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땐 HD현대중공업이
이재명 대통령땐 한화오션이 협조적?
한국형 구축함 입찰 정치풍향계 촉각
| 구분 | 윤석열 전 정부 (HD현대중공업 우호) | 이재명 현 정부 (한화오션 우호) |
| 정책 핵심 | 효율성, 기술 연속성, 수출 실적 |
공정성, 보안 윤리, 상생/노동 존중 |
| 기업 전략 | "기술력이 검증된 업체에 맡겨야 안보 공백 없다" |
"범죄 기업 특혜 배제하고 공정한 기회 줘야 한다" |
| 정치적 결정시각 | 보안 감점 규정 완화 및 수의계약 검토 |
대통령 직접적 수의계약 질타 및 경쟁입찰 의결 |
| 재계 시각 | '산업 육성' 중심의 정경 유착 의심 |
'가치 지향' 중심의 새로운 파트너십 형성 |
지난 12월 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한마디는 뼈있는 지적을 했다.
이재명(62) 대통령은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을 바라보며 군사 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데다가 뭔 수의계약을 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그러던데, 그런 것 잘 체크하라고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이 발언은 특정 기업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으나, 과거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KDDX 개념설계 자료를 불법 촬영해 사내망에 공유한 혐의로 임직원 9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다.
대통령의 서슬퍼헌 이 발언 이후 방위사업청의 기류는 급변했다.
기술력과 예산 절감을 이유로 수의계약을 유력하게 검토하던 방위사업청 실무진의 논리는 대통령이라는 통치권자의 명령 앞에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누가봐도 HD현대중공업을 내리고, 한화오션을 올리라는 말로 해석됐다.
실제로 방위사업청의 7조 8,000억 원 규모 거대 프로젝트인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의 추진 방식을 22일 당초 예상했던 수의계약방식에서 지명경쟁입찰로 의결된 것은, 대한민국 방위산업 역사에서 기업의 기술적 연속성보다 법적 윤리와 정권의 가치 지향이 우선시된 정치적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함정 한 척을 누가 짓느냐의 문제를 넘어 재계의 정치적 풍향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관례의 붕괴와 정치적 도덕주의의 귀환
재계에서는 이번 결정을 두고 정권 교체에 따른 방산 지형의 지각 변동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전 정부 시절 방위산업은 수출 드라이브와 효율적 사업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당시 방위사업청은 보안 사고 감점 기준을 완화하며 HD현대중공업이 안고 있던 보안 벌점의 파괴력을 줄여주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조선업계에서는 이를 K-방산의 선두 주자를 보호하려는 산업 정책적 배려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시각은 달랐다. 현 정부는 노동 가치의 존중과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했다. 이러한 기조는 한화오션과의 관계 설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의 가혹한 손해배상 소송을 비판해 왔으며, 이는 한화오션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로 이어졌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서울 마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에게 하청 노조를 상대로 한 47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 취하를 직접 제안했다. 김희철 대표가 배임 문제가 있어 어쩔 수 없는 영역이라고 난처함을 표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방안이 있다면 법적,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결국 한화오션은 경영진의 법적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소송 취하와 조정에 합의하는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이는 현 정부가 추구하는 상생 경영의 모델에 부합하는 행보였으며, 결과적으로 KDDX 사업 방식 결정 과정에서 한화오션이 공정의 기치를 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 되었을 것으로 재계는 분석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재명 정부와의 이때 유대 관계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된 셈이다. 재계인사들은 "최근 들어 산업 경쟁력 중 하나의 변수가 정부와의 유대 관계이며, 글로벌 무역 질서에서 정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행정적 족쇄가 더욱 단단해지는 위기에 처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9월, HD현대중공업의 보안 감점 기간을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당초 2022년 11월 최초 형 확정일을 기준으로 2025년 11월에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방위사업청은 마지막 직원의 판결 확정일인 2023년 12월을 새로운 기산점으로 잡았다. HD현대중공업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이미 보안 감점 3년의 기준일이 2022년 11월 19일이라고 공식 통보받았으며 이는 기업에 대한 심각한 신뢰 훼손이자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조치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은 복수의 사건에 대한 분리 적용이라는 법리를 내세워 감점 기간을 2026년 12월까지 늘렸다. 1.8%의 보안 감점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경쟁입찰이 진행된다면, 기술 점수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내지 않는 한 HD현대중공업의 수주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효율성을 담보로 관행을 묵인하던 시대가 저물고, 범죄 경력이 있는 기업에 국가의 핵심 사업을 맡길 수 없다는 도덕적 엄숙주의가 행정의 원칙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7조 8,000억 원의 전장과 안보 공백의 역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결단이 가져올 안보적 후폭풍이다. KDDX는 대한민국 해군이 2030년대 기동함대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 전력이다. 