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올해 자본시장을 관통한 키워드는 단연 ‘사모펀드(PEF)의 책임론’이었다. 홈플러스 사태로 촉발된 사모펀드에 대한 정치권과 여론의 싸늘한 시선은 결국 금융당국의 고강도 제도 개선안 발표로 이어졌다. 출범 20년을 맞이한 국내 사모펀드 업계는 강도 높은 규제 속 엄격한 투자 책임의 시대라는 커다란 변곡점을 맞게 될 전망이다.
◇홈플러스 부실화…PEF 규제 강화로 이어져
사모펀드 규제 강화의 발단은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홈플러스의 부실화 논란이었다. 단기 수익 실현을 위한 자산 매각과 그 과정에서 불거진 고용 불안 문제는 단순한 투자 실패를 넘어 사회적 갈등으로 번졌다. 이에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은 대형 사모펀드를 대상으로 비정기 세무조사와 고강도 검사를 진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회 역시 레버리지 한도 축소와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등 사모펀드를 직접 겨냥한 법안들을 쏟아내며 규제 강화의 고삐를 죄었다.
이같은 전방위적 압박은 금융당국이 지난 22일 발표한 ‘PEF 제도 개선방안’으로 구체화됐다. 사모펀드(GP)에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해 중대한 법령 위반이 확인될 경우 단 한 번의 과실만으로도 운용사 등록을 취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 대주주 적격성 요건을 신설해 위법 이력이 있는 대주주의 시장 진입을 원천 봉쇄했다. 자산 규모 5000억원 이상의 중대형 사모펀드에는 준법감시인 선임과 내부통제 기준 마련이 의무화됐다.
강도 높은 규제안에 업계는 표정 관리 중이다. 국내 운용사만 적용받는 규제 역차별을 우려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개선안이 나왔다는 반응이 중론이다. 투자 결정마다 퇴출의 공포를 느끼게 될 수 있겠으나, 그마저도 책임있는 투자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는 반응이다. 중장기적으로 시장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일 기회가 될 거란 기대도 있다.
다사다난한 한 해였지만, 업계는 자구책 마련에도 분주했다. 사모펀드협의회는 박병건 대신프라이빗에쿼티 대표를 신임 협의회장으로 선출하며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업계 일각에서는 단순한 협의회를 넘어 사단법인 형태의 공식 협회로 격상해 당국과의 소통 창구를 일원화하고 자율 규율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당국은 이번 개선안 중 법률 개정이 필요한 과제들을 모아 연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중 국회 통과를 목표한 만큼, 내년부터는 사모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에 대한 보다 엄격한 잣대가 예상된다. 지난 20년간 양적 성장을 이어온 사모펀드에 질적 개선을 요구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