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카카오톡 메신저나 SNS 등으로 누군가의 생일 등을 알 수 있다. 예전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의 기념일을 기억하기 위해 달력이나 수첩에 날짜를 기록해야 했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쉽고 편해졌지만, 기념일을 챙기는 관계가 예전에 비해 많아져서 조금 피곤(?)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축하는 다다익선(多多益善) 아닌가. 아무리 실없는 관계라 할지라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듯, 오고 가는 축하와 안부 속에 정(情)이 싹튼다.
생일. 휴대폰 메신저 알림이 뜬다. “생일 축하해”라는 내용과 함께 도착한 커피 기프티콘 한 장. 열어보면 대개 '스타벅스'나 '투썸플레이스'다. 때때로 요즘 뜬다는 어느 카페의 모바일 쿠폰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커피 브랜드가 아니다. 그 사람이 오늘을 기억했다는 사실이다.
소소한 축하의 순간, 특히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관계일수록 커피 기프티콘은 빛을 발한다. 케이크를 들고 찾아가기엔 서로의 일정이 빠듯하고, 알맞은 선물을 고르자니 서로의 취향에 조심스럽다. 통화는 어색하고 문자만 보내기 껄끄러울 때, 커피 기프티콘 한 잔은 적절한 선택지가 된다.
커피 기프티콘이 관계 속에서 유독 편안한 이유는 ‘부담 없는 공감’에 있다. 대체로 1만원 내외의 가격이기 때문에 주는 사람으로서도 부담이 없고, 받는 사람에게도 빚(갚아야 하는 마음) 같은 느낌도 적다. “그래 이 정도면 주고받기 괜찮지”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미 사회적으로 형성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 역시도 커피 기프티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방송이라는 업계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한 번 만나 연을 맺는 경우도 잦고,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사이가 많아서 끈끈함보다는 느슨함을 유지하는 인간관계에 늘 고민이다. 업이 다르고 환경이 달라도 다양한 사람들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도시인들이라면, 아마도 필자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런 커피 기프티콘 같은 소비 패턴은 우리가 관계를 맺는 태도의 변화이기도 하다. 예전엔 시간과 수고로 정성이 측정됐다면, 지금은 ‘타이밍’이 더 중요해진 게 아닐까 싶다. 완벽한 선물보다 적절한 순간의 안부. 커피 기프티콘 한 장이 그를 대변한다. 마치 현대인들의 관계 언어처럼 말이다.
“오늘 당신을 떠올렸어.”, “네가 오늘의 주인공이야”라는 메시지가 그 안에 압축돼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앞으로도 잘 지내자”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와 같은 사회성도 내포되어 있겠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그 또한 우리의 인간적인 면면이다.
물론 커피 기프티콘과 같은 편리함이 모든 관계를 깊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클릭 몇 번으로 보낸 마음은 직접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만큼의 밀도를 갖기 어렵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관계를 완전히 놓치지 않게 해주는 최소한의 장치로는 충분하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커피 한 잔이 관계를 짓는데 유용하다.
“나와 당신의 관계가 아직 유효해요” “나는 앞으로도 당신과 잘 지내고 싶어요”의 신호를 건네는 일. 실은 꼭 생일이나 명절 등의 기념일이 아니어도 좋다. 언제나 마음은 물건에 담기는 법이니까.
오히려 별일 없는 하루에 누군가에게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보자. 얼핏 가볍지만 왠지 눅진한 마음. 어쩌면 이런 것들이 계산적인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계산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인간적인 지혜가 아닐까 싶다.
여성경제신문 권혁주 쇼호스트 kwonhj1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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