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3일 자회사 하만(HARMAN International)을 통해 독일 'ZF 프리드리히스하펜(ZF Friedrichshafen AG, 이하 ZF)'의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사업을 인수하며, 고성장 중인 전장사업 강화를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이번 거래는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삼성의 전장 전략이 '부품 공급자' 수준을 넘어 '차량 아키텍처를 규정하는 플레이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8년 만에 단행된 대규모 전장 M&A라는 점에서 시기적 의미가 크고, 인수 대상 역시 단일 기술이나 고객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글로벌 ADAS 시장의 핵심 축을 이루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밀도가 높다.
이번 거래의 핵심은 ADAS 자체보다도 ADAS가 차량 전자·소프트웨어 구조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있다. 자동차 산업은 더 이상 인포테인먼트, 주행 보조, 차량 제어가 분리된 구조로 작동하지 않는다. SDV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디지털 콕핏과 ADAS, 차량 제어 소프트웨어가 하나의 중앙집중형 컨트롤러로 통합되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만이 강점을 가진 디지털 콕핏 영역에 ZF의 전방 카메라·ADAS 컨트롤러 기술이 결합되면, 삼성은 완성차 업체에 '개별 부품'이 아니라 '통합 플랫폼'을 제안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는 가격 경쟁 중심의 전장 부품 시장에서 벗어나, 차량 설계 초기 단계부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ZF ADAS 사업의 인수는 기술 신뢰도와 시장 지위를 동시에 확보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ZF는 100년 넘는 전장·섀시 기술 축적을 바탕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깊은 공급 관계를 형성해 왔고, 특히 스마트 카메라 분야에서는 사실상 업계 표준에 가까운 입지를 확보해 왔다. 하만이 이 사업을 품으면서, 삼성은 단기간에 ADAS 고도화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기술·고객·인력 삼박자를 동시에 확보하게 됐다. 자체 개발로는 수년이 소요될 영역을 M&A로 단숨에 건너뛴 셈이다.
이번 인수는 삼성 그룹 차원에서 추진 중인 연쇄적 M&A 전략의 연장선에서도 해석된다. 삼성은 올해 공조, 전장, 오디오, 디지털 헬스 등 서로 다른 영역의 사업을 연이어 인수했지만, 이를 개별 투자로 보기보다는 '연결 가능한 산업'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특히 전장은 스마트폰·가전·TV에서 축적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AI 기술을 가장 직접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영역이다. ADAS와 디지털 콕핏, OTA 기반 소프트웨어 구조는 삼성의 IT 자산을 차량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식하는 핵심 통로가 된다.
하만의 성장 궤적 역시 이번 인수의 배경을 설명한다. 하만은 삼성 편입 이후 매출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며 안정적인 전장 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사업 영역은 여전히 '차량 내 경험'에 집중돼 있었다. ADAS 인수는 하만의 포트폴리오를 주행 안전과 차량 제어 영역까지 확장시키며, 글로벌 종합 전장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한다. 단순히 매출 규모를 키우는 인수가 아니라, 하만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거래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종합하면, 이번 ZF ADAS 사업 인수는 삼성전자가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서 어떤 위치를 지향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완성차를 만들지는 않지만, 차량의 두뇌와 신경망에 해당하는 핵심 구조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적 선언에 가깝다. 인수가 2026년 마무리된 이후, 삼성과 하만이 ADAS·SDV 시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통합 솔루션을 현실화할 수 있는지가 향후 전장 사업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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