 로봇이 소스를 0.1g 단위로 계량한다. 이른바 ‘바이오 식탁’이 현실화된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입주 상담에서 의료시설 접근성보다 질환 맞춤형 식단 제공 여부를 묻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식품 기업들이 병원·유전자 분석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실버타운 운영에 참여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대그린푸드 vs 대상웰라이프, 전략은 달랐다
현재 시장은 현대그린푸드와 대상웰라이프를 중심으로 양강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인프라와 운영 경험을 앞세운 ‘하드웨어 중심’ 전략을 펼친다.
고령자 이용시설과 대형병원에서 실증 연구를 진행하며, AI 기반 섭취 분석 시스템 ‘그리팅 헬스 매니저’를 통해 결핍 영양소 안내와 운영 효율을 동시에 높였다.
반면 대상웰라이프는 데이터 분석과 플랫폼 구축에 집중한다.
환자용 영양식 ‘뉴케어’ 브랜드를 기반으로 유전체 분석 기업과 협력하고, 헬스케어 허브 플랫폼 ‘MyTHS’를 준비 중이다.
온라인에 그치지 않고 병원·검진센터·약국·피트니스센터까지 데이터를 연결해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B2B에서 B2C로…메디푸드의 확장
메디푸드 시장은 실버타운·병원 중심의 B2B 모델을 넘어 B2C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매일유업은 케어푸드 브랜드를 강화했고, 오뚜기는 메디푸드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미래 시장을 준비 중이다.
업계에서는 메디푸드가 과거의 관급 급식이나 튜브 급식 형태에서 벗어나, 경구 섭취 중심의 ‘먹는 치료’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관련 식품 기준과 규격도 점차 세분화되는 추세다.
스타트업도 뛰어들었다 ‘일상 속 메디푸드’
메디푸드는 이제 고령자 전용 식품에 머물지 않는다.
푸드테크 스타트업 메디푸드랩스는 고령자 식품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비건 기능성 스포츠 음료 개발에 나섰다. 발아 팥을 활용한 고농축 프로틴 음료로, 근감소증 예방과 근육 건강 유지를 동시에 겨냥한다.
케이메디푸드는 조선시대 왕의 첫 식사였던 초조반에서 영감을 얻은 프리미엄 식물성 죽 ‘킹즈모닝밀’을 출시했다.
현미와 귀리를 기반으로 한 저자극·저칼로리 식단으로, 회복기 환자와 중장년층까지 아우르는 제품이다. 의료진 중심의 연구·자문 구조를 통해 병원과 한의원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메디푸드 시장의 공통된 흐름은 명확하다. 단순한 영양 공급을 넘어 데이터 기반 관리, 플랫폼화, 일상 확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메디푸드는 치료 이후의 식사가 아니라, 치료 이전부터 삶을 관리하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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