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투자 시험대… 반도체·배터리·조선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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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투자 시험대… 반도체·배터리·조선서 갈린다

뉴스로드 2025-12-24 13:36: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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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전경 [사진=최지훈 기자]
국회 전경 [사진=최지훈 기자]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이 합의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對)미 투자는 단일한 ‘패키지’가 아니다. 같은 숫자 아래에 서로 다른 산업 논리와 위험 곡선이 깔려 있다. 반도체는 기술 주권의 문제이고, 배터리는 계약 구조의 문제이며, 조선은 국가안보와 생산 거점의 문제다. 투자 총액은 하나지만, 시험지는 산업별로 다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4일 이번 합의를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미완의 구조”로 규정했다. 그러나 산업 현장으로 내려가 보면, 이번 합의의 실질적 무게는 어디에 투자하느냐보다 국익의 관점에서 무엇을 미국에 내주고 무엇을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먼저 반도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공장 숫자가 아니다. 기술의 위치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각각 보유한 HBM과 첨단 메모리·파운드리 기술은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다. 미국이 CHIPS법을 통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생산 이전이 아니라, 첨단 공정과 기술 생태계를 미국에 고착화하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HBM은 이미 글로벌 AI 반도체 밸류체인의 병목 지점이다. 문제는 이 기술이 미국 투자 과정에서 기술적 확장이 아니라 정책적 고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미국 내 생산과 연구개발 비중이 커질수록, 기술 축적의 중심과 공정 주도권이 어디에 놓이느냐는 전략적 문제가 된다. 삼성전자 역시 파운드리와 메모리 부문에서 미국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이는 곧 미국 산업정책의 규칙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도체 부문에서 이번 합의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기술 국적’을 묻는 시험대다.

배터리는 성격이 다르다. 여기서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계약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의 합작 구조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배터리 산업에서 투자 성패는 설비 규모보다 수요 계약, 가격 조건, 원가 변동 리스크를 누가 부담하느냐에 달려 있다. IRA 체제 아래에서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보조금을 지렛대로 공급망 위험을 배터리 업체에 전가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직면한 과제는 생산 능력이 아니라 계약 헤지 구조다. 원자재 가격 변동, 환율, 수요 변동을 계약에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수익성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대미 투자가 확대될수록 장기 고정 단가 계약의 위험도 커진다. 배터리 부문에서 이번 합의는 성장의 기회인 동시에, 마진을 잠식할 수 있는 구조적 시험이다.

조선은 성격이 더욱 노골적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선박이 아니라 조선 역량 자체다. 설계, 공정 관리, 인력 운용, 납기 관리로 이어지는 ‘조선 시스템’이 핵심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MASGA 구상, HD현대와 HII 간 협력, 한화필리조선소 문제는 모두 같은 질문으로 수렴된다. 미국은 한국 조선을 동맹의 생산기지로 활용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대체 가능한 체계로 흡수하려는 것인가에 있다.

K-조선이 미국에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지원이 아니다. 산업이 축적해온 운영 체계 전반이다. 이 시스템이 미국 조선소에 이식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협력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 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에서 이번 합의는 산업 투자라기보다 안보 산업의 경계선을 긋는 문제에 가깝다.

세 산업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번 3500억 달러는 투자 총액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별 주도권을 어디까지 허용하느냐의 문제다. 반도체는 기술, 배터리는 계약, 조선은 시스템이다. 어느 하나라도 관리에 실패하면, 투자 성과는 숫자로 남고 경쟁력은 미국에 남게 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강조한 “이행 방식의 중요성”은 이 지점에서 현실이 된다. 연차별 투자 계획, 기존 투자와의 중복 여부, 국내 산업 공백을 막기 위한 보완책이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으면, 이번 합의는 기회가 아니라 구조적 이전 계약이 될 수 있다.

3500억 달러는 아직 청구서가 아니다. 그러나 조건 없이 주어진 약속도 아니다. 반도체·배터리·조선에서 어떤 선을 긋느냐에 따라, 이번 합의는 한국 산업의 확장판이 될 수도 있고, 미국 산업정책의 하청 계약서가 될 수도 있다. 답은 외교 문서가 아니라, 산업별 설계도에 달려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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