하지만 사업 방식을 둘러싼 2년여의 표류로 인해 당초 2030년으로 예정되었던 1호함의 인도 시점은 2032년 말 이후로 미뤄지게 되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방추위 위원 전원이 장기간 사업자 선정 표류로 안보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전력화의 지연은 단순히 선박 한 척의 도입이 늦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해군의 노후 구축함 퇴역 시기와 맞물려 발생하는 전력의 공백은 동북아시아의 급박한 해양 안보 지형 속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효율성을 희생하고 얻어낸 공정이라는 가치가 국가 안보라는 실존적 위협과 맞바꿔진 셈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자주 언급하는 제도적 마비의 전형적인 사례다.
한편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은 대한민국 해군이 2030년까지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확보하여 원양 작전을 수행하는 기동함대의 핵심 전력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KDDX는 선체뿐만 아니라 전투체계, 다기능 레이더 등 함정의 핵심 구성 요소를 순수 국내 기술로 통합하는 이른바 'K-방산'의 결정체로서, 향후 국산 함정 수출의 플래그십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함정 건조 사업은 통상적으로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의 단계를 거친다. KDDX의 경우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이 개념설계를 맡았고,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수행하여 2023년 12월 이를 완료하였다. 업계의 오랜 관행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수의계약을 통해 이어받는 것이었다. 이는 설계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기술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으로 여겨져 왔었다.
특히 이번 결정은 K-함정 수출을 위해 정부가 공들여 온 원팀 전략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정부는 수상함은 HD현대중공업, 잠수함은 한화오션이라는 분업 구조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 과당 경쟁을 막고 승률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KDDX를 둘러싼 고소와 고발,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까지 가세한 비판의 불길은 두 기업 사이의 신뢰를 완전히 태워버렸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임원의 개입 여부를 수사해달라며 경찰에 고발했다가 최근 대승적 차원에서 이를 취소했으나,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캐나다와 호주 등 대규모 해외 수주를 앞둔 상황에서 국내 기업끼리의 비방전은 국익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 프로젝트를 통해 미 해군 MRO 시장에 진출하려는 전략 역시 내부의 분열로 인해 추진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조계와 방산업계의 시각도 엇갈린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 보안 사고에 대한 처벌은 이미 이루어졌는데, 이를 근거로 수의계약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이중 처벌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화오션 측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군사 기밀 유출은 방위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중죄이며, 이를 징벌하지 않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수의계약을 주는 것은 국가의 직무 유기라고 맞선다.
방위사업청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공동 설계의 담합 여부를 질의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모습은 행정 기관이 정치적 압박과 법적 원칙 사이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공정위는 행위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판단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공을 되넘겼고, 결국 방위사업청은 가장 안전하지만 가장 갈등이 심한 경쟁입찰이라는 결론을 택했다.
KDDX 사업은 이제 입찰장이라는 최종 전장으로 향한다. 1.8%의 감점을 안고 싸워야 하는 HD현대중공업과, 이재명 정부의 우호적인 기류를 타고 대역전극을 노리는 한화오션의 대결은 2026년 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기회비용과 안보적 리스크는 온전히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