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연의 작가 스토리]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③에 이어
[문화매거진=강다연 작가] 그동안 유럽 남부와 북부의 르네상스에서부터 바로크, 로코코 그리고 신고전주의를 함께 살펴보았다면, 이번 글을 통해서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까지 알아보도록 하자.
19세기 당시 사회는 혁명과 산업화의 변화로 ‘혁신의 시대’였으며, 민주주의와 세습 군주제 공존의 혁명적 갈등으로 아방가르드 예술과 아카데미 미술은 긴장 상태 그 자체였다. 미술사조를 보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지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특히 사실주의는 이상적 주제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노동 계층과 시골 풍경 등 시도하면서도 드로잉과 구도 등에서는 여전히 아카데미적 기법을 유지했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이렇게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같은 예술운동은 사실주의로, 다시 인상주의로 발전했으나, 인상주의는 아카데미의 원칙에서 단절된 상태였다. 낭만주의는 자연과 인간 경험에 내재된 불확실성을 탐구하면서 등장했던 양식이었다.
한편, 쿠르베가 정의한 사실주의는 인간의 삶 자체를 묘사하는 데 집중하였다. 또 오노레 도미에는 저널리즘적 회화와 석판화를 선구적으로 활용하며 사실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로마에 설립된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는 1648년에 설립되어 예술을 르네상스 거장들이 구현한 고귀하고 통일된 이상을 추구하며, 조예 깊은 이들이 실천하는 자유 예술이라는 점에서 프랑스 예술가들이 고전 세계의 모범 속에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후 설립된 아카데미들 교육 기준, 인체 소묘,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 연구 등을 통해 같은 목적을 위해 지원하고, 실현시킨 것이다.
과거에는 지적 및 경제적 가치 면에서 성경이나 신화를 주제로 한 역사화가 가장 높은 위치에 놓인 장르 간 위계로, 초상화, 일상장면화, 풍경화가 자리했으며 동물화와 정물화는 가장 하위 장르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가치와 순위를 장르로 나누다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점차 하위 범주로 간주되던 풍경화와 정물화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운동의 전개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점도 주목하자.
우리가 현재 작품을 감상할 때, 개인의 취향이지 어떤 작품을 더 위계를 잡고 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면, 미술사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은 풍경화라든가 정물화 등을 좋아하는 편인데, 자연에서 힐링하고 싶은 소망이 담기고 사회상이 반영된 것이라 짐작해 본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서로 다름을 존중해 준 것도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생각의 자유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자신의 취향을 자신 있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음에 이 현대사회에 태어난 것에도 감사하고, 그동안 많은 미술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이겨낸 작가들에게도 감사함을 느낀다. 세상에 당연한 게 하나 없이, 모두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한편, 인상주의는 1870년대 이후 아카데미미술 체계와 결별하며, 인상주의는 사실주의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정치 및 사회 비판 대신 색채와 빛과 광학적 효과를 탐구하는 형식적, 기술적 혁신에 주력했다. 19세기에 시작하여 20세기까지 활동한 소로야 같은 화가들은 각각 아카데미즘과 인상주의라는 명확한 양식의 유사성을 보이면서도 이를 뛰어넘어 색채와 빛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독자적인 화풍에 대해 늘 고민하는 나이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나다움에 집중하다 보면 ‘붓터치와 컬러, 주제도 나오겠지’란 생각이 든다. 디지털아트를 시도할 때도, 수차례 도전하며 내가 원하는 질감과 느낌을 찾아내는 시간이 있었고 그 과정조차도 난 행복했기 때문에 그 기억을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묵묵히 내 갈 길을 가려고 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20세기 모더니즘을 마무리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전시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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