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줄 평
“시공간을 왜곡해 간신히 도착한 곳에서 시의 행간을 비틀고 있다.”
▲시 한 편
<폴란드식 만두> - 송진
운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다니
오늘의 뒤처짐에 딱 어울리는 앞치마
만두를 빚으며 내 팔을 하나 잘라 넣었다
찜통의 숨결이 고르게 흔들렸다
가끔 세찬 빛이 흘러들어와 남은 한 팔로 손차양을 만들었다
내가 만든 만두를 누군가 먹는다
이렇게 정겨울 수가!
한쪽 팔을 마저 잘라
국산팥을 넣고 푹 고운다
곧 단팥죽이 끓어 넘칠 것이고
아, 그렇게 겨울이 온다
아이 좋아
아이 좋아
실눈 같기도
실파 같기도 한 비가 쏟아진다
하늘빛 전등이 아름답기만 한 건 피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지
이번 생에 쏟아 버린 피 덕분에 만두가 맛있다
▲시평
국수와 더불어 만두는 만국 공통 음식이다. 중국의 샤오룽바오와 딤섬, 인도의 사사, 스페인의 엠파나다,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폴란드의 피에로기 등 나라마다 특색 있는 만두 요리를 가지고 있다. 각국의 만두 중에 하필 폴란드 만두일까. 여기서 주목할 게 폴란드 만두가 아니라 폴란드‘식’ 만두라는 것이다. 즉 단순히 폴란드 만두인 피에로기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폴란드 방식이나 그런 투로 만두에 대해 쓴 시라는 뜻이다. 각국의 만두 중 폴란드식을 택한 이유는 영토의 분할과 “피의 역사”에 있다. 16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와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국가였던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은 18세기에 프로이센 왕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세 주변국에 의해 3차례나 영토가 분할돼 최종적으로 멸망했다. 김광균 시인이 「추일서정」에서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 노래한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 “만두를 빚으며 내 팔 하나 잘라 넣”는 시적 화자인 나의 “이번 생”은 망했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자해라는 비극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온다. 만두나 단팥죽은 일상의 음식이 아니다. 특히 붉은팥으로 끓인 팥죽에는 액운을 물리치는 주술적 의미가 들어있다. 무언가에 뒤처진 시적 화자는 자신을 희생해 누군가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는 중이다. 고통스러운 자해 행위가 ‘정겹다’라거나 “아이 좋아” 같은 천진난만한 어휘와 결합해 한 편의 잔혹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겨울이 온다”는 것은 시련이 시작됐음을, 겨울에 눈이 아닌 비가 오는 것은 시련이 견딜 만하다는 메시지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변의 영향으로 양팔을 떼어주다가 끝내 망한 폴란드가 1918년에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립한 것처럼 이 시의 화자는 “이번 생에 쏟아 버린 피”의 희생으로 홀로 설 것이라 다짐한다. 만두와 단팥죽을 통해 숨겨진 “피의 역사”를 은연중 폭로하며, 자신의 피와 살을 제물 삼아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하고 있다. (김정수 시인)
▲김정수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과의 잠』 『홀연, 선잠』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과 평론집 『연민의 시학』을 냈다. 경희문학상과 사이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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