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억 밑져도 공사 따야…벼랑끝 건설사 '선급금 돌려막기'로 연명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400억 밑져도 공사 따야…벼랑끝 건설사 '선급금 돌려막기'로 연명

이데일리 2025-12-24 05:00:00 신고

3줄요약
[이데일리 최정희 김형환 기자] 토목 건설 현장에만 15년째 근무 중인 Y씨는 공사 현장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주로 정부부처나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지하철 등 사회간접자본(SOC) 공사를 해왔는데 신규 수주가 거의 없어 선급금 돌려막기까지 하고 있다. 선급금은 발주처가 공사 시작 전에 시공사(건설사)에 지급하는 공사비인데 시공사는 이를 건설 기자재 구입, 현장 사무실 확보 등에 사용한다. 그는 “자금 확보가 어려우니 A현장에서 받은 선급금을 B현장의 자재 구입 등에 쓰고 있다”며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토목 건설 현장이 66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20개도 안 된다. 보통 수주 잔고를 5년씩 쌓아두고 있는데 중견사들은 2년이 채 안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신규 수주가 없어 선급금 확보가 어려운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손실이 뻔한 토목공사라도 해야 현금 등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실정이다. Y씨는 “지금 하고 있는 토목공사의 원가율이 140%가 넘어 1000억원 받으면 400억원이 손해”라면서도 “그나마 토목은 매달 공사 진행에 따라 기성액을 받기 때문에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택 건설은 토지 관련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확보가 어려워 시공 자체가 멈춰선 곳이 적지 않다. 수도권 핵심지가 아니면 미분양 우려도 커 수주 자체가 거의 없고, 건설사 입장에서도 손실 가능성 때문에 사업에 나서기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Y씨가 다니는 토목·건설 시공능력평가 10위권 건설사의 사정이 이러한데 이보다 규모가 작은 건설사들은 줄줄이 폐업·부도 위기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서울 마포구 한 공사 현장 모습(사진=연합뉴스)


◇ 건설투자 6년째 감소…수주는 줄고 미수금은 늘고

23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건설사 3466개사가 폐업했다. 2023년부터 3년 연속 3000개사 넘게 폐업 신고를 했다. 특히 종합건설사는 올해 644개사가 폐업해 작년(641개사) 수치를 뛰어넘으며 2005년 통계 공표 이후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건설투자는 2021년부터 감소하기 시작, 내년(한국은행 -1.2% 전망)까지 6년째 내리막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울산의 한 건설사 사장은 “지방 업체들은 나홀로 아파트나 빌라, 원룸 등 소규모 주택 사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되지 않고 있다”며 “대형 아파트도 미분양이 나오는 판에 소규모 주택이 팔리겠느냐”고 토로했다.

SOC 등 공공 발주도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한다. 이 사장은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임대형민자사업(BTL)을 꽤 했는데 윤석열 정부에선 BTL 사업이 거의 없었다”며 “울산 석유화학 사업도 안 좋다 보니 관련 유지보수, 공장 확장 등의 사업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누적 건설(토목·건축) 수주 건수는 1만 1768건으로 최근 3년 평균(2022~2024년) 1만 7150건보다 31.4%나 급감했다. 수주액도 147조 9300억원으로 3년 평균(150조 4800억원) 대비 1.7% 줄었다. 주택 인허가와 착공 가구 수도 10월 누적 각각 24만 6364가구, 18만 8564가구로 3년 평균(38만 1725가구, 37만 6635가구) 대비 35.5%, 49.9%로 쪼그라들었다.

공사를 해주고도 공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 50위 건설사 중 3분기 분기보고서에서 공사미수금이 확인되는 30개 건설사를 분석한 결과 올 9월말 공사미수금 합계액은 약 42조 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37조 8000억원)보다 12.4%(4조 7000억원) 증가했다. 현대건설의 공사미수금은 7조 4000억원으로 작년 말(5조 4500억원) 대비 35.8% 늘어났다. 서희건설은 공사미수금이 약 2000억원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언제까지 손해 보고 지을 것인가’…공사비 더 달라

내수 경기가 악화한 상황에서 국내총생산(GDP)의 약 14%(2024년)를 차지하는 건설업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 반년이 지났지만 주택 시장을 옥죄는 정책만 나왔을 뿐 건설업을 부흥시키는 정책은 거의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정부 SOC 예산이 27조 7000억원으로 확정돼 올해(25조 4000억원)보다 9% 가량 늘어났지만 건설 업계에서 요구해 온 30조원 이상보다는 적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건설업 부흥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는 공사비 인상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대한건설협회와 건설산업연구원이 9~11월까지 15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최근 3년간 준공 공사 중 절반에 가까운 43.7%가 적자 공사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사비가 적게 책정되거나 시공 단계에서 설계 변경 등이 이뤄졌음에도 계약금액이 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명 중 6명은 공사기간이 적정하게 산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소한 국책사업이라도 공사비를 현실성 있게 책정해줘야 한다”며 “공사 환경의 어려움을 반영하지 않고 어느 공공공사나 표준 시장단가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사를 하다 보면 설계 변경 등으로 공사비가 올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관행적으로 지급하지 않아 왔다”며 “옛날에 공사하고도 이익을 낼 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처럼 인건비, 자재비, 환율 등이 올라가는 상황에선 이러한 악성 관행들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가장 못 살고 어려운 사람들이 건설 노무자로 일을 하는데 이들이 직업을 잃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건설업의 취업유발계수(최종수요 10억원 발생시 유발되는 직·간접적인 취업자 수)는 2020년 10.5명으로 산업 전체 평균(9.7명)보다 많아 고용 측면에서도 건설업 살리기는